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때 UN군에서만 볼 수 있던 한국형출혈열(유행성출혈열) 환자가 1960년대에 들면서 한국군에서도 다수 발생하기 시작했다. 1951년 UN군에 창설된 미국육군의 출혈열 연구팀은 1957년 서울에서 철수하고 유행성출혈열에 대한 연구는 한국에서 중단된 상태였다. 이때 서울대의대의 기용숙 미생물학교수와 전염병학의 전종휘 교수가 주동이 되어 국군육군의무감실을 설득하여 한국군에서도 군사적으로 중요한 유행성출혈열 연구를 시작하게 하였다.
그리하여 1963년 가을에 일동에 있는 제3야전병원 임상병리과 내에 육군 제1유행성출혈열 연구반을 창설하였다. 이름이 연구반이지 연구 시설도 없고 연구 경험도 없는 군의관으로 편성된 미래형 연구팀이었다. 당시 일선에서 발생한 모든 유행성출혈열 환자는 헬리콥터로 제3야전병원에 후송되어 치료를 받고 있었다.
최초로 연구반에서 일하게 된 군의관은 미생물학 전공의 양용태 대위와 해부학의 백상호 대위였으며, 그 이에 위생병 2명과 운전병 1명으로 합계 5명이 연구용 지프차 1대로 연구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제3야전병원에서 연구를 시작하였으나 연구 시설이 없어 이들 다섯 사람은 서울에 있는 육군수도병원에 배속된 후, 다시 국립보건원에 파견되어 2층에 있는 바이러스연구실 옆에 방 2개를 얻어 연구를 시작하였는데 그때 작고한 김경호 박사가 바이러스과 과장이었다.
이들은 조직배양세포를 이용하여 환자의 혈액에서 병원체를 분리하는 연구를 시도하다가 1965년에 제대하고 해부학 출신의 장가용 대위와 다른 사람이 1965년에 이들과 교대하게 된다. 장 대위는 장기려 박사의 장남이다. 당시 기용숙 교수와 전종휘 교수는 1주일에 한 번씩 연구반을 방문하여 이들에게 미생물과 전염병에 대한 기초교육을 실시하였으며, 보건원에서 리켓찌야 질병을 연구하던 정희영 박사도 세미나에 참석하였다고 한다.
때로는 메디컬센터의 임상병리과장으로 있는 박승한 박사의 연구실에서도 같이 세미나를 하였다. 그 후 최성배 대위가 연구반장을 맡았으나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6년 만에 해체된다. 이렇게 한국군의 연구는 말뿐인 연구로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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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기, 박쥐, 뱀 등 야외에서의 연구 재료 채집에는 차량이 필수적이다 / 사진은 최근 옌볜 의학원에 기증한 앰블런스,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필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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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3월 나는 서울 종로에 있는 한일관 2층에서 이연태 교수, 양용태 교수, 김찬수 교수, 김경호 박사 등과 함께 바이러스학회를 위한 발기인 대회를 갖고 대한바이러스학회를 만들었고 무기명 투표 결과 초대회장으로 취임했다. 그때까지 미생물학회는 의과대학 미생물학교수들이 주축이 된 오랜 역사를 가진 대한미생물학회와 수의학자나 일반 생물학자 등 비의사 출신이 새로 만든 한국미생물학회로 양분되어 있었다.
참으로 우스운 것은 똑같은 미생물학회이면서 먼저 생긴 학회에 ‘대한’이 붙어 있으니 후에 생긴 것은 ‘한국’이라는 접두사를 붙여 놓은 것이다. 대한은 주로 의학미생물을 연구하고 역사가 50년이 넘은 주류학회임에 틀림없다. 미국, 일본, 독일, 영국 같은 나라에도 미생물학회가 하나인데, 우리같이 작은 나라 거기에다 남북으로 두 개로 쪼개진 나라에서 의사에게 지배되기 싫은 비의사들이 뭉쳐 학문 연구보다 감투 다툼에 나선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옳지 못한 일이라 생각한다.
나는 그러한 폐단을 없애기 위해 일부러 대한바이러스학회에 의사뿐 아니라 비의사들에게도 문호를 활짝 개방했다. 그 결과 수의사 출신인 김경호 박사가 부회장을 맡았으며, 회장직은 의사와 비의사가 2년마다 교대로 맡기로 회칙을 만들었다.
우리가 미생물학회에서 빠져 나와 독립된 바이러스학회를 결성한 것은 세계적인 추세에 따라 바이러스학을 발전시키기 위한 토론의 장을 만들고, 바이러스학회지를 발간하여 우수한 논문을 게재하고 또 바이러스학자들의 교류를 증진시키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때 미생물학회에서 떨어져 나간다고 선배들로부터 죽일 놈이라고 많은 욕을 먹었지만 지금은 미생물학회를 압도할 정도로 많은 회원들이 참여하고 있으며 열띤 학술토론을 벌일 정도로 성장했다. 그 결과 한국에서는 새로운 바이러스가 발견되고 백신도 개발되어 세계적인 인정을 받고 있다.
학자는 오직 논문으로 말할 뿐이라지 않은가 의사 면허증이나 출신학교를 갖고 서열 매기기나 편 가르기를 일삼는 구태의연함은 하루 빨리 우리 학계에서 사라져야 할 것이다. 더욱이 확인된 것도 아닌 것을 세계 최초라고 신문에 발표하여 전문가들의 빈축을 사는 행위를 하는 학자는 하루 속히 도태되어야만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