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마음이 급해졌다. 하지만 본인이 수혈을 받아야 된다고 고집하여 응급실에서 수혈을 받고 있는 동안, 그동안 친하게 지내오던 서귀포 진주식당 내외분을 오시라고 하여 앞으로의 일을 의논했다.
수혈을 마치고 서귀포 집으로 와 인천으로 돌아올 준비를 하는데, 대한항공에 환자에 대한 상황 설명을 하니 기내에서 문제가 생길까 봐 안 된다는 거였다. 하늘이 노래졌다. 환자가 누워서 오려면 의자 3개 정도가 필요하니 항공사에서 적극 협조를 해 주지 않으면 곤란한 상황이었다. 항공사에 전화를 밤부터 아침까지 입이 닳도록 남편 몰래 해대는 데, 남편은 남편대로 요구사항이 많으니 더 이상 말도 안나오고 기진맥진이었다.
그때부터 남편은 통증 때문에 잠을 잘 이루지 못했다. 그래도 밤 12시부터 새벽 5시까지는 나를 찾지 않고 돌아다니면서 알아서 혼자서 해결했다. 항상 잠이 부족한 나를 위한 속 깊은 배려였다.
보살님을 오시라고 하여 인천으로 이송할 계획을 짰다. 인천 큰 병원에 가서 수혈을 받아서 피도 많이 보충해가지고 진찰도 받고 오면 다시 치료를 해 주겠다, 지금은 피가 많이 부족하니까 그게 더 필요하다, 나는 더 좋은 약을 구하러 일본에 갔다 오겠다고 거짓말을 짜서 입을 맞추고 남편에게 상의를 했다.
남편은 처음에는 안 간다고 거절하더니 힘겹게 허락을 하였다.
“그럼, 나 갔다가 금방 올게요.”
“그래요, 나도 일본에서 좋은 약을 꼭 찾아볼게요.”
남편 쪽은 그렇게 해결이 되었는데 항공사 쪽은 너무나 막무가내였다. 본사하고 승강이를 벌이고, 의사와 간호사를 대동하라느니, 진료병원에서 확인을 받아오라느니 어느 한 가지도 뜻대로 되는 게 없었다.
그날 밤, 남편은 밤에 자다가 엄청나게 큰 소리로 ‘아!’ 소리를 세 번이나 질렀다. 끝이 오는 것이 느껴졌다. 죽어가는 사람을 쳐다보는 그 심정은 말로 표현을 할 수 없었다. 나 자신은 산산이 다 부서져 버렸고 가슴은 무너져 이미 폐허가 되어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간신히 항공사의 비행기 탑승 허락이 떨어졌다. 김포공항까지 응급차가 마중을 나오도록 조치를 취하고 가져온 승용차도 다시 부쳐야 했다. 그랬더니 남편이 차를 도로 가져가는 데 대해 의문을 품는 것이었다.
“차는 왜 가져가, 도대체? 금방 올 건데.”
“가서 또 움직이려면 있어야죠.”
“애들 차 있잖아.”
“에이, 우리는 우리 차 타야죠.”
이렇게 간신히 달래고 비행기에 올라 김포공항에 도착하였다.
김포공항까지 나와 주신 223친목계 사장님들이 나를 보더니 눈물을 글썽거렸다.
“큰일 났습니다. 박 사장도 박 사장이지만 사모님이 다 죽게 생기셨어요.”
이미 절에서도 내가 더 문제여서, “박 사장이 살아난다 해도 사모님은 죽는다”고 말을 전하여, 쌍초상 나게 생겼다고 다들 걱정을 했다. 꺼져가는 생명을 옆에서 지켜보려니 마음뿐만 아니라 육신까지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져 거의 사람 꼴이 아니었던 것이다.
성가 병원의 응급차를 타고 가는데, 나는 다른 생각이 있어 남편의 마음을 집으로 유도했다.
“집에 잠깐 들러서 갈까요?”
“아니, 바빠 죽겠는데 무슨 집을 가요? 병원 특실이나 빨리 예약해 놓으세요.”
하는 수 없이 성가병원으로 곧바로 가봤으나 특실이 없어서 응급실에 일단 들어갔다가 밤에 특실로 옮겼다. 특실이라 상당히 넓은데도 병실이 넘쳐 복도까지 가득 찼을 정도로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병문안을 왔다. 우리 때문에 병원 사람들은 아예 진저리를 쳤다.
나는 얼른 애들에게 연락하여 상복을 준비하라고 일렀다. 그때만 해도 아직 혼수상태는 아니었다. 말은 못 해도 사람을 알아볼 정도는 유지하고 있었다.
민선이, 재선이, 세용이가 왔다.
“애로사항 없냐?”
“없어요, 아버지.”
남편은 민선이에게 그렇게 잠깐 묻고는 다들 집에 가라고 했다.
그날 밤, 전에는 한두 시간씩 자다가 잠깐잠깐 잠을 깨곤 했는데 한 번도 깨질 않고 잘 잤다. 그때부터 조금씩 의식이 어지러워지는 것이었다.
“혼수상태가 오고 입에서 악취가 나면 그때부터 돌아가실 준비를 하는 게 좋을 겁니다.”
의사선생님의 말씀처럼 남편은 다음날부터 혼수상태에 빠졌다. 눈은 뜨지만 사람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어쩌다 눈이 마주쳐도 누군지 알아보지는 못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아주 잠깐씩 정신이 돌아오곤 했는데, 그때부터 통증이 오는지 무척 괴로워하였다. 우리는 안타깝지만 임종경을 해드리며 환자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런 순간에도 둘째딸은 제 아빠가 숨이 가빠지려고 하면 우스갯소리를 하여 침울한 분위기를 바꾸려고 애썼다.
“아빠, 조금만 참아! 조금만, 조금만 참아! 아이구, 우리 아빠 잘 참으신다!”
마침 그날이 사순절이 시작되는 ‘재의 수요일’이었는데, 저녁 7시부터 천국의 문이 열린다고 하여 하는 소리였다.
남편은 7시를 잘 넘겼다. 그리고 가족들이 임종경을 계속 바치고 있는 가운데 미소를 활짝 지어보였다. 그게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마지막으로 남겨준 선물이었다. 남편은 이윽고 숨을 크게 한 번 몰아쉬더니 그만 숨을 거두고 말았다. 2003년 3월 4일 저녁 7시 25분 이었다.
입가에 머금은 그 미소, 우리에게 남기고 떠난 그 평화스러운 마지막 모습은 흡사 천사였다. 이 세상을 떠나면서도 그 이는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또 너무 귀중한 선물을 안기고 우리 곁은 떠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