부부모임에는 중이회도 있었다. 중국을 이해하는 모임으로, 서예가이신 우보 민승기 선생님, 춘정 이근우 선생님, 도암 정송재 선생님, 석정 임종각 선생님 외에도 몇 분이 더 계시고, 또 선생님 중에는 해병대 출신 선생님도 계시어 만나 뵈올 때는 군기를 바로잡아 깍듯이 대하는 예의도 잊지 않았다.
1년에 한두 번씩 중국 곳곳의 명소를 찾아서 역사와 문화를 관망하고, 시장성을 확인하며 대륙의 막강함을 염려하던 모습도 선명하다.
우리는 남편의 연산고 동기동창 모임에도 함께 다녔다. 여러 동창들 중에서도 우리 부부와 정서가 비슷했던 오돈근 사장님과 박영길 사장님 내외분과는 부부지간에 친하게 지내 잊지 못할 분들이다.
우리 부부가 또 같이 갔던 모임에 내 초등학교 동창 모임도 있었다. 그 옛날 월사금에 시달렸던 코흘리개 시절, 고무줄 끊어놓고 도망치고 사방치기를 훼방 놓았던 개구쟁이 친구들이다. 남자 셋에 여자 넷, 모두 7명으로 처음엔 싱글로 만났다가 나중에는 항상 부부동반으로 만났다. 여자들은 여자들끼리 언니, 동생 해가면서 친하게 지냈고, 남자들은 남자들끼리 형님, 아우님으로 친형제처럼 지내면서 부부동반으로 호주여행도 같이 갔다 왔다.
나는 그 모임을 78년부터 총무로 이끌어 왔는데, 남편 운명 후 그만두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더니 이구동성으로 말렸다.
"네 아픔이 우리 아픔이고, 우리도 얼마 안 있으면 다 갈 건데…… 너만 조금 먼저 가셨다 뿐인데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냐? 그러면 우리가 너무 섭섭해. 총무 안 시킬 테니까 그냥 나오기만이라도 해."
그래서 총무를 놓았는데, 나 때문에 다시 싱글 모임으로 돌린다고 했다. 우리가 모일 때 집에서 있을 남편들과 아내들 생각에 미안하여 나는 그럴 수가 없었다.
"내가 빠질 테니까 다시 부부 모임을 해라."
“그건 안 돼! 싱글이 더 좋잖아, 안 그러냐?”
그 극성에 못 이겨 지금도 두 달에 한 번씩 싱글로 만나고 있다. 특히 남편과 각별한 사이였던 용철 씨는 지금도 우리 집에 문제가 생기면 달려와 보살펴주고 고쳐주는 고마운 친구이다.
또 부부동반으로 나가던 모임에는 사회 친구들 모임도 있다. 옛날 처녀 시절 직장에 잠깐 같이 다니던 친구들 5명이다. 모임은 원래 두 달에 한 번 부부동반이었는데, 내가 이렇게 되는 바람에 한 달에 한 번, 싱글 모임으로 바뀌었다.
얼마 전 한 친구가 주안에 살다가 이사와 송도에 2명, 수원에 3명이 있으니까 번갈아 가면서 양쪽 동네에서 만나 밥 한 끼 먹고 살아가는 얘기를 나누는 것이 전부이다. 그런데 친구들은 혼자 사는 것의 고뇌가 얼마나 큰 것인지도, 생의 동반자의 진정한 가치를 잘 알지 못할 것이다. 함께 있으니 역지사지를 모르는 것이다.
부천집 넓은 잔디밭에는 한 달에 두 번 반짝 이발소가 생긴다. 결혼 후 몇 년 뒤부터 남편은 나에게 머리를 깎아 달라고 하는 것이다. 나는 별 기술도 없지만 눈썰미가 좀 있는 편이라 깎아 보았다. 몇 번은 매끄럽게 못 잘랐지만 곧 남편의 얼굴 스타일에 잘 맞는 머리모양이 나왔다. 떠나시기 전까지…….
따스한 햇살 아래서 사각사각 남편의 머리를 깎아주면 남편은 무척이나 행복해했다. 지금도 가끔씩 마당의 잔디밭을 바라보면, 그때 그 광경이 아련히 떠오른다. 하지만 지금 나는 머리를 깎아줄 사람이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