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1년 5·16 군사혁명이 일어난 직후 나처럼 3개월간 군의학교에서 훈련받고 교수요원 확보 정책에 따라 조교로 대학에 남은 사람과 의병제대한 사람, 그리고 미국 유학길에 올랐던 사람들이 군대의 희생양이 되었다. 육군의무감은 이런 사람들을 모두 연줄을 동원해 군대를 가지 않은 파렴치범으로 몰았기 때문이다.
병 때문에 군에서 의병제대한 전역자도 모조리 재소집됐다. 심지어 결핵으로 폐에 구멍이 뻥뻥 뚫린 사람도 군대에 다시 가야 했을 정도로 험악한 분위기였다. 하긴 당시 병역 제도는 내가 생각해도 엉망이었다. 국회의원에 출마하기만 하면 바로 예비역이 되곤 했다.
내가 아는 J교수도 당락에 상관없이 군 면제를 받으려고 국회의원에 출마하기도 했다. 문제는 장기복무자의 불평이 심했고 당시 군의감이었던 K대령이 군법을 무시하고 해외유학파에 대해 심한 편견을 갖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번에 육군에 재소집된 해외유학파 군의관은 앞으로 5년은 군에서 썩을 생각을 해야 한다고 공공연히 엄포를 놓았다. 남들처럼 부정한 방법으로 군에서 빠진 것도 아니고 국방부의 지시로 대학에 남았는데 억울하기 짝이 없었다. 한창 물이 오른 젊은 학자에게 별안간 비상시도 아닌데 예비역을 재소집하는 군입대라니, 이는 군법에도 위반되고 국가를 위해서도 손실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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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61년 서울대 교정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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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결국 1962년 1월 나는 군에 다시 소집되어 부산에 있는 육군의무시험소에서 군의관 생활을 다시 해야 했다.
군대에 있으면서 연구할 것이 없어 마냥 소일하기가 안타까웠으며 내가 한 일이라곤 저녁이면 동료들과 마작과 화투를 치는 것이 고작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규율을 강조하는 군에서 자율적인 연구란 연구비가 없어 꿈도 꿀 수 없었다. 시간만 나면 정신교육 등 별의별 교육 시간을 만들어 내 뻔한 이야기를 반복해서 듣도록 강요했다.
군법에 의하면 박사학위 소지자는 소령으로 임명하기로 되어 있으나 그들은 나에게 대위 계급을 주었다. 다분히 감정적인 인사였다.
다행히도 5년이나 군대에 있어야 한다는 처음 걱정과 달리 예비역은 전시가 아니면 1년 이상 징집할 수 없다는 법률 규정 때문에 우리는 1964년 2월에 제대할 수 있었다.
하지만 피보다 소중한 1년을 군에서 허송세월로 보낸 것은 지금 생각해도 애석하기 짝이 없다. 오죽하면 미국에 있던 은사인 쉬러 교수마저 나의 군징집을 안타까워하는 편지를 보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