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에서는 잠을 4시간 밖에 안 재웠다. 시험을 봐서 목표 점수에 미달되면 매를 맞고, 뭘 못 했다고 매 맞고, 밤 점호 시간에 늦었다고 매 맞고……. 맞는 일이 많았다고 했다. 서러워서 울고, 엄마 아빠 보고 싶어서 울고, 우는 애들이 많았는데 다행스럽게도 민선이는 마음속으로만 울었지 겉으로는 안 울었다고 했다.
“너는 어쩜 그렇게 독하냐?”
친구들이 그런 소리를 했지만 이를 악물고 울음을 참았다고 했다. 그 얘기를 듣고 너무 마음이 아파 나는 한참을 울었다.
그렇게 고생을 한 끝에 수능점수가 무려 100점 이상이나 올라갔다. 익산시에 있는 원광대 무역학과를 지원하기로 하고 내가 같이 따라갔다. 딸애가 시험을 보고 있는 동안 근처 성당에 가서 기도를 드렸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그때처럼 절실하고 간절하고 정성스럽게 오래도록 기도를 드린 것은 그날이 처음이었다.
시험을 보고 나오는 아이를 기다리는데, 아이들이 마치 구름떼처럼 쏟아져 나왔다. 그런데 하나같이 시험을 잘 보았다는 듯이 밝은 모습이어서 은근히 불안해하고 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애가 안 나오는 거였다.
‘얘가 못 봤구나!’
50분을 기다려도 오질 않으니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터덜터덜 숙소로 왔더니 이미 와 있는 것이다
“얘 , 시험은 잘 봤냐?”
정색을 하고 묻고 싶었지만, 애 마음이 상할까봐 최대한 상냥하게 물었다. 그랬더니 무심한 듯 대답했다.
“그냥 그렇게 봤어요.”
나는 완전히 실망을 해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합격자 발표가 날 때까지 그 며칠간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른다. 물론 당사자는 더 착잡했을 것이지만.
드디어 발표 날, 아들이 방송국 ARS와 연결하여 내 귀에 들이밀었다.
“축하합니다, 합격 입니다.”
내가 잘 알아듣지 못한 것 같아 다시 걸었다. 그러자 또 똑같은 소리가 흘러나왔고, 그래서 또 한 번 걸어서 재확인을 거듭했다. 합격이었다!
그 엄청난 감격과 기쁨에 나는 아들을 붙잡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이미 떨어진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합격한 것이어서 더욱 그랬던 것 같다. 아들은 '엄마가 그렇게 좋아하는 모습은 처음 봤다' 고 지금도 가끔 말하곤 한다.
익산에 내려가 자취방을 얻어 주고 주인아줌마한테 잘 부탁드린다고 인사를 하고 올라왔다. 그런데 몇 달이 지났을까, 아줌마한테서 전화가 왔다.
“민선 학생이 남자 애들 데려오고요, 남자 애들이 잠자고 가고 그런다니까요.”
텔레비전에서 본 '지방 캠퍼스 커플'이 뇌리를 스쳤다. 얼마나 실망이 크던지, 밥도 굶고 눈물을 흘리며 기차를 타고 가는데 옆에 앉은 웬 할아버지가 물었다.
“애기엄마는 뭣 때문에 눈물을 흘리시오?”
점잖게 보이는 분이라 사정 설명을 했더니 손사래를 쳤다.
“내가 청주에 사는데, 하숙도 쳐보고 자취생들도 많이 보았는데, 우리 어른들이 생각하는 만큼 그렇게 이성 잃을 짓은 안 합디다. 그래도 대학생 정도 되면 자기 이성을 갖고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오.”
그 말씀을 들으니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았다. 참 고마운 분이었다. 자취방에 가 보니 민선이가 자고 있었다.
“민선아, 자니?”
“엄마! 어쩐 일이세요?”
깜짝 놀라는 애한테 자초지종을 말하니, 그때부터 나를 붙잡고 울면서 그동안 겪은 일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아줌마한테 받은 설움, 엄마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그동안 많이 울었다면서, 너무 심하게 간섭을 한다고 했다. 아줌마에게는 중학생 딸만 둘이 있는데, 그 애들보는 눈높이에 맞춰 대학생을 바라본다는 거였다.
그래서 스터디를 하려고 남학생들이 오면 '남자를 집에 끌어 들인다'가 되고, 남학생이 피곤과 졸음에 지쳐 잠깐 누워서 자고 있으면 '남자하고 잔다' 가 된다는 거였다. 민선이는 너무 서럽고 분해서 아줌마에게 편지를 썼다면서 그걸 건네주고 그 집을 나가겠다고 했다.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했으면 그런 생각까지 했겠는가 싶어 가슴이 아려 왔다. 하지만 집만 옮기면 되는 것이니 그러지 말라 만류하고 방을 옮겨 주어 사태를 간신히 마무리할 수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