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3월 20일 목요일
일상대로 9시에 산에 갔다 왔다.
어젯밤 민선, 재선이와 함께 예상치 않았던 AFT 얘기를 전해 듣고, 놀라움과 당신의 빈자리에 대해 너무 절감했어요.
여보, 정말 이런 문제가 생기리라곤 상상도 안 해 보았어요.
당신이 안 계시다고 금방 이렇게 나올 수가 있는지…….
오늘 하루 종일 우울했어요.
당신이 보고 계시다면 도와주세요.
당신께서 생명까지 바치면서 세운 회사잖아요. 꼭 승소하도록 지켜주세요.
아이들이 너무 큰 과제에 부딪치고 있어요. 용기와 지혜로서 잘 헤쳐 나가도록 당신께서 보살펴 주세요. 오늘 하루 종일 우울했어요.
이 노트는 심원이 사주었어요. 당신하고 대화 많이 하라고. 고맙지요. 모두가 고마워요.
여보, 이 밤도 편안하고 행복하세요. 안녕.
2003년 3월 21일 금요일
오늘도 아픈 가슴을 달래고 있던 중, 어수향이가 와서 “사모님, 별일 없으셨어요?” 하며 지하방으로 들어와 당신 얘기를 했어요. 매우 안타까워하며 슬퍼했어요.
저녁 미사 후, 십자가에 길을 비추고 집에 와 요셉피나와 로사와 함께 당신에게 연도를 바치고, 노춘분(아네스) 자매님이 돌아가시어 은정아빠에게 조의금 보냈어요.
민선이와 얘기를 하면서 ATF의 몰인정한 처사에 정말 가슴이 뛰고 분노가 치밀었어요.
민선이가 이렇게 큰일에 직면하여 변호사 선임 때문에 내리 3일을 서울에 가서 세종이라는 국제변호사를 선임했다고 하대요.
당신은 돈 아끼려고 그랬지만 이렇게 되고 보니 우리쪽은 매우 불리한 모양이에요.
당신의 그 넋을 지키려고 최선을 다해 보겠지만, 서류상의 명백한 이유로 결과가 좋게 나올는지 걱정입니다.
여보,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어요? 당신이 도와주세요.
2003년 3월 22일 토요일
오늘도 또 하루가 지났다.
글리라 수녀님 만남.
일찍 성가병원에 가서 퇴원 비 정산하니 217,110을 환불받고 사망진단서 2통 떼고, 주민등록등본과 인감 떼어서 남인천 농협에 제출했다.
이 상무님, 민선이와 셋이서 점심을 먹고 집에 오니 만사가 귀찮았다. 한잠 자고 공부를 하려니 의욕이 안 생겼다. 죽지 못해 두 장 그려놓고 로시와 요셉피나 내외하고 대흥 해수탕에 갔다. 그냥 만나는 것이 좋아서. 와서 연도를 함께하고 갔다. 고마운 자매들.
윤석만 회장님께서 정성스런 편지 한 통을 보내셨다. 이런 재앙을 피하면 다른 재앙이 있다는 성경 말씀을 주시어 위로했다.
여보, 오늘도 서글픈 마음을 가슴에 안은 채 하루를 지내며 나에게는 ‘이제 행복이란 단어는 없구나’를 절감하며. 민산이도 AFT건 때문에 고심하며 여기저기 자문을 받느라고 머리를 식히고. 내가 도움이 되지 못하는 안타까운 심정에 그냥 당신 생각만 간절하군요.
여보, 저희를 도와주세요.
2003년 3월 23일 일요일
늦잠자고 일어나 당신께 인사드리고, 기도하고 11시 미사에 아이들과 함께 참석했어요.
더 큰 문제가 있으니 당신에 대한 그리움, 슬픔이 들어올 자리가 없나 봐요.
살이 마르고 애가 타 죽겠어요. 나도 그런데 민선이는 어떻겠어요.
내일은 어떤 질문에 어떤 대답으로 결정해야 하는지, 그저 걱정만 앞섭니다. 당신께서 지혜와 슬기를, 잘 풀어나갈 수 있는 힘을 주세요.
아이러니한 문제는 제시하지 않게 되기를 빕니다.
여보, 당신이 보고 계시다면 도와주세요.
당신 같은 분이 어디 계시겠어요. 당신은 정말 훌륭하셨어요.
오늘 오돈근 회장님 사모님이 전화하시어 당신의 업적을 높이 사신다고 하시더군요.
당신은 원 없이 하고 가셨고 모든 분들에게 길이길이 그 이름을 남기고 성대하게 가셨다구요.
그 부분은 저도 흐뭇해요. 평소에 검소하셨던 것, 가실 때 다 누리고 가신 것을…….
여보, 오늘은 일찍 자야 왜요. 내일 일찍 서울에 가야 되니까요.
안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