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용이는 네 살 때부터 태권도를 다녔고, 어릴 때부터 무럭무럭 잘 자라 체격이 상당히 컸다. 그런데 네 살 때까지 말을 못해 걱정을 끼치더니 다섯 살 되기 직전이 되어서야 말문이 띄엄띄엄 터지기 시작하였다.
성정은 어릴 때부터 얼마나 착하고 공손했던지 내가 성당에 데려가서 "일하고 올게" 하면 "네" 하고 다소곳하게 앉아서 기다렸다. "여기 앉아서 책 보고 있어" 하면 "네" 하고 대답하고는 하루 종일엄마 올 때까지 책만 보는 거였다. 집에서도 "문 잠그고 있어라" 하면 "네" 해서, 평소 우리 집에 자주 오는 아줌마들이 "세용아, 우리 왔다. 문 열어라" 하면 "안 돼요. 엄마 안 계세요" 하면서 절대 문을 안 열어 주었다.
어려서부터도 뭘 시키면 철저하게 잘했다. 애들이 장마철에 물구덩에서 첨벙대고 놀면 물이 튈까봐 높은 데 가서 서 있는 아이였다. 운동화에 흙 하나 안 묻히고, 걸음을 걸어도 땅이 꺼질 새라 걸었다. 아버지가 그랬다니 역시 부전자전이었다.
지금도 남자애답지 않게 항상 방을 깔끔하게 유지함은 물론 성격도 무던한데, 공부하고는 이상하게도 담을 쌓았다. 그렇다고 말썽을 피지는 않는데 공부를 안 하는 것이다. 그런데 초등학교 3학년 때 시력 때문에 공부에 소홀했었다는 게 드러났다. 1학년 때 교통사고를 당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시신경이 좀 손상된 것 같았다.
안과에 데려가 검사를 해보니 시력이 마이너스 0.7이 나왔다. 그래서 돋보기 두꺼운 걸 썼는데, 애에게 돋보기를 씌워놓으니 코까지 납작코가 되어 인물이 너무 없었다. 땀을 잘 흘리니 자꾸 흘러내려서 안경 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다. 또 덩치가 크다 보니 매번 뒷자리에 앉아 수업은 뒷전이 되고, 기초가 부족하니 공부에는 흥미를 잃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제 큰누나가 호주에 어학연수를 하고 있어서, 온 가족이 민선이도 격려해 줄 겸 호주여행을 가기로 하였다. 그곳에 도착해 보니, 민선이가 세용이를 위하여 안과와 한국안경점까지 예약을 다해놓은 것이 아닌가! 동생을 생각하는 마음이 너무나 기특하고 자랑스러웠다.
“수술은 가능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적기가 아니고 26, 27살이 좋습니다."
그 나이가 되어야 눈이 성장을 멈추고 그때 해 주면 완벽하다는 말이었다. 병원에서 그렇게 희망적인 얘기를 해 주어서 우리 식구들은 모두 뛸 듯이 기뻐했다. 현 시점에서는 렌즈 착용도 가능하다고 하여, 한국안경점에 가서 렌즈를 맞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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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호주 골드코스트 공항에서 /뒷줄 오른쪽이 세용이(1995. 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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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부터 아들은 고개를 들고 다니고, 웃음이 생겼고, 자신감도 생기고 말도 잘했다.
세용이는 초등학교 3학년부터 6학년 때까지 성당 복사를 섰다. 복사란 신부님을 도와 미사가 원활히 진행될 수 있도록 보조해주는 사람으로서, 대개 신앙심이 깊고 똑똑한 소년들 중에서 선발되는 것이다. 세용이는 나중에 신학교를 가서 사제가 되겠다고 했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었지만 엄마 아빠는 기꺼이 동의를 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신학교에 진학하려면 성적이 상위 그룹에 속해야하는데, 세용이는 그러질 못했다. 낮은 시력 때문이었지만, 아무튼 신학교는 점점 멀어지는 듯했다.
중학교 3학년이 되어 고교진학을 해야 하는데 , 부천 시내에 있는 학교는 성적이 안되니 부천 외곽에 있는, 말하자면 3류 고등학교에 진학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부천 시내에 있는 정명고등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다. 그뿐인가, 우리가 부천에서 송도로 이사하면서 불가피하게 학교 전학을 왔는데, 공교롭게도 인천에서 명문으로 소문난 인하부고에 배정받은 것이다. 중학교 3학년 때의 실력이라면 어림도 없는 학교였다. 또 한 번 '안 되는 게 없는 아이' 라는 사실을 증명한 것이다.
하지만 인하부고 시절에 성적이 좋지 않아 신학교는 그만 포기하고 말았다. 신학교만큼은 그 정도의 운수대통으로도 인연이 닿는 것이 아닌 모양이었다.
세용이가 고교 2학년 때, 미국 서부 여행을 갔다. 유니버설 영화 세트장이며 디즈니랜드도 가고 도박의 도시 라스베가스도 갔다.
라스베가스에서 남편은 아이들에게 마음대로 해보라면서 2백 달러씩 주었다. 아이들은 그걸 들고 저마다 헤어졌는데, 2시간 후에 만나니 두 딸애는 빈털터리인데 세용이만 1백 달러가 남아 있었다. 세용이는 그렇게 깔끔하고 알뜰하면서 함부로 낭비하지 않는 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