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행성출혈열을 연구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병을 일으키는 바이러스를 사람에게 매개하는 들쥐의 습성을 이해하게 됐다. 유행성출혈열은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들쥐의 약 80%를 차지하는 등줄쥐가 옮긴다. 등줄쥐의 소변으로 배출된 바이러스가 마른 먼지에 붙어 바람이 불면 공기를 타고 사람의 코와 호흡기를 통해 폐로 들어가 병을 일으키는 것이다.
등줄쥐는 등에 까만 줄이 있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는데 크기는 생쥐보다 약간 크지만 민첩하고 점프력이 좋아 50㎝정도는 뛰어오른다. 주로 낮은 산과 들에 사는데 번식력과 모성애가 강해 어미 등줄쥐가 이동할 땐 여러 마리의 새끼가 어미젖을 문 상태로 함께 뛰어가며 이동하는 모습을 볼 수도 있다.
만일 어떤 이유로 인간이 멸망하게 된다면 인간 대신 지구를 지배할 동물로 가장 유력한 것도 바로 쥐다. 강력한 번식력과 지능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다음은 등줄쥐만 30여 년 이상 잡아 온 김수암씨의 목격담이다. 추수가 한창인 따뜻한 가을 포천의 한 농가에서 그는 마당에 벼를 말리려고 돗자리에 벼를 널어놓은 것을 바라보면서 마루에 누워 낮잠을 자고 있는데 돗자리 끝에서 무엇인가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이상해서 자세히 살펴보니 등줄쥐 한 마리가 돗자리에 널어놓은 벼 위를 뒹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자세히 관찰하니 벼이삭을 온몸에 묻히고 있는 것이었다.
계속 추적해 보니 논둑에 있는 쥐구멍에서 기어 나온 등줄쥐가 개울물에 몸을 적신 뒤 벼를 널어놓은 돗자리까지 와서 서너 번 굴려 가며 벼이삭을 자기 몸에 묻힌 다음 서서히 자기 집으로 들어가 몸에 붙어 있는 벼를 털어놓고 다시 나오는 것이었다. 겨울을 나기 위한 곡식을 굴 속에 저장하고 있는 것이다. 새삼 인간 못지않게 발달한 쥐의 지능을 실감할 수 있었다.
|
|
| ▲ 집쥐는 서울바이러스의 보균동물이며 유행성출혈열을 전파한다 / 전 세계에 분포되어 있음 |
|
옛말에 낮 말은 새가 듣고 밤 말은 쥐가 듣는다는 말이 있는데 그것은 어쩌면 사실일는지 모른다. 비록 사람이 만든 글자를 이해하진 못하지만 자신을 해치려는 인간의 의도만은 꿰뚫어 본다는 사실을 여러 차례 경험했기 때문이다. 한번은 강남 압구정동의 모 아파트 단지에서 우리에게 쥐를 잡아달라는 부탁이 왔다. 당시 김수암씨를 비롯한 우리 연구팀은 쥐를 잘 잡기로 소문이 나 있었으며 남아현동 모 아파트의 집쥐에서 서울 바이러스를 발견했기 때문에 국내 최고의 쥐 전문가로 알려져 있었다.
김수암씨와 연구원 2명이 아파트 단지를 찾아가 낮에 수십 개의 쥐틀을 쥐가 다니는 곳에 놓았다. 그런데 희한한 일은 쥐틀을 놓은 그날 밤부터 그 많은 쥐들이 완전히 자취를 감추어 버렸기 때문에 사흘 동안 한 마리의 쥐도 잡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기분 나쁜 것은 쥐틀을 철수한 그날 밤부터 언제 그랬냐는 듯이 쥐들이 다시 활개를 치고 다닌다는 전화를 받은 것이다.
이미 쥐틀에 잡힌 동료들을 경험한 탓도 있었겠지만 틀림없이 말을 알아들은 것 같고, 아니면 자신들이 다니는 길에 사람들이 수상한 물건을 놓고 부산을 떠는 것에 대해 본능적으로 경계심을 가졌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여의도의 고급아파트에 사는 내 친구의 집에선 겨울만 되면 남자 양말이 없어져 찾는 소동이 빚어지곤 했다. 그것도 항상 한 짝만 없어졌으며 실크로 만든 값비싼 고급 양말만 사라졌다. 여러 차례 그런 일이 있어 의아해하던 차에 세탁기가 고장이 나 수리를 하면서 수수께끼가 풀렸다. 수리공이 세탁기를 손보느라 세탁기 내부를 살펴보니 전선을 쥐가 갉아먹어 고장이 났던 것이다. 그런데 세탁기 내부 한쪽 구석에 그동안 없어진 실크 양말로 이쁘게 만든 쥐의 집이 보이는 것이 아닌가. 시시한 나일론 양말이나 면양말을 건드리지 않고 촉감이 좋고 따뜻한 실크 양말만 물어다 세탁기 안에 집을 짓고 살았던 것이다.
참고로 이처럼 영리한 쥐를 잡기 위한 요령을 소개할까 한다.
쥐는 늘 다니는 길이 정해져 있다. 이상한 물건이 자기가 다니는 길에 놓여 있으면 쥐는 그 길을 다시 지나가지 않는다. 그래서 일본에선 쥐틀 대신 강력한 접착제를 발라 놓은 두꺼운 종이를 쥐가 다니는 길목에 놓아 쥐의 발이 접착제에 들러붙어 움직이지 못하게 하여 잡는 방식으로 쥐를 잡고 있다. 또 한 번 사용한 쥐틀은 반드시 물에 씻고 사용해야 한다. 쥐가 들어갔던 틀은 쥐 냄새가 나기 때문에 절대로 가까이 가지 않는다.
우리는 흔히 “생쥐만한 녀석이…”라는 말을 하며 쥐를 얕잡아 보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쥐는 결코 만만한 동물이 아니다. 어쩌면 사람보다 한 수 위라고 할 수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