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남들보다 앞서 1967년에 골프를 배우게 된 것도 순전히 랜드로버 때문이다. 지금도 골프를 치기 위해선 돈이 많이 필요하지만 당시엔 돈보다 자동차가 문제였다. 골프장까지 가려면 자동차가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시엔 돈이 여간 많지 않고선 자가용을 가질 수 없었다. 골프를 좋아했던 동료교수와 친구인 개업의들이 자연 내 차에 눈독을 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들 덕분에 나는 골프를 배웠으며 또 그들을 따라다니며 공짜 골프를 가끔 즐길 수 있었다.
그러나 골프와의 인연은 이내 접어야 했다. 연구비를 따냈으니 결과를 내놓아야 했기 때문이다. 6만 달러나 되는 돈을 지원한 미국국립보건원은 결코 허술하지 않았다.
6개월마다 영수증을 빽빽이 첨부해 연구비 사용 내역과 함께 중간 연구 결과를 양식에 맞춰 보고해야 했다. 나의 연구 주제가 일본뇌염바이러스의 월동기전이었던 관계로 나는 자연히 모기와 친해질 수밖에 없었다.
랜드로버를 타고 전국을 누비며 모기 사냥에 나섰다. 모기를 잡기 위해 처음 사용한 방법은 백열전구와 선풍기를 동원한 원시적인 것이었다. 밤에 백열전구를 환하게 켜고 선풍기를 돌리면 불빛을 보고 몰려온 모기떼들이 선풍기 바람에 휩쓸려 미리 쳐놓은 그물에 포획되는 방식이다.
일종의 무인 채집법인데 저녁에 이렇게 장치를 해놓고 다음날 아침 돌아와 보면 한꺼번에 5천 마리 정도의 모기가 잡혀 있었다. 이렇게 잡은 모기를 연구원들이 일일이 핀셋과 돋보기를 들고 뇌염모기만 가려낸다. 뇌염모기는 수백 마리씩 갈아서 바이러스의 조직배양을 거친 뒤, 쥐의 뇌 속에 접종해 분리하곤 했다.
나중엔 백열전구 대신 드라이아이스를 썼다. 드라이아이스가 기화되면서 이산화탄소를 내놓는데 모기가 가장 좋아하는 냄새가 바로 이산화탄소이기 때문이다. 모기의 생태도 중요한 연구 대상이었다.
독자들도 의학상식의 하나로 알아 두면 좋을 것이다. 모기가 가장 좋아하는 동물의 피가 무엇인가 하는 것인데 내가 직접 조사해보니 돼지가 첫째요, 사람이 두 번째며 말이 세 번째였다. 사람 가운데서도 특히 뚱뚱하고 땀을 많이 흘리는 사람을 모기가 좋아하는데 이 모든 열쇠는 피부에서 발산하는 이산화탄소에 있다.
|
|
| ▲ 일본뇌염 전문가인 일본국립예방위생연구소 바이러스 연구부장 오야 히로시 박사와 함께 |
|
돼지는 모든 짐승 가운데 가장 이산화탄소를 발산하는 함량이 많았으며, 뚱뚱하고 땀을 많이 흘리는 사람의 숨과 땀 속엔 다량의 이산화탄소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모기는 하루에 4㎞를 거뜬히 날아갈 수 있다. 뇌염모기가 영등포에 나타나면 다음날에는 서울 도심까지 날아올 수 있다.
모기는 해발 2백m 이내의 고도에서 흔히 서식한다. 예컨대 용평처럼 고지대에 갈 땐 모기약을 가지고 갈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당시 뇌염은 한국인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다. 1958년엔 6천여 명의 환자가 발생해 2천여 명이 생명을 잃었다.
당시 나는 우이동과 영등포, 의정부 등 서울 근교와 경기도 이천, 전라도 정읍 등지를 찾아다니며 뇌염모기가 초여름에 일찍 발견되면 지체 없이 기자들에게 알려 주었는데, 그 즉시 뇌염 경보가 보도되었다. 당시 국립보건원은 뇌염모기를 찾아내고 바이러스를 분리할 여건을 전혀 갖추고 있지 못했기 때문이다. 부끄러운 일이었다.
한번은 학장이 나를 불러 방금 국립보건원의 상위 기관인 보건사회부장관으로부터 전화가 왔는데 “왜 당신이 뇌염모기를 잡고 언론플레이를 하느냐”라는 질책과 함께 사회적으로 공연히 불안감만 조성할 수 있으니 뇌염모기 발표를 중단하라는 것이었다. 국민의 생명을 보호해야 할 주무부처가 보건원의 무능함을 숨기기 위해 엉뚱한 소릴 늘어놓는 것에 대해 참을 수가 없었다.
나는 학자의 연구 결과와 소신을 걸고 뇌염을 예방하기 위해 뇌염모기 발견 사실을 발표한 것이지 개인적 영달을 얻고자 함이 아님을 분명히 했다.
1964년부터 1972년까지 나는 국립보건원을 대신해서 내가 직접 전국을 누비며 뇌염모기 주의보를 내렸다. 어느새 내겐 모기 박사란 별명이 붙었다. 나를 비난하던 보사부는 최근엔 매년 여름 국립보건원에서 뇌염모기를 발견하면 TV, 방송과 신문매체를 통해 뇌염경보를 발표하고 있다. 바람직한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