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당에서 할머니들은 내 걱정을 많이 하신다. “루시아 씨는 도대체 애들도 셋인데, 집안은 어떡하구 노상 성당에서 봉사만 하니?”
그러면 우리 구역에 사시는 할머니가 이렇게 답하신다. “시간 있으면 그 집엘 한 번 가봐. 대문 밖에서부터 밥알이 떨어져도 그냥 주워 먹구, 인절미가 떨어져도 고물 하나 안 묻게 그러고 산다구.”
나는 큰일을 하는 남편에게 집안일로 신경 쓰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항상 집안일을 밤늦게까지 모두 해치우고 또 새벽같이 일어나서 이것저것 다 해놓고 새새로 봉사를 다니고 학원을 다녔다.
처음에는 애들이 피아노학원을 다니니 나도 배우고 싶어 피아노학원을 다녔다. 그러다가 꽃꽃이를 다니면서 서예학원에 입문하였고, 또 어디서 6개월간 무료로 해준다 하여 사군자를 시작하게 되었는데, 그렇게 입문한 것이 어언 20년 세월이 흘러 오늘에 이르렀다.
애들 셋 키워야지, 회사 뒷바라지해야지, 성당 봉사해야지, 사회 봉사해야지, 학원 다녀야지 체력 하나는 누구나 알아주었다
“차돌이라도 다 닳아빠졌겠다!”
“죽을래야 죽을 시간이 없는 게 루시아다!”
“하느님이 1시간쯤 쉬라고 25시간을 주시면 그 1시간도 다른 일하는 데 쓸 사람이다!”
교우 분들이 나를 두고 하시는 말씀이다. 성격이 완벽하여 모든 일에서 언행이 일치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어디에 내가 나타나면 할머님들이 "떴다, 루시아!" 라고 하셨다. 그런데 남편이 없으니까 이제는 ‘졌다, 루시아!’ 가 됐다.
꽃꽃이는 1년쯤 하였고, 영어회화 학원을 2년쯤 다니다가 일어회화를 1년쯤 하였다. 그리고 서예학원에 입문을 하였으며, 미술도 함께 하게 되었다. 이것도 애들이 중학교, 고등학교에 진학을 하니까 엄마의 손길이 더욱 필요해져 너무 시간을 맞추기가 힘이 들었다.
애들이 학교에서 돌아올 시간까지는 집에 가 있어야 하니 학원 공부가 끝나면 택시를 타고 날아가 듯싶게 가는데, 간발의 차이로 애가 나갔으면 얼마나 속이 상하던지…… 애들한테 소홀해지지 않으려고 항상 1분 1초를 다투며 살았다.
나 나름대로 애들 교육은 철저히 했지만 학교는 별로 찾아다닌 적이 없었다. “너희들은 보통만 돼라. 잘하면 좋지만 공부 잘한다고 꼭 훌륭한 사람이 되는 건 아니니까, 중간만 가.”
그래서 그런 건지 애들은 중간은 했다. 그러니까 성당 어느 자매가 나한테 이랬다. “루시아 씨는 성당 일처럼 학교도 그렇게 열심히 해봐. 왜 내 자식을 위한 일인데 루시아 씨는 매번 성당 일만 하고 애들 일은 등한히 해?”
물론 엄마가 학교를 자주 오가면 애가 힘은 더 받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다고 공부를 더 잘할 것도 아니고, 자연스러운 게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치맛바람 같은 건 애당초 일으키지도 않았다.
하지만 애들 등교만큼은 철두철미하게 잘 지켜서 대학 때까지도 셋 다 결석이 없었다. 심지어 태권도 학원까지도…… 아파도 업어서 학교 데려다 놓는 게 내 철칙인 것이다.
아무튼, 그 다음에 불어온 바람은 요리학원이었다. 송도에 이사를 오니 밤이면 휘황찬란한 네온사인이 마치 별천지 같아보였는데, 별의별 음식점들이 즐비했고 하나같이 호황을 누리는 것 같았다. 그래서 가끔 동네 산책을 다닐 때면 남편은 "여기 송도는 돈이 굴러 다닌다"고 했다. 요리학원은 그래서 생각하게 된 것이었다.
“여보, 양식조리사 자격증 따서 레스토랑을 해볼까요?”
“그래요. 해보세요.”
그런데 나 혼자 다니면 심심하니까 대문 밖이라곤 평생 나다니지 않던 아랫집 동생을 부추겨 주안의 한국요리학원을 다녔다. 부천에서 화실이 끝나면 송도까지 와서 동생을 데리고 다시 주안의 학원으로 달려가는 수고를 매일 마다하지 않을 정도로 열심히 다녔다.
그런데 강의를 들으면 머리에 입력이 안 되고 잊어버리기 일쑤였다. 그에 비해 동생이나 다른 젊은이들은 암기력이 훌륭해서 너무 부러웠다. 이상하게도 들으면 한쪽으로 들어왔다가 한쪽으로 흘러나가고, 뒤돌아서면 잊어버리곤 하는 것이다.
“그러면 뒤돌아서지 않으면 되겠네요.”
누군가의 그 말에 한참을 웃은 적이 있었는데, 위생법 같은 건 도저히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이를 악물고 새벽 2, 3시까지 공부하여 마침내 실기와 필기를 한 번에, 동생과 나란히 붙을 수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