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의 기둥 민선이-1 (제53회)

큰 딸 민선이는 어려서부터 태열 때문에 무척 고생을 했다. 가려우니까 밤새 긁어서 접히는 데는 전부 진물이나 아침이면 온 이불에 피투성이어서 볼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이럴 때 그냥 지켜볼 수밖에 없는 부모의 마음은 그야말로 가슴이 저릴 정도로 안타까웠다.

민선이가 초등학교 몇 학년 때인가는 여름에 세용이를 업고 알로에 농장까지 가서 알로에 아보리센스라는 걸 사다가 먹였다. 조금씩 잘라서 먹이는데, 그걸 입에 넣어주면 어찌나 쓴지 애가 힘들게 참는 모습이 너무나 안쓰러웠다. 그래서 먹고 나면 티스푼으로 설탕을 한 스푼씩 주었는데, 애가 그걸 주면 일단 부엌 뒷문으로 나갔다가 조금 있다 들어와서 설탕을 받아먹는 거였다. 그 더운 여름 몇 달을 애기를 업고 힘들게 먼 데까지 가서 사와 가지고, 그걸 먹이려면 공들여 설득을 하고 갖은 정성을 다 들여야만 했다.

그런데 그해 겨울 부엌 뒤의 옥수수밭에 가보니 옥수수 대가 전부 말라붙어 있었는데, 그 밑을 보니 거기에 알로에 조각들이 수두룩했다. 먹지 않고 나와서 뱉어 내고 들어온 거였다. 어린 것이 얼마나 썼으면 그랬을까를 생각하니 가슴이 너무 아팠다. 그 후 알로에 액이 나와서 그걸 사다가 먹였다. 그 고생을 고등학교 갈 때까지 했는데, 호르몬 분비가 왕성해지면서 17살이 되니 사그라들어 너무나 다행스럽다.

중학교 때는 이가 가지런하지 않게 비죽비죽 나오면서 주걱턱이 되어 또 걱정이 많았는데, 다행히도 성가병원 치과에 가서 교정을 받아 몇 개월 만에 정상을 회복하여 자신감도 가지게 되었다. 그 자신감을 몰아 고등학교 때는 응원단장으로 활동을 하는 등 대인관계에 도움이 많았는데, 공부는 중간에 머무르다 보니 대학교 시험에서 그만 실패를 하고 말았다.

초등학교 때부터 딸애의 꿈은 사업가가 되는 것이었다.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자수성가를 하겠다고 이상을 크게 가져 왔고 각오도 대단했기에, 대학에 떨어지자 딸애는 “저는 남들 대학 4년을 돈으로 승부를 걸겠습니다”라며 강한 사업가의 의지를 피력했다.

▲ 두 딸과 함께 캐나다에서 업무를 마친 후 벨기에서(2002. 6.)

그래서 딸애의 의견을 존중하여 그러라고 했는데, 주변에 친구들이 하나 둘 대학에 합격하고 입학 준비를 하는 것을 보니 몹시 신경이 쓰이고 부러웠던 모양이었다. 학교를 입학하기 이틀 전쯤인가, “말씀드릴 게 있다”고 면담 요청을 해왔다.

“저를 믿고 한 번만 스파르타식 학원에 보내서 재수를 시켜 주시면 대학을 가보겠습니다. 안 가려고 그랬는데 친구들이 가는 걸 보니까 저도 해야 될 것 같아서 그러니 한 번만 투자를 해 주세요.”

물론 남편과 나는 대찬성이었다. 그때가 밤 12시가 넘었는데도 불구하고 광명시 덕진학원에 전화를 넣었다.

“한 자리가 남았는데, 오기로 한 학생이 있습니다. 혹시 일찍 오시면 가능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몇 시쯤 가면 됩니까?”
“새벽 4시쯤……?”

학원 관계자의 말은 희망적이었지만, 큰 딸애가 학원에 들어가게 되면 한동안 떼어놓고 살아야 했으니 부모로서 보통 착잡한 일이 아니었다. 애기 때 할머니 집에 몇 개월 떨어져 살았던 것 이외에는 한 번도 떼어놓은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얘를 주머니에 넣고 다닐 수 있으면 좋겠는데 그럴 수도 없고…….“

꼬마 때부터 늘 그렇게 애지중지하던 애였으니 아빠 마음도 찢어질 듯 아플 것이었다. 나도 눈물을 줄줄 흘리며 밤새 책을 챙기고 이부자리를 싸서 준비를 마친 다음, 차를 몰아 학원으로 갔다. 다행이 입학이 가능하여 들여보내고 돌아왔다.

민선이는 들어가는 즉시 시험을 보고 반 편성을 하였는데, ‘수ㆍ우ㆍ미ㆍ양ㆍ가’반 중에서 우반으로 갔다. 학원에서는 3주에 한 번 1박 2일 휴가를 주었는데, 휴가 나오는 날이면 그동안 안타깝고 보고 싶은 마음에 얼른 데려오기 위해 학원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부모 마음은 다 같은 것인지, 학원 앞에는 대형 고급승용차들이 꽉 차 있곤 하였다.

집에 데리고 와서는 민선이가 제일 먹고 싶다는 과일피자를 만들어 실컷 먹여서 보내곤 했다. 그 후에는 과일피자를 만들어 좀 덜 식게 하는 방법을 써가면서 차를 몰아 학원에 가서 전달을 하곤 했다. 교무실 직원에게 넘겨줄 때까지 따뜻했으니, 민선이도 그걸 먹으며 부모의 정성을 새삼 느낄 것이었다. 덕분에 자기 방 룸메이트가 대단히 행복해 했다는 말을 지금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