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3월 16일 일요일
2003년 3월 4일 오후 7시 25분(성가병원 특실에서).
12일전 남편 사별 후 처음 펜을 잡아본다.
이만해도 여유가 생긴 것일까? 아니면 더욱 그 사람이 그리워서일까?
투병 생활을 하면서 간호할 때는 몸이 고달프고 짜증도 났지만 그래도 행복했다. 옆에 있으니까.
누워 있어도 좋으니까 오래오래 가족 곁에 있어 주기만을 그토록 간원하였건만…….
하느님은 기어이 제 곁에서 그 이를 데려가셨다.
왜? 나의 기도는 안 들어 주는 것일까.
남들은 아무렇게나 살아도 있는 복 다 주고 또 주면서 왜 나에게만은 이런 시련을 주실까?
그토록 나는 업이 많은 것일까?
태어나면서부터 얼마 전까지 받은 고통, 시련, 시달림……. 무엇한 수월한 것 없이 다 겪어 왔건만.
차라리 그러려면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게 할 것이지 한 인간에게 너무 많은 시련을 주는 건 아닐까.
너무 화가 나고 분노가 치민다.
아버지, 도대체 왜 그러시는 건가요?
내 가슴은 울분과 분노와 가슴이 저림을 눈물로 대신합니다.
오늘은 아침부터 진종일, 밤 깊은 이밤에도 궂은비가 내립니다.
오늘은 그 이과 내가 1971년 3월 16일에 결혼 하였으니, 32주년 되는 결혼기념일입니다.
풀리잼에서 축하 케이크와 꽃바구니가 왔군요.
여보, 당신이 계셨으면 얼마나 기뻐하셨을까요? 동네 분들 모두 불러 모아 소주 한 잔 마시면서 좋아하셨을 거예요.
이 세상에 당신만한 양반 또 어디 게시겠어요. 언제나 너그럽고 애정이 넘치는 눈길, 부러운 말 한마디, “여부 사랑해요.” 하루에도 몇 번씩…….
이제 꿈에서나 들어볼까요.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당신의 그 눈길, 그 한마디, 나는 어떻게 살라고 먼저 가버리셨나요?
순간순간 북받치는 슬픔에 눈물을 참을 수가 없습니다.
여보, 당신은 어찌 저를 두고 이렇게 속절없이 바람처럼 홀연히 가시는 것입니까?
저의 박복함이 제 가슴을 치고 있습니다.
여보, 저를 지켜주세요!
2003년 3월 18일 화요일, 강화 마니산 행
오늘은 은정엄마와 정운엄마, 비비안나와 강화 마니산에 갔어요.
당신에게 가려고 생각해 보았지만 초라하게 모셔놓은 것이 싫어서 안 들렀어요.
처음으로 옛날처럼 큰 소리로 웃을 수 있었어요.
참성단에 올라가 보니 두 부부가 각각 나란히 앉아서 무엇을 먹고 있더군요.
순간 당신 생각이 났습니다. 왜 그리 부럽던지, 우리도 엊그제 그랬는데…….
어제도 료사와 요셉피나가 와서 연도해 주었고, 오늘도 와서 해 주었어요. 고맙기도 하지요.
당신 뜻대로 학원에도 나가서 대한민국 문인화대전 체본도 받았어요. 당신이 계셨으면 관심이 많았겠지요.
어제 재선이가 골프 연습을 처음으로 갔었는데, 당신 생각이 그렇게 나더라고 오늘도 얘기했어요.
어떻게 하면 당신과 함께 기쁘게 지낼 수 있을까요. 외국에 가 계시다고 생각할까요? 그러면 가엾은 생각이 덜 날까요?
당신이 살려던 그 의지가 너무 생생하게 떠오르며, 아파하던 모습이 지워지지 않습니다.
여보, 당신의 지금 모습은 어떠하세요?
아주 편안하게 고통도 번뇌도 없는 천상 낙원에 계신가요?
꼭 그러셨으면 해요.
당신은 너무 훌륭했어요.
정말 모범생이었다구요.
나하고는 비교가 안 되는…….
여보, 잘 자요.
저도 잘게요.
2003년 3월 19일 수요일
갑자기 생각해 보니, 당신 사망신고를 토요일 날 세용이와 함께 가서 하고는 세용이 도장과 묘지 안장 확인서를 안 가지고 온 것 같아 동사무소에 전화하니 없다고 하더군요.
이렇게 정신이 없어서야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당신의 빈자리가 왜 이리 큰지. 문득, 문득 내 가슴을 저미는 슬픔에 앞으로 어떻게 견뎌나가야 할지 걱정이 앞서는 군요.
당신이 저라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낮에는 어떻게 지낸다 할지라도 저녁이면 당신이 작업실 문을 열며 “여보, 나 왔어요!” 하고 들어오실 것만 같아요.
여보, 그런 당신을 나는 왜 그리 쌀쌀맞게 대했는지.지금 생각해 보면 후회가 막심하여 가슴이 슬퍼집니다.
저녁 때마다 방문해주는 사람도 언제까지 해줄는지 불안하고 슬퍼져요.
여보, 당신이라도 나타나서 나랑 놀아줘요. 나 홀로 어떻게 그 많은 날들을 그리움과 슬픔을 이겨나갈 수 있을까요.
산 사람은 산다는 것, 그 말뜻을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그 산다는 것이 얼마나 많은 괴로움과 고통을 이기며 죽지 못해 살아야 되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아요.
여보, 어때요. 정말 편안한 데 계신가요?
당신이라도 천상 낙원에서 안식을 누린다면 저는 어떤 외로움과 슬픔도 참아내겠습니다.
아이들 지켜주세요. 아직 아무도 안 들어왔네요.
그럼, 오늘밤도 안녕히 계세요.
당신의 창례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