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송도로 이사를 오니 최기두 베드로 씨가 우리 옥련 6구역의 구역장을 맡고 있었는데, 1년쯤 뒤부터는 남편이 구역장을 맡고 실질적인 일은 내가 했다.
우리 구역의 특징은 업소들이 대부분이다 보니 젊은 분들은 장사 때문에 참여를 잘 못하고 주로 집에 계신 할머니들이 구역 식구들이라는 점이었다. 하지만 최기두 씨 자매님과 서화엽 아녜스 자매님, 그리고 우리 대녀인 이유희 엘리자벳이 반장 역할을 너무도 충실히 수행해 주어 할머님들을 재미있으면서도 힘들지 않게 잘 보듬어 드릴 수 있었다.
할머니들을 모시고 베론 성지 등 성지순례도 많이 갔고 꽃동네 등 불우시설에 가서 봉사활동도 자주 했다. 철마다 서해안 관광에, 강화도, 제주도 여행을 다니면서 서툰 솜씨나마 내가 부천 노인대학 시절에 익힌 솜씨를 발휘하여 재미있게 해드리려고 애를 많이 썼다. 남성들 모임도 결성되어 우리 부부를 비롯해 부부동반으로 자주 만났고, 그게 또 구역 활동에 큰 힘이 되었다. 그래서 할머니들이 많으신 데도 체육대회 같은 데에서 항상 등수 안에 들기도 하였다.
비록 '옥련 6구역은 할머니부대' 였지만 여러 분의 아낌없는 지원과 나를 비롯한 반장님들의 호흡이 척척 잘 맞아 들어간 덕분에 상당히 많았던 냉담자들이 대폭 줄어들 만큼 활성차가 되었다.
박노광 구역장님은 바쁜 사업 관계로 성지순례나 여행에 가끔씩 참가했다. 하지만 항상 할머니들이 잡수시는 것을 다 챙겨드리고, 그 큰 덩치로 노래를 부르며 춤도 추고 재롱(?)을 떨어드려 최고 인기를 누리곤 했다.
게다가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서도 음식점으로 모셔서 저녁까지 잡숫게 해드려, 할머니들이 그 늦은 저녁에 집에 있는 며느님들을 귀찮게 하지 않도록 속 깊은 배려를 해드리곤 하였고,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지친 몸인데도 할머니들을 승용차로 일일이 모셔다드리고, 택시비까지 드려 보내드리곤 하였다.
그렇게 해드리면서도 항상 검소하고 자신을 낮추었고, 누가 봐도 할머니들을 겉치레가 아니라 진심에서 우러나와 부모님처럼 공경하고 모신다는 것을 금세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처음 이사 와서는 추리닝 입고 있어서 사장님인 줄도 몰랐어. 항상 있으신 분 같지 않고 너무 검소해.”
“루시아가 동네 딸이고 여장부에 흉이 없는 사람이긴 하지만, 남자들이 나가면 마누라를 우습게 알고 내리는 게 일쑤잖아. 그런데 어디 가면 이 양반은 자기 마누라가 국무총리고 나는 비서라면서 항상 자기 부인을 올리는 양반이야.”
“아무리 없는 집 할머니라도 항상 올려보지 내려보는 법이 없어. 그게 잊혀지질 않아. 너무 아까운 분이시지.”
이렇듯 박노광 요셉 구역장님은 지금도 할머니들의 마음속에 생생히 살아 있다.
그밖에도 나는 오갈 데 없으신 스물두 분 할머니가 계신 시흥 섭리의 집, 충남 금산의 폐교를 고쳐 사시는 열두 분의 장애인, 여덟 분의 독거 할머니들이 모여 사시는 충북 제천의 봉양 사랑의 집 등등, 도움의 손길이 필요하신 분들에게 작은 도움이나마 개인적으로 달마다, 그리고 시시때때로 보태드리고 있다.
레지오 단원들과 함께 봉사를 하다가 인연을 맺게 된 분들인데, 한번 시작하면 영원히 해야 되는 것이 봉사이기에 힘닿는 데까지 열심히 하려 하고 있다.
“엄마, 그냥 현상유지만 하시면 안 돼요?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저희가 물려받아서 끝까지 계속해야 하잖아요.”
만만치 않은 비용이 매달 지출되어야 하니 아이들이 하는 말이다. 하지만 저희들이 내 뒤를 이어 끝까지 책임지겠다는 말이 나한테는 너무나 고맙기 그지없다. 부모님을 사랑하고, 부모님이 물려주신 일도 상속받겠다는 마음씨가 한없이 갸륵한 것이다.
이제 요셉도 세상을 떠나 나는 구역장을 내놓았다. 노후에 소원이 있다면, 사놓은 땅에 집을 지어 오갈 데 없는 할머니들 일고여덟 분을 모시고 돌봐드리면서 여생을 보내는 것이다.
물론 아직은 아이들에게 내 손길이 필요하니 훗날의 일이지만, 남편이 국가를 위해 헌신했듯이 나도 사회에 작은 손길이나마 역할을 다하고 싶은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