긁어 부스럼 (제27화)

쥐는 엄청난 대식가이다. 쥐 한 마리는 하루 평균 40그램의 곡식을 먹어 치운다. 내가 계산해 보니 1년간 우리나라 쥐가 먹는 곡식은 42만8천 톤에 달했다. 이는 우리나라 한 해 쌀 생산량의 7%에 해당하는 양이다.

그러나 쥐가 먹어 치우는 곡식의 양보다 심각한 것은 쥐가 옮기는 각종 질병이다. 페스트는 중세 유럽 인구의 4분의 1이 넘는 1억2천5백만 명을 죽게 하지 않았는가. 식량을 갉아먹는다든지 질병을 퍼뜨리는 등 쥐는 실험용 쥐를 제외하곤 한마디로 인간에게 유해한 동물이다.

독자 여러분은 아마 1960~1970년대 우리나라에서 전국적으로 실시됐던 쥐잡기 운동을 기억할 것이다. 당국에서 반상회 등을 통해 집집마다 쥐약을 나눠 주고 신문과 방송을 통해 쥐잡기를 독려하곤 했다. 먹을 것이 떨어져 궁핍하기 이를 데 없었던 시절 쥐에게 빼앗길 식량조차 아까웠고 옷까지 갉아먹었으니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이처럼 집에서 한두 마리씩 잡아 쥐를 박멸하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쥐는 번식력이 강해 한꺼번에 10여 마리씩 새끼를 낳기 때문에 웬만큼 잡아도 이내 다시 늘어나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히려 주위 환경을 청결히 하고 쥐가 먹을 음식물을 남기지 않으면 쥐는 없어지고 만다. 요즘 도심에서 과거처럼 쥐를 자주 보기 어려운 것은 굳이 쥐를 잡지 않아도 쥐가 먹을 쓰레기를 잘 치우고 주거 환경이 향상되었기 때문이다. 쥐는 먹을 것이 없으면 자기들끼리 잡아먹는데 그래도 먹을 것이 없으면 5일 정도 버티다가 굶어 죽는다.

▲ 한국에서 채집한 16종의 들쥐와 6종의 실험용 쥐의 박제 표본

군사정권 당시에는 성장 일변도로 치닫던 때라 쥐 역시 눈에 보이는 대로 없애면 된다는 단순도식을 따랐다. 그러다 보니 부작용도 많았다. 쥐약이 섞인 빵 조각을 어린이가 잘못 먹고 생명을 잃는 사건이 잇따르기도 했다.

유행성출혈열과 같은 질병도 쥐를 잡느라 부산을 떠는 가운데 환자 수가 늘어난 대표적 질환이다. 1976년 경기도 연천에서 방어용 벙커를 설치하는 작업을 하던 26사단 75연대 모 소대 군인들 사이에서 7명이 집단적으로 괴질에 걸려 2명이 숨진 사건이 있었다. 군의 요청으로 원인과 전파경로 규명차 현장에 달려간 나는 환자를 보자마자 이내 유행성출혈열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작업을 한 곳은 북쪽을 향한 언덕이었는데 당시 언덕 위쪽 벙커에서 일하던 군인들만 감염된 것이었다. 아래쪽에서 땅을 파던 군인들은 모두 무사했다. 땅을 파다 보니 한국전쟁 때 숨진 중공군들의 시신과 그들이 신고 있던 운동화들이 나왔다고 한다.

그리고 벙커 주변엔 시신을 뜯어먹기 위해 여기저기 뚫린 등줄쥐의 굴들이 발견됐는데 문제는 바람이었다. 그 일대는 항상 바람이 북쪽에서 불어오는데 언덕 아래에서 위쪽으로 부는 것이었다. 아래쪽에서 땅을 팠는데, 등줄쥐의 소변 중에 있는 유행성출혈열 바이러스가 더러운 먼지를 흡입하고 공기 중에 떠 있다가 바람이 불자 위로 올라간 것이다. 아래쪽에서 시신을 파내는 궂은일을 하던 병사들은 괜찮았고 상대적으로 위쪽에서 쉬운 작업을 하던 병사들이 더러운 먼지를 흡입하고 희생된 것이다.

문제는 이 사건이 엉뚱한 방향으로 전개됐다는 것이다. 육군에서 이 사건 이후 유행성출혈열의 예방대책으로 대대적인 등줄쥐 소탕령을 내렸다. 병원체를 갖고 있는 쥐만 잡으면 유행성출혈열을 예방할 수 있기 때문에 군부대 내에 서식하는 들쥐란 들쥐는 눈에 보이는 대로 잡아 죽였다. 사병들도 쥐의 꼬리를 많이 갖고 오면 휴가를 더 많이 보내 주었으므로 결사코 쥐를 잡았다.

아니나 다를까 후유증은 이내 나타났다. 그 해 가을부터 유행성출혈열 환자가 줄기는커녕 오히려 군인들 사이에 2배나 늘어나게 되었다.

이들 환자는 대부분 쥐를 잡는 과정에서 오염된 쥐를 만졌고 또 숨 쉬는 공기를 통해 유행성출혈열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으로 추정된다. 가만히 있었더라면 괜찮았을 텐데 오히려 긁어 부스럼이 되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