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2월 14일 토요일, 이 지점장님 만남
여보, 정말 오랜만에 당신에게 펜을 듭니다.
그동안 마음에 죄를 많이 지어 당신에게 가까이 하지 못함을 용서하세요.
오늘 당신에게 가서도 너무 추우니 드릴 말씀을 다 드리지 못하고 왔습니다.
아이들도 아마 그랬을 거예요.
그리고 오늘 이남식 본부장님도 만나 뵈었어요.
서울 동대문 밀레오레 앞 동화반점에서 뵈었어요. 당신 얘기 많이 했어요.
그동안 너무 힘들었어요. 작품도 그러했고, 가슴도 너무 슬펐습니다.
여보, 당신이 정말 보고 싶습니다.
그동안의 부족했던 것, 다 용서해 주세요.
그리고 저에게 용기와 힘을 주세요.
당신이 약속하셨던 것. BMW 차 샀어요.
고마워요. 지켜주세요. 안녕!
2004년 2월 28일 토요일
여보, 어제 어떠셨어요? 화는 안 나셨는지요? 예쁘게 봐주세요.
용서를 빕니다.
저의 마음속에 당신은 항상 존재하고 계십니다.
슬프고 안타까운 마음 가눌 수 없지만 아이들이 잘 견디고 있어 슬픔을 이기려 안간힘을 씁니다.
그래도 당신 때문에 제가 이렇게 버틸 수 있는 것 당신도 아시지요?
당신은 정말 보람 있고 가치 있는 생을 사셨어요.
모든 분들이 당신 생각 많이 하며 애도하고 있어요.
당신이 가시는 바람에 저는 지금까지 가꾸고 다듬어 온 인생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여보, 지켜주세요. 당신이 그토록 사랑했던 아내잖아요.
여보, 당신 보고 싶어요. 많이 많이 많이…….
날마다, 언제나 슬퍼요.
내일 세용이 생일이에요.
2004년 3월 6일 토요일/3월 4일 기일
여보, 당신 많은 분들 만나 보셨지요?
너무나 억울하고 가슴 터지는 심정을 털어놓는 것 같았어요.
눈이 잠시에 그렇게 많이 내리고 천둥 번개까지 동반하였어요.
오신 분들이 영원히 가슴에 남을 겁니다.
여보, 당신뿐이 아닙니다.
저도 이렇게 살아는 있지만 당신 못지않게 가슴을 적시고 삽니다.
차라리 당신 곁으로 가고 싶습니다. 가면 만날 수 있겠지요.
아이들도 내색은 안 하지만 아빠 생각이 얼마나 나겠어요.
여보, 아이들 잘 지켜주세요.
그래도 의연하게 살아가고 있어요.
여보, 왜 이렇게 슬픈 거예요?
저보다 더한 사람도 많던데 어떻게 견뎠을까요?
제가 너무 의자가 약한 것일까요?
저도 이렇게까지 약할 줄 몰랐어요.
허물어져 가는 제가 싫어요.
꿈에서라도 보게 해주세요.
2004년 10월 18일, 당신의 숨결이 가득한 제주 집에서
한라산을 돌아 서귀포. 중문의 이정표가 나오면 제 가슴에 숨어 있던 슬픔과 그리움이 봇물처럼 쏟아집니다.
당신과 노후를 아름답게 보내기 위해 먼 곳 제주도까지 와서 바다가 보이고 한라산이 보이는 아름다운 집을 지었지만 당신은 어디로 가시고 저 홀로 이렇게 눈물지어야 하나요.
우리는 행복했지요.
아홉 달 동안 백세 번의 비행기를 타가면서 건축을 지켜보았지요.
당신이 바람처럼 홀연히 떠나신 후 그 빈자리를 지키면서 저는 삶에 무게를 잃었습니다.
행복 자체가 당신이셨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페인트가 옷 전체를 물들이는 막노동의 고달픔에서도 부부가 함께 하는 것을 보면 그것이 곧 행복이라고 느껴집니다.
집안에는 당신의 향기가 곳곳에서 숨을 쉬고 있었어요.
한참이나 넋 잃은 사람처럼 앉았다가 눈을 떴습니다.
당신하고 함께 갔던 집 뒤 고근산에도 가보았습니다.
억새풀이며 잡초며 들꽃들이 변함없이 피어 있었어요.
한라산도 보이고, 앞바다의 범섬, 잔잔한 은빛 물결, 하늘과 맞닿은 수평선, 수평선 너무에는 당신이 계신 것만 같았어요.
당신의 모습이, 당신의 숨결이, 당신의 흔적이 저에게 손짓을 합니다.
당신에게 가고 싶습니다.
보고 싶습니다, 여보.
울보 아내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