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그러운 뱀 이야기가 이왕 나왔으니 상식으로 알아 둘 만한 이야기를 해야겠다. 의학과 의료를 상징할 때 자주 뱀이 디자인 속에 나타난다. 내가 군의관으로 있을 때 한국군이나 미군의 군의관 배지에는 지팡이와 뱀 그림이 상징으로 되어 있는데도 나는 오랫동안 그 의미를 잘 몰랐다. 후에 알고 보니 이것은 그리스 신화에서 유래된 것으로 의약신인 아스클레피오스가 갖고 다닌 지팡이에서 유래된 것이었다.
아스클레피오스는 베리온 산의 동굴에 살면서 많은 약초를 채집하여 환자 치료에 사용하였으며, 의술에 능하였고 또 약초를 직접 재배하면서 사람들을 도와주었다고 한다.
그리스 신화에 의하면 제우스신은 아스클레피오스의 갸륵한 마음에 감동하어 그가 죽은 다음 밤하늘의 뱀자리에 영원히 별로 남겼다고 한다. 원래 아스클레피오스는 뎃사리 지방을 통치하는 땅의 신이었고 뱀을 친구로 삼았다고 한다.
아스클레피오스가 죽은 다음 그리스 각지에는 병원의 원조라 할 수 있는 아스클레피오스 신전이 세워지고 많은 사람들이 병을 치료받기 위하여 모여들었다고 한다. 특히 그 중에서도 에피다우로스에 있는 아스클레피오스 신전에선 많은 뱀이 사육되고, 이 지방에만 서식하는 갈색 피부의 뱀은 아스클레피오스의 사자로서 신성시되었다고 한다. 뱀은 1년에 한 번씩 탈피하기 때문에 젊어질 수 있고 또 소생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졌으며, 아스클레피오스가 갖고 다닌 뱀의 지팡이는 후세에 의학과 의료의 상징이 되었다.
뱀 사건으로 기분이 상해 있던 나 교수에게 나는 또 한 번 큰 실수를 하게 된다. 1965년 여름 나의 연구실에서 퇴근하던 여비서가 수도꼭지를 잠그는 것을 잊고 집에 간 것이 화근이었다. 당시 서울의 수도사정이 나빠 낮에도 가끔 물이 나오다가도 끊기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하여 낮에는 물을 받기 위하여 수도꼭지를 잠그고 가는 것이 규칙처럼 되어 있었다.
|
|
| ▲ 일본뇌염 연구를 위해 콩알보다 작은 뱀의 심장에서 주사기로 피를 뽑고 있는 필자 |
|
그런데 그날은 내가 먼저 나갔는데, 여비서가 물이 나오다가 끊어진 것을 모르고 수도꼭지가 잠긴 줄 알고 그대로 퇴근했는데 밤새도록 물이 콸콸 쏟아져 나오니 물이 넘쳐흘러 아래층에 있는 나 교수 방으로 떨어진 것이다. 아침에 출근하니 방이 엉망이었고 곧이어 해부학교실에서 급하다는 연락이 왔다. 부리나케 달려가 봤더니 나 교수의 책장, 책상 위의 책 등이 고스란히 물벼락을 맞아 젖어 있었다.
나는 조교시절 나 교수에게 당했던 것처럼 또 한 번 나 교수의 손아귀에 나의 귀를 잡히고 비명을 지르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정말 살기도 어려웠지만 연구하기도 어려운 시절이었다.
아무튼 이런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내가 채집해 온 뱀들이 중요한 업적을 남기는 데 기여하기도 했다. 나의 동물실험실을 빠져 나온 뱀을 구내 풀밭에서 수거해 연구한 서울대 의대 기생충학 교실의 이순형 교수팀이 뱀의 체내에서 지금까지 발견하지 못한 새로운 기생충을 발견해 세계 학계에 보고한 것이다.
동물을 대상으로 연구가 이루어지는지라 실험실이나 야외에서 불가피한 사고도 발생한다. 내가 경험한 첫 사고는 미국 유학시절의 일이었다. 박사학위 과정 중 나와 함께 일하던 조수 중에 캐시란 여성이 있었는데 뇌염바이러스를 쥐에 주사하다가 자기 손가락을 찔러 실험 도중 뇌염에 걸린 것이다.
다행히 탈 없이 나았지만 그 덕분에 우리는 뇌염바이러스의 인체 내 잠복기간이 8일이라는 뜻밖의 수확을 얻을 수 있었다. 캐시에겐 미안하지만 그녀를 통해 세계 최초의 뇌염바이러스의 인체실험이 이뤄진 것이다.
이 밖에도 도봉산에서 박쥐를 잡으려고 높은 바위틈에 있는 동굴을 뒤지다가 연구원이 바위에서 떨어져 팔과 갈비에 골절상을 입어 병원에 입원한 일도 있다.
이처럼 일본뇌염 연구에 몰두하던 나에게 힘이 빠지는 소식이 들려 왔다. 1966년 일본에서 세계최초로 일본뇌염 예방백신이 개발됐다는 것이다. 일본뇌염바이러스의 월동기전을 밝혀 뇌염의 전염 경로를 차단하고 나아가 돼지 상피세포에서 예방백신까지 만들어내겠다는 나의 꿈이 수포로 돌아가는 순간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