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실에 나타난 새끼 뱀 (제16화...

1965년 전까지만 해도 독이 없는 뱀은 한국 어디서나 쉽게 잡을 수 있었다. 특히 3~4월 초 시골에 가면 동면에서 깨어난 뱀들이 따뜻한 햇살을 찾아 철도길 아래에 있는 돌담으로 된 둑에 나와 일광욕을 즐기는 것을 볼 수 있을 정도로 많았다. 그런데 1966년경부터 신문에서 뱀이 몸에 좋은 보약이라 떠들어 대면서부터 뱀을 마구 잡아 뱀탕집이 서울 시내 곳곳에 생기게 되고 시골에선 뱀을 잡기가 어려워졌다.

나의 뇌염 연구에는 실험동물로 뱀이 필요하였다. 그러나 나의 연구원은 뱀을 잡을 수 없어 할 수 없이 돈을 주고 시골에서 뱀을 사기로 결정하였다. 고향이 경기도 여주인 나의 운전기사 말에 의하면, 5일장이 열리는 날에 여주 시장에 가면 얼마든지 뱀을 싸게 살 수 있다고 하기에 그에게 10만 원을 주고 휴가를 주면서 여주에 가서 뱀을 사 오라고 했다.

이틀 후 그가 사과궤짝에 뱀을 사 왔다고 하기에 마당에 내려가 뚜껑을 열어 보고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수십 마리의 뱀이 서로 새끼줄처럼 꼬이고 범벅이가 되어 머리만 쳐들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너무나 징그럽고 끔찍한 장면을 보고 몸이 바르르 떨렸으며 눈을 돌리고 기사에게 빨리 뚜껑을 닫으라고 소리쳤다.

후에 보고를 받았는데 그 사과궤짝에는 약 200마리의 뱀이 엉켜 있다는 것이며, 독사는 없고 무자치와 구렁이라고 했다. 사 온 뱀들은 전부 실험에 사용했으며, 가는 주사기로 콩알만한 뱀의 심장에서 피를 뽑아 일본뇌염바이러스에 대한 항체를 검사했다.

큰 뱀의 심장에서 주사기로 채혈하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으나 새끼손가락보다 작은 뱀의 심장에서 주사기로 피를 뽑는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며, 숙련된 기술자만이 할 수 있다. 뱀은 채혈 후 실험에 써야 하기 때문에 죽일 수가 없고 살려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뱀을 보기만 해도 도망 갈 정도로 싫어했으나 연구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뱀 실험을 2년간이나 했다.

동물실험실 내에는 뱀을 보관하는 나무통이 여러 개 있었는데 모기장같이 구멍이 제일 작은 철망으로 통을 둘러쌌다. 그런데도 어이없는 문제가 터지고 말았다. 그때 나는 뱀은 모두 난생, 즉 알에서 부화하여 새끼가 나온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은 태생, 즉 새끼가 뱀의 뱃속에서 직접 나온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이다. 뱀의 뱃속에서 실오리 같은 작은 새끼가 나와서 철사망의 작은 구멍을 빠져나와 여기저기 돌아다니게 되었으니 큰 소동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 일본뇌염 연구에 몰두한 1968년 서울의대 미생물학 연구실에어의 나

우리가 연구에 사용한 뱀은 모두가 독이 없는 것으로 등이 붉은 무자치가 대부분이었고 간혹 구렁이 새끼도 있었다. 보통 독이 없는 뱀의 머리 모양은 둥글지만 독사는 머리가 삼각형이고 몸통도 짧기 때문에 쉽게 구별할 수 있다.

나는 사람이 뱀에게 물렸을 때와 같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말레이시아에서 독사의 항독소 세 종류를 주문하여 항상 냉장고에 보관하고 있었다. 응급처치와 치료용이었는데 그때부터 20년이 지는 지금도 냉장고에 갖고 있다. 아마도 유효기간이 이미 지났을 것이다.

요즘 우리나라에서는 뱀 씨가 거의 말라 버린 것 같다. 뱀이 정력제라고 하니 땅꾼들이 마구 잡아 팔아먹어 씨가 없어지고 장사꾼들은 외국에서 수입하여 뱀탕을 해 판다고도 한다. 그것도 모자라 동남아로 뱀탕 먹으러 관광 간다고 하니 큰일이다. 그런데 정력제라는 뱀을 먹고 사는 동남아 사람들의 평균 수명이 50세도 안되니 다시 생각해 볼 문제가 아닌가 싶다.

실험 대상에는 모기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일본뇌염바이러스는 왜가리, 뱀이나 박쥐와 같은 동물에서도 발견되기 때문이다. 요즘에는 뱀이나 박쥐를 흔히 볼 수 없지만 1960년대 말까지만 해도 지천으로 깔려 있었다.

한번은 의정부의 한 초등학교에서 뇌염이 집단 발병한 적이 있어 찾아갔더니 학교 지붕 밑에서 수천 마리의 박쥐 떼가 발견돼 소스라치게 놀란 일도 있었다. 기왓장을 들고 손을 집어넣었더니 박쥐가 한 움큼씩 잡히는 것이 아닌가. 교실의 천장에서 학생들의 책상 위로 박쥐의 오줌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뇌염바이러스의 숙주동물이 박쥐였던 것이다.

그 후 학교에서 지붕을 뜯어내고 박쥐 떼를 쫓아냈더니 뇌염 환자가 더 이상 발생하지 않았다.

뱀과 관련된 심각한 에피소드가 있다. 사과궤짝에 뱀을 가득 채우면 4백 마리 정도의 뱀이 들어간다. 우리는 우이동에 있는 논바닥을 파고 겨울 내내 바이러스를 주사한 뱀을 월동시킨 뒤 다음해 봄 뱀의 혈액 중에 뇌염바이러스가 살아 있는지를 밝혀내는 실험을 했다. 실험을 위해선 겨울잠을 잔 뱀을 연구실로 가져와야 한다. 이미 기술한 바와 같이 문제는 뱀도 종류에 따라 알을 낳지 않고 새끼를 뱃속에서 친다는 것을 나는 몰랐던 데에 있다.

알이야 매일 연구원들이 수집해 소각하니 큰 문제가 되지 않았으나 갓난 새끼 뱀은 실처럼 가늘어 거의 육안으로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결국 사고는 의대 구내에서 터지고 말았다. 당시 나의 연구실은 서울대의대 3층에 있었고 바로 내 방 아래가 나세진 서울대의대 학장 방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 나학장의 호출을 받고 그의 방에 가보니 방바닥에 조그만 뱀 새끼 한 마리가 죽어 있지 않은가. 알고 봤더니 나의 동물실험실에서 철망을 빠져 나온 뱀 새끼가 방바닥에 있는 전기배선의 관을 타고 나 교수실로 내려갔던 것이다. 나는 나 교수로부터 실험을 잘하라고 실컷 야단맞고 죄송하다고 싹싹 빌었지만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사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