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7월 22일 화요일
여보, 안녕. 오늘도 잘 지내셨어요?
저도 즐겁고 고달픈 하루였어요.
버스를 11시간 탔어요.
산과 들, 사람, 광물, 생물, 동물, 식물을 오랜 시간 차창 밖으로 보면서 당신 생각과 함께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일생의 고달픔을 느끼며 살았던 생각과 마음을 바꿨습니다.
제가 사람으로만 태어나지 않았어도, 어떤 미생물로 태어났더라도 쉽지 않은 시작과 끝이 없는 행로를 갔을 거라는 생각을 하니 한편으로는 인간으로 태어난 것을 감사하게 느꼈습니다.
이제는 생각과 마음을 바꿔 아름다운 생활로 만들며 살겠습니다.
당신도 도와주세요.
모든 걸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당신이 안 계신 오늘 해프닝이 많았습니다.
길을 다 잃어버렸어요.
이제 넋이 나갔나 봐요.
안녕히 주무세요.
2003년 7월 31일 목요일
여보, 벌써 7월이 다 갔네요.
가는 세월 잡지 못하는 것, 참 빠르네요.
일요일에는 아이들 데리고 당신에게 가려고 해요. 기다리세요.
당신 더 좋은 자리로 이사시켜 드리려고 하는데, 좋으시지요?
그나저나 문제가 생겨 아이들과 고민 중에 있습니다.
당신이 언질을 좀 주세요.
하느님께 간구하시어 좋은 길로 인도해 주세요.
너무 답답해서요.
안녕히 주무세요.
2003년 8월 2일 토요일
여보, 기쁘셨어요?
그런데 죄송해요. 술을 빼먹어서, 다음엔 꼭 갖추어서 갈게요.
원종동 형님과 순임이 조카 보셨지요. 궁금해서 오셨대요.
다들 열심히 살고 있대요.
산다는 것 역시 힘들고 어려워요.
당신이 다 아시니까, 그만 줄일게요.
안녕히 계세요.
2003년 8월 3일 일요일
여보, 안녕.
당신 오늘 주일 잘 보내셨어요?
저도 처음으로 세용이까지 함께 미사를 갔습니다.
최관일 벨라도 형제님이 신자들의 기도를 하셨어요.
명이 긴 분은 그렇게 투병생활해서 나아가시는데,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여보, 보고 싶어요. 당신도 제가 보고 싶지요?
하지만 당신은 맘대로 하실 수 있지 않을까요.
오늘은 날씨도 궂었지만 하루 종일 마음이 우울했습니다.
박도환이 매일 좋은 시, 그림, 기도를 이메일로 보내주어 너무 고마워요.
이 신부님도 보내 주십니다.
이 모든 기도가 당신에게도 전달되기를 바랍니다.
오늘도 또 하루가 저물었군요.
안녕히 계세요
.
심원이 사준 일기장 다 썼네요.
2003년 8월 4일 월요일
여보, 당신도 알고 계시겠지요.
현대그룹 회장 정몽헌 씨가 오늘 사옥에서 자살을 하셨다고 합니다.
대북 사건 150억에 대한 검찰 수사 업력 때문에 그런 것 같다고 합니다.
당신이 계셨다면 얼마나 애통해 하셨을까 합니다.
돈과 명예를 다 버렸네요.
세계의 여론도 만만치 않을 것 같습니다.
지금 현재 정부과 경제가 너무 걱정이 됩니다.
당신이 이 어려운 현 시대를 잘 헤쳐 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세계 속의 한국을 자랑해 온 현대가 이렇게 무너지는지…….
아무리 정법대로 살아보아도 국가나 사회는 아무런 대응을 해주지 않습니다.
모든 건 하느님의 뜻에 맡겨드리겠어요.
안녕히 계세요.
2003년 8월 8일 금요일
덧없는 하루가 또 지났어요.
당신과 나는 너무 삭막하게 살았나 봐요.
여유없는 삶, 시적인 구상이란 아예 없고 오직 현실적으로 살았지요.
오늘은 민선이도 하루 종일 바빴고, 재선이도 시험 보러 아침 일찍 서울에 갔지만 시험을 만족스럽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세용이도 큰 누나가 일을 시켜 하루 종일 서류 정리하면서 지금도 누나랑 하고 있어요.
다들 힘들어 해서 외식을 했습니다.
메종이라고 프랑스 음식점이 생겨 갔었어요.
먹으면서도 아버지 얘기를 했어요. 아버지 계셨으면 좋아하셨을 거라구요.
여보, 당신은 왜 그리 빨리도 가셨나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되며 그저 서글퍼요.
앞으로 나 어떻게 살아요.
밥만 먹는다고 사는 것은 아니잖아요. 차라리 당신 곁으로 가고 싶습니다.
아이들만 아니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