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4월 13일 일요일
여보, 오늘은 성지수난 주일이에요.
11시 미사에 예식을 했어요.
요즘은 딸들하고 꼬박꼬박 다니고 있어요.
세용이도 2시쯤 갔는데 소식이 없네요.
아이들도 회사 인수인계 문제 때문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어 무슨 말을 못하겠어요.
내일 협상을 한다는데 여보, 당신이 아이들을 도와주세요.
지혜롭고 슬기롭게 잘 타협하도록 당신께서 도와주세요.
저는 내일부터 당신 제사 준비에 들어가야 돼요.
손님 맞을 준비를 해야지요.
작품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그냥 끝내려고 해요.
늘 그래 왔지만 화제가 또 엉망이에요. 기대는 않겠어요.
그냥 내일 마무리되었으면 해요.
당신이 계셨다면 또 신이 나서 좋아하셨을 텐데.
역시 당신은 좋은 분이에요. 멋있었어요.
어젯밤 당신을 만나 꿈에 나하고 재미있게 놀았지요.
고마워요.
잘 자요. 또 만나기를…….
안녕.
2003년 4월 14일 월요일
여보, 오늘은 마음도 몸도 힘든 하루였어요.
내일은 정말 가슴 아픈 날이 될 겁니다.
여보, 당신이 그토록 아끼며 사랑했던 회사, 생을 다 바쳐 세운 회사 풍남 기계가 없어지는 날이에요.
여보, 당신도 슬프지요? 얼마나 애통하세요.
우리 모두가 가슴 아파해요.
그 일로 오늘 허원 서방님과 김종원 루까 대자가 왔다갔어요.
다들 어이없어 했지만 방법이 없잖아요.
그리고 제주도 김한준 설계사무소 소장님이 전화하셨어요.
당신 소식을 들으셨다고, 안타까워 하셨어요.
고맙더라구요.
어쨌든 내일 일이나 예정대로 잘 되었으면 좋겠어요.
여보, 당신의 뜻이라면 도와주세요.
회사 직원들과의 관계도 원만하게 해주세요.
당신이 항상 믿고 따라오라고 하신 말씀 때문에 많이 서운한가 봐요.
잘 어루만져 주세요.
꼭 부탁해요. 응?
2003년 4월 15일 화요일
여보, 만 19년(28일이면)만에 풍남기계가 막을 내렸네요.
1984년 4월 28일에 세운 풍남기계 제작소가 당신이 떠나시니 한 달 만에 이렇게 되었군요.
AFT가 잘하겠지요.
아이들이 똑똑해서 주식과 배당금까지 받았어요.
더 받을 수 있었지만 당신이 다 해놓으신 것이라 더 받을 수가 없었어요.
앞으로 아이들과 머리를 맞대고 잘 지키며 더 많이 벌어 놓을게요.
당신 실망시켜 드리지 않을 거에요.
회사 사원들의 복지후원금으로 주식의 5%를 주기로 했습니다 (1억7천만 원).
회사가 더 많이 성장하여 직원들에게 이익이 많이 갔으면 더 바랄 것이 없겠어요.
당신이 목숨을 바치면서 지킨 회사이기에 더 잘될 것입니다.
여보, 편안하세요.
당신이 영원한 복을 누리시면 더 이상 저는 슬퍼하지 않을 거예요.
아이들도 너무 가슴 아파해요.
차도 핸드폰도 다 두고 2시에 회사를 나왔어요.
2003년 4월 17일 목요일
여보, 오늘도 아이들과 늦게까지 앉아서 당신 앞에서, ‘당신은 정말 훌륭하셨다’는 얘기를 하며 감사를 드렸어요.
하늘나라에서 늘 행복하시고 평화롭게 나날을 보내세요.
지상에서 못했던 것 하늘에서 다 하세요.
골프도 아주 잘 치시고 바람도 피위보시고 술도 원 없이 드세요.
제가 늘 제지했던 것, 후회하고 있어요.
당신에게 더 잘해 주지 못한 것 말예요.
회사는 그냥 풍남AFT로 한 대요. 고맙죠.
최 부장님이 대표 물망에 올랐고, 우선 이사직으로 대우하기로 카리 씨가 지명했대요.
늘 충성스럽고 성실성이 보였는데 하느님이 복을 주신 것 같습니다.
여보, 고마워요. 당신이 도와주셨지요.
앞으로도 잘 지키고 잘 발전시키면서 살아볼게요.
당신이 늘 지켜주세요.
오늘은 성목요일 세족례가 있었어요.
또 당신 생각 했지요.
잘 자요. 당신 제 곁에서 항상 계셔주세요. 떠나지 마세요.
탈상 후에도 말이에요.
안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