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쥐와 벌인 사투 (22화)

일본뇌염 연구가 모기와의 싸움이었다면 유행성출혈열 연구는 들쥐와의 싸움이었다. 출혈열의 유행지역이 들쥐의 집단 서식처와 일치하는 점으로 보아 유행성 출혈열도 들쥐에서 비롯되는 질환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본격적인 들쥐사냥에 나섰다. 들쥐사냥꾼은 1965년부터 뇌염연구팀의 일원으로 나와 인연을 맺은 김수암씨였다. 그는 들쥐는 물론 모기와 박쥐, 다람쥐, 뱀까지 실험에 필요한 야생동물의 생포를 도맡아 온 베테랑이었다.

지금도 녹십자 목암생명공학연구소에서 35년째 나와 같이 일하고 있는 김수암씨에겐 두 가지 웃지 못할 에피소드가 있다. 한번은 경기도 연천에 들쥐를 잡으러 나갔던 그가 사색이 되어 연구실로 돌아와 다시는 들쥐사냥에 나서지 않겠다는 것이 아닌가. 군부대 주변에서 밤에 들쥐를 채집하다가 간첩으로 오인되어 하마터면 순찰 중인 군인에게 사살당할 뻔했다는 것이었다.

다행히 발포 직전 두 손을 들고 경비병에게 체포되어 포박당한 뒤 군사령부까지 끌려갔다가 겨우 풀려난 것이다. 야행성 동물인 들쥐의 채집은 밤에 이루어지므로 미리 하루 전에 군대에 신고하고 작업을 하는데 그날따라 경비병의 실수로 다음 번 교대병사에게 이 사실을 인계하지 않았던 것이다.

당시가 어떤 때인가. 냉전이 극에 달해 남북이 군사적으로 팽팽히 맞서고 있던 초긴장상태가 아니었던가. 자정이 되면 사이렌이 울려 퍼지고 통행금지가 새벽 6시까지 있던 시대에 그것도 휴전선 군부대 주변에서 수상한 사람이 밤중에 쥐를 잡느라 손전등을 깜박거리고 이리저리 헤매었으니 지금 생각해도 정말 아찔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총탄세례를 받아도 하소연할 곳이 없고 할 말도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쥐를 잡은 그곳은 간첩이 자주 출몰하는 연천과 포천 지역이었다.

▲ 한탄바이러스 보균동물인 등줄쥐. 등에 검은 줄이 있으며 이 쥐를 출혈열이 유행하는 지역에서 잡은 연구원 두 병이 병에 걸려 입원함

그 후부터 김수암씨는 군부대를 피해 민간인 거주지역만 뒤지며 쥐를 잡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은 포천에서, 또 한 번은 성남에서 각각 간첩으로 오인돼 경찰에 체포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동네사람들이 수상히 여겨 경찰에 간첩신고를 했기 때문이다. 당시 간첩을 신고하면 상당한 액수의 포상이 있었다.

그러나 결정적인 위기는 따로 있었다. 출혈열 연구를 시작한지 1년 반이 지난 1971년 6월 들쥐채집을 나갔던 김수암씨가 유행성출혈열에 걸려 서울로 돌아온 것이다.

당시 28세로 마른 편이었지만 건강했던 그는 의정부 낙양동 근처 출혈열 유행지역에서 들쥐를 잡다가 갑자기 독감증상이 나타났다. 느닷없이 오한이 일었고 고열과 두통이 생겨 감기몸살인줄 알고 아스피린을 복용했다. 그러나 열이 떨어지지 않고 배가 아프면서 설사가 계속되었다.

일에 성실한 김수암씨는 아픈 몸을 이끌고 발병 사흘째 되는 날까지 쥐를 잡다가 도저히 몸을 가누지 못하는 상태로까지 악화된 다음에야 서울로 돌아왔다. 서울에 오자마자 내가 그를 진찰해 보니 눈의 결막이 충혈되어 있고 체온도 40도를 웃돌아 온몸이 불덩어리였다. 요통이 심했는데 소변은 잘 나오지 않았다. 땀을 많이 흘려 소변이 안 나오는 줄 알았다. 수상하다 싶어 발병 6일째 되는 날 그를 국군 유행성출혈열 연구센터가 있는 창동 근처 57 육군후송병원으로 데리고 갔다. 출혈열 환자를 치료하는 군의관이 그를 진찰하더니 내가 우려한대로 유행성출혈열이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눈앞이 캄캄해지고 걱정이 태산 같았다. 병원에 입원한 지 이틀 후 서울대의대의 내 연구실에 노부부가 찾아왔다. 김수암씨의 부모였다. 내 연구를 돕다 아들이 사경에 빠졌으니 답답한 심정이야 오죽했으랴 싶었다. 나도 변명이나 대꾸는 하지 않았다. 우수한 군의관들이 최선을 다해 그를 치료하고 있으니 걱정 마시라며 위로했으나 속으로는 이 병이 10%에 가까운 사망률을 나타낸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터라 당황하고 몹시 걱정되어 잠도 오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이번엔 실험실에서만 일하는 연구원들이 들고일어났다. 연구원 5명 중 3명이 이처럼 위험한 연구는 할 수 없으니 그만두겠다는 것이 아닌가. 김수암씨는 점점 상태가 나빠져 쇼크에 빠진 채 1주일간 사경을 헤매야 했다. 콩팥이 망가져 혈액을 복막 세척이란 응급처치로 걸러 내기 시작했다. 하는 수 없이 나는 일단 연구실 문을 닫기로 했다. 그리고 그가 죽지 않고 완쾌되길 간절하게 기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