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용현동에서 한복집을 하는 친구 경춘이한테 미리 부탁하여 인조견으로 하얀 바지저고리를 만들어 두었었고, 성가병원에 왔을 때부터 그걸 남편에게 입혔다. 환자 본인에게도 편한 옷이었고 보는 사람도 참 옷이 멋있다고 하였는데, 그게 그만 운명한 후 입에서 호스를 빼면서 피가 튀어 다 젖어버렸다.
다른 옷을 갖다가 입혀드리고 연수성당의 영안실로 옮겼다. 영정은 제주 가기 전에 몰래 사진을 찾아 쵀베드로 씨에게 부탁해 놓았었다. 그런데 혼자서 찍은 사진도 거의 없었고 정장을 입은 사진도 없어서 찾느라고 참 애를 먹었다. 간신히 찾아서 최베드로 씨에게 드리고 갔는데, 잠바를 입었지만 표정이 가장 잘 나온 사진이었다.
최베드로 씨의 동생은 잠바를 양복으로 고치고 넥타이도 매드리고 머리도 까만 머리로 만들어 훌륭한 영정 사진을 만들어 놓았다. 그리고 연락이 오면 금세 가지고 오려고 1주일 내내 차에다 싣고 다녔다고 했다.
그 영정을 화원에 맡겨서 국화로 장식하여 품위 있게 해서 안치했다. 짧은 3일장이라 문상객을 맞이할 수 있는 건 그날 하루뿐이었다.
밤부터 손님이 밀어닥치기 시작했다. 상을 차려내는 건 성당에서 전문적으로 하는 자매님들이 맡아 주셨다. 회사 사원들은 검은 양복, 검은 넥타이에 검은 리본을 달고 밖에서부터 쭉 횡대로 서서 길안내를 했고, 주차관리에 식사 대접까지 일체를 담당했다.
화환이 백 개쯤 되는 바람에 안을 채우다 못해 바깥에까지 길게 세워 길을 만들었다. 그렇게 검정색이 넘치다 보니 손님을 태우고 온 어떤 택시기사는 무슨 조직 폭력배 우두머리가 죽었는가 하고 생각 할 정도였다고 한다.
너무 짧은 기간이어서 손님들에게 폐가 될까봐 알리지 않았는데, 조문객이 그 하루 동안에 어찌나 많든지 학교 운동장에 서서 조회 하듯이 줄을 서서 조문을 해야만 했다. 그동안 남편의 음덕이 그만큼 넓게 퍼져 있었다는 증거였다.
두 시동생과 세용이가 상주를 보는데, 조문 온 남자 분들이 그렇게 가슴으로 울며 애통해했다. 남편이 어떻게 살았는가,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봐 왔지만 그 정도로 인정과 존경을 받고 있는 줄은 몰랐다.
다음날 아침, 출관을 위해 버스 두 대를 빌렸다. 해양기계 대자가 고인이 평소에 타보고 싶어 하던 체어맨을 가져와 세용이가 영정을 들고 모셨다. 회사에 들러 현장에서부터 사장실까지 영정을 모시고, 평소 고인의 체온이 남아 있는 회사 곳곳을 보여드렸다. 70명 넘는 회사 분들이 남동공단 전체가 숙연해지도록 오열을 터뜨렸다.
정든 회사를 뒤로 하고 집에 들러 집안 곳곳을 둘러본 다음 부평 화장터로 향했다.
납골묘는 평소 고인의 신념이었다. 국토도 좁고 손도 많이 가 자손을 괴롭히는 매장 문화는 이제 사라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말이 나오면 평소에 누구에게나 납골묘를 권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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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화 추모공원에만 가면 그리운 남편을 만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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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남편이 오늘날까지 인생을 훌륭하게 살아온 사람이기에, 조그만 산을 사서 대대손손 손자손녀에게 할아버지의 업적을 기렸으면 하는 계획을 세웠었다. 그런데 고인이 절대 안 된다며 완강히 고집하는 바람에 납골당을 사게 되었지만 나는 화장하는 게 너무나 싫었다.
화장을 하여 모시고 강화 추모원으로 갔다. 거기까지 따라오신 조문 행렬이 너무 길었는데, 그날따라 비가 많이 와서 손님들을 불편하게 해드렸다. 그런데 희한한 일은, 그 후에도 고인의 행사 때는 늘 비가 온다는 점이다.
본인이 슬퍼서 눈물을 흘리시는 것인지, 하늘이 고인의 승천을 축하하여 그런 것인지 모르지만, 나는 후자일 거라고 믿고 있다.
‘주여, 고인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