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4월 9일 수요일
여보, 오늘 하루 불안하게 보냈지만 저녁에 아이들을 만나니 생기가 나더군요.
회사 직원들에게 사실을 알렸더니 노조 결성이니 워니 해서 회사 전체가 술렁술렁해서 아이들이 불안해했어요.
조철영 상무관이 와서 설명을 어떻게 했는지 좀 수긍을 하는 것 같대요.
여보, 당신 다 보시잖아요. 우리의 뜻대로 순조롭게 매듭짓도록 당신이 도와주세요.
이것이 다 당신 뜻으로 우리는 받아들여요.
강화 납골묘에 비문을 작성했어요.
당신의 업적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 텐테 당신 마누라 머리가 짧잖아요.
내 나름대로 적어보았는데, 아이들도 다 좋다고 하대요.
“여기 국가에서 필요한 사람
사회에서 필요한 사람
이제 하늘에서 필요한 사람 되다”
어때요? 여보, 당신에 대한 표현을 미약하지요? 성이 안 차지만 거기까지 밖에 생각이 안 나요.
여보, 사랑해요.
우리 이 다음에 만나요.
안녕.
2003년 4월 10일 목요일
그러고 보니 여보, 오늘이 우리가 이 집 짓고 이사 온지 만 8년이 되는 날이에요.
당신이 계셨다면 오늘 그냥 넘기지 않겠지요.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더니 너무 빨리 변했습니다.
아이들은 하루하루 가시밭길을 걷는 심정으로 회사에 출근합니다.
당신의 흔적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아이들에게는 고문과 같습니다.
그러면서도 며칠 안 남았네요.
우울하고 쓸쓸한 심경 어찌 다 표현하겠습니까.
여보, 당신도 말 좀 해보세요. 얼마나 가슴 아파하시는지.
아니면…….
여보, 도와주세요.
어떤 방법이 되든 순조롭게 되도록 당신께서 도와주세요.
2003년 4월 11일 금요일
오늘 지난달 28일에 종합검진 받은 것의 결과가 나왔어요.
다른 이상은 없고 신장에 물집이 있고 쓸개에 담석만 있다고 나왔어요.
그리고 223부인 친목회에 나갔어요.
로스트 뷔폐에서 했어요.
모두들 당신의 훌륭한 인격을 너무 아깝다고 했어요.
당신은 아무리 봐도 훌륭하셨어요.
아이들도 지금 겪는 고통을 아빠의 교훈으로 받아들이고 있어요.
아이들도 너무 대견스러운것 같아요.
어쨌든 앞으로 며칠을 잘 지켜보아야 해요.
좋은 결과를 갖게 해주세요.
당신을 믿습니다.
안녕.
2003년 4월 12일 토요일
여보, 오늘은 세용이가 왔어요.
송도갈비공원에 가서 갈비를 먹었어요.
당신 생각이 났어요.
해수탕에도 갔어요.
하와이 가려니 왜 이리 복잡하고 돈도 많이 드는지 포기할까 하다가 끝내 추진하기로 했어요.
당신을 위해서 애쓴 분들이에요.
과용하는 것 알아요.
다들 오라고 해서 의논도 하고 자유공원에 가서 벚꽃 구경도 했어요.
만개한 것도 있고 덜 핀 것도 있었어요.
‘소주와 밴댕이의 만남’도 갔었지요.
작년만 해도 당신과 함께 밤을 낮 삼아 다녔는데 당신은 벌써 옛사람이 되셨군요.
오늘 회사에서 애들이 당신 사무실에 있던 상패와 사진 등을 가져왔어요.
너무나 마음이 아팠어요.
당신의 생생한 모습, 흔적들이 선연했어요.
어디에다 모셔놓을까 생각중이에요.
여보, 당신은 정말 고생만 하셨어요.
천상낙원에서 잘 지내셔야 해요.
하느님께 늘 전구할게요.
당신은 좋은 사람, 착한 사람이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