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3월 24일 월요일, 서울
여보, 오늘 4시에 서울 김앤장 변호사 사무실에서 회상 이사회를 했는데, 우리가 염려하던 것이 나왔어요.
합자회사를 할 때 당신이 끝 조항을 짚고 넘어가야 하는데 돈 든다고 안 하셔서 우리가 불리한 조건이에요.
변호사도 샀지만 방법이 없어 그냥 넘겨주는 것이 속편할 것 같아요.
당신의 흔적을 지키려 했지만…….
이것이 또 당신의 뜻인지도 모르죠.
일단 내일 그렇게 통보하기로 했어요.
그러니 당신도 너무 섭섭하게 여기지 마세요.
기운이 빠지고 가슴이 떨리지만 앞으로의 전망도 생각해 보았어요.
그쪽에서 어떻게 나올지 두고 봐야지요.
일단 여기까지예요.
여보, 안녕!
2003년 3월 25일 화요일
몸과 마음 다 지쳐서 일어날 의욕이 없다.
먹구름이 낀 마음과 날씨조차도 곧 터져 버릴 것 같은 하루.
이렇게 살아가야 하는 것이 인생인가!
저녁 때 아이들도 일찍 들어왔다. 의욕이 없어서 일을 못하겠다고.
AFT에 변호사를 통해서 연락을, 통보를 했다고 했다.
과연 어떻게 나올지.
여보, 아이들은 고민이 많겠지만, 그래도 당신에게 몹시 감사한 생각을 하고 있어요. 존경스러운 아버지로.
그래도 당신은 아이들 잘 뒸어요.
의연하고 꿋꿋하게 살아나갈 거예요.
여보, 고마워요. 이 말 밖에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편안한 밤 되세요.
안녕.
2003년 3월 27일 목요일
여보, 오늘은 생각지도 않던 아드리아나가 왔대요.
당신이 보냈다구요. 고마워요.
당신도 얼마나 걱정이 많으세요.
지금도 아이들과 앞으로의 살길을 검토하고 있었어요.
당신도 다 들으셨지요.
아이들이 건전한 생각과 노동의 대가를 바라고 있어요.
당신도 잘 지켜보시고 인도해 주세요.
오늘 학원에 갔다 오면서 사물을 보는데 눈에 들어오는 게 없었어요.
마음이 슬프고 저리면서 나에게는 이제 행복이란 단어는 영영 오지 않을 거라고.
당신이 안 계신 행복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렇게 철저히 준비하며 지키려 했지만 하느님은 저에게서 당신을 떼어 놓았어요.
여보, 앞으로 많은 날들 어떻게 버틸까요. 꼭 제 곁에 있어줘요.
언제나 함께 있어 주세요. 제가 외롭지 않도록.
여보, 잘 자요.
안녕히.
2003년 3월 29일 토요일
어제는 삼성의료원에서 종합건진을 받았어요.
당신도 진작 거기서 받았으면 살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안타까운 심정이었어요.
부부끼리 받는 분이 많이 있어 더 눈물이 나더군요.
너무 행복해 보였어요.
오늘은 아이들과 연안부두에 가서 회를 먹었어요.
당신도 계시면 얼마나 좋아하셨을까.
늘 마음이 저리고 슬픈 것은 당신의 그 부드러운 마음과 지극했던 사랑 때문일 거예요.
여보, 언제까지나 제 곁을 떠나지 마세요.
보이지 않는 당신을 바라보면서 의지하고 사랑하며 살게요.
당신을 위해서 애쓴 분들께 여행시켜 드릴까 해요.
허락해 주세요.
돈은 많이 들겠지만 그분들이 언제 그곳에 가보겠어요.
도와주세요. 추진할게요.
여보, 그곳은 춥지 않으세요?
더없이 행복한 곳에 계시리라 믿고 싶어요.
그렇게 기도드릴 거예요.
당신 위해서…….
안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