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3월 31일 월요일
두 딸과 함께 AFT와의 관계에 대하여 의논을 해보았어요.
쟁의까지 가자고 혈기로 말을 했지만 저는 반대했어요.
당신의 맥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감정싸움까지 가는 것은 당신도 원하지 않을 거예요.
당신의 이미지도 있고 긴 싸움치고 득 되는 게 없지요.
염 이사님도 여러 가지 대안을 가지고 오셨지만, 저희의 뜻을 분명히 했어요.
참 고마우신 분이세요. 당신이 다 닦아놓은 길이지요.
앞으로도 중요한 일은 의논해서 하려고 해요.
여보, 당신 많이 섭섭해요? 잘 지키며 키워 볼게요.
아이들을 잘 지켜주시고 보호해 주세요. 잘들 할 거예요.
저의 마음은 헤아릴 수 없이 쓰리고 아프지만 당신의 뜻이라 생각해요.
여보, 이만 잘게요. 피곤해요.
안녕.
2003년 4월 4일 금요일
오늘이 벌써 한 달 되네요.
여보, 이제 당신은 편안한 자리를 잡으셨나요.
당신만 바라보면 너무 불쌍한 생각이 들어 가슴이 아픕니다.
당신께서 좋은 자리에 계신 걸 알아야 제가 마음이 편할 겁니다.
여보, 보고 싶어요.
아직까지 아이들이 잘 해주고 있어요.
지난 화요일은 도봉산에 다녀왔어요. 김곡, 정 회장, 비비안나, 은정엄마 함께 갔어요.
진달래도 피고 산수유도 활짝 피어 봄 향기가 가득하더군요.
어제는 최기두, 고종상이랑 수양버들에서 저녁 먹었어요.
하와이 가자니까 너무 고마워하더군요.
오늘은 아침부터 몸이 무겁고 의욕이 나질 않아 한참을 망설이다 해수탕에 갔어요.
왜 그렇게 당신 생각이 나던지…… 가슴이 미어졌어요.
풀이 없이 목욕을 끝내고 집에 왔는데도 그저 아무 의욕이 안 나더군요.
경숙이가 난데없이 지나다가 들렀고, 경춘이가 점심 산다고 왔더군요.
3시나 되어서야 간신히 붓을 잡아 보았는데 다행히 기분이 가라앉았어요.
저녁미사에 ‘십자가의 길’, 삼척교회 목사님 이현주 씨가 오셔서 사순절 강론을 하셨어요. 숙제 잘한 학생이 학교 가는 발 걸음이 가볍다구요.
예수님 만나러 가려면 주님 사업에 동참을 잘 해야 된다구요.
고해성사도 보았어요. 예수님 밉다고.
여보, 당신은 어때요? 예수님 뵙기에 가벼운 발걸음이 되셨나요?
성당에만 가면 당신 생각이 더 납니다. 그래서 눈물이 자꾸 납니다.
오늘도 신부님 앞에서 울었어요.
여보, 도와주세요.
모든 일이 순조롭게 되도록 당신께서 도와주세요.
아이들이 무척이나 힘들어 해요. 사람이 할 수 없는 일 당신이 하실 수 있지요?
여보, 그럼 안녕. 잘 자요.
당신의 여보가.
2003년 4월 5일 토요일
오늘은 식목일, 나무 심고 성묘 가는 날이에요.
내년엔 당신에게 갈게요.
오늘 저녁에 법정스님 책을 보는데 마음을 비우라고, 두 개가 있으면 하는 남을 줄 줄 알아야 된다고 하시네요.
제가 욕심이 너무 많아서인가 생각했어요. 너무 집착하지 않을래요.
이미 당신은 우리를 위해서 많은 교훈을 남기고 가셨잖아요.
당신은 하느님께 가셨다 생각하겠어요.
소유욕이 너무 많았나 봅니다.
이제 하느님 원망도 안 할래요.
저도 얼마나 살지 모르니까요.
당신을 꼭 만나서 기쁘게 살 거예요. 언젠가를 기약하며 희망을 가질래요.
여보, 그럼 잘 지내고 계세요.
이 밤도 안녕!
2003년 4월 7일 월요일
여보, 오늘은 염 이사님을 만나 저녁을 먹었어요.
회사 간부들에게 AFT와의 관계를 얘기했다고 합니다.
물론 다 실망과 경악을 금치 못하면서도 우리를 원망하는 눈치도 있다고 합니다.
순조롭게 잘 해결해 나가도록 노력도 하겠지만 당신도 도와주세요.
여보, 나는 어제 오늘 아이들을 보면서 많이 컸다는 걸 새삼 느꼈어요. 야무지고 똑똑했어요.
여보, 걱정 안 하셔도 될 거예요. 당신의 뒤를 이어 잘 살아 나갈 겁니다.
항상 지켜주시고 보살펴주세요.
오늘 학원에 들렀다가 심원하고 공원에 갔었어요.
벚꽃이 봉우리가 맺혔어요.
소주와 밴댕이 집을 보며 당신 생각을 했어요.
당신이 늘 좋아하시면서 한잔 샀잖아요.
준일이 노 할머님도 운명하셨어요. 저는 안 갔어요. 연수성당 영안실.
그럼, 잘게요. 안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