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국을 며칠 앞두고 어느 호텔에서 여행정리의 시간을 가졌다. 여행 동안 느꼈던 점이나 속에 있는 말을 식구들끼리 서로 나누어 헛된 여행이 되지 않도록 하자는 취지였다.
그런데 세용이는, '내가 공부를 잘해 봐야지, 부모님 뜻에 안 어긋나는 아들이 돼야지' 하는데 항상 작심3일이라고 털어놓았다. 울면서 그동안 속에 꽁꽁 쌓였던 회한을 털어놓는데 온 식구가 다 울었다. 그런 세용이의 속뜻도 못 읽으면서 타박만 했던 나나 누나들이나 아버지도 가슴이 저렸다.
나는 돌아오는 중에 기내에서 세용이의 담임선생님한테 편지를 썼다. '얘가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으니 칭찬에 인색하지 않는 선생님이 돼 주시면 우리 애가 의욕적으로 학교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부탁을 드렸다. 그 다음부터 아이가 180도 달라졌으니 미국 서부 여행은 우리 가족에게 너무나 좋은 선물을 해준 셈이었다.
세용이는 공부를 안 한 편이어서 대학 입학 원서를 지방으로 넣게 되었다. 세용이에게 미안한 말이지만, 물론 식구들 가운데 기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8곳을 지원했는데 무려 6곳이 합격된 것이다. 그 기쁨과 감격이라니! 그래서 세용이는 한동안 식구들한테 오랜만에 으쓱거릴 수 있었다.
그 가운데 여러 가지 사정을 감안하여 중부대 경영학과 야간에 입학하였다. 이를테면 야간 대학이었는데, 희한하게도 1학년 때 야간학부가 주간과 합치면서 일반 대학이 되는 행운을 잡게 되었다. 참 안 되는 일이 없는 애다.
2학년을 마치고 신체검사를 받았는데, 시력이 나빠 4급이 나와 공익근무요원이 되었다. 그런데 평소에 애 아빠는 이렇게 강조했다.
“남자는 군대 에 가야 된다. 그래야 사람이 되는 거야.”
그런데 세용이는 대전에서 신체검사를 받아 4급이 나왔는데, 마찬가지로 눈이 안 좋은 이종사촌들은 인천에서 받아 전부 5급을 받았다. 그러니까 남편이 했던 말이 모든 부모의 마음을 대변해 주고 있다.
야 너도 인천에서 받았으면 니네 이종들처럼 면제될 수도 있었을 텐데.”
평소에는 늘 해병대를 강조하던 양반이, 막상 코앞에 자기 자식의 일이 닥치니 측은해지는 것이다.
공익근무는 박스를 80개씩이나 나르는 가발업체와 편의점을 거쳐 남동공단의 동아금속에 정착하여 28개월간 근무를 하였다.
근무하는 동안 세용이는 라식수술을 받아 호주에 가지 않고도 시력을 회복했고, 안경을 쓰지 않고 공익 근무를 성실하게 수행할 수 있게 되었으니 당사자는 물론 온 가족이 너무나 좋아했다. 나도 항상 아들의 눈만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졌는데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공익근무를 마치자, 복학하여 나름대로 열심히 생활하다가 2005년 2월, 대학생활 4년을 객지에서 무사히 마치고 졸업장을 내 앞에 내놓으며 큰 절로 감사 표시를 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였다.
아버지
사랑하고 존경했지만 좋아할 수 만은 없었던 아버지.
그러나 지금은 아버지가 너무 보고 싶습니다.
아버지 하늘에서의 생활은 어떠십니까?
저는 아버지가 눈을 감으시기 전에 활짝 웃으시던 모습과
그렇게 아프신데도 별일 아니라는 듯이
가족들을 편안하게 해주셨던 아버지의 모습 하나하나가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그런 아버지가 자랑스럽고 존경스럽습니다.
불철주야 일에만 매달리셨던 아버지.
제게는 늘 엄격하셨던 아버지
이제는 좋은 기억들만 생각이 납니다.
아버지 이번에 제가 대학을 졸업했습니다.
대학을 못 갈까봐 동분서주 하시면서
먼길을 마다않고 다니시던 아버지 감사합니다.
아버지가 항상 저에게 말씀하셨지요.
“무엇을 하던지 그 분야에서 최고가 되어라.”
하지만 저는 언제나 아버지의 기대에 못미쳤지요.
정말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아버지 앞으로 제가 살아가야 할 날과
할 수 있는 일들이 더 많습니다.
너무 실망하지 마세요.
아버지의 기대에 다가설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지켜봐 주세요.
아버지 그동안 너무 힘드셨지요? 평안히 쉬세요.
아들 세용(아오스딩) 올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