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탄바이러스 탄생 (제34화)

세계 최초의 발견자가 누릴 수 있는 영광 중 하나는 새로운 병원체에 대해 이름을 붙일 수 있는 권한이다.

나는 유행성출혈열 바이러스의 발견을 처음 보고한 1976년부터 새로운 이름을 붙이고 학회에 보고한 1980년까지 무려 4년 동안이나 고심했다. 아내는 물론 이평우 조교 등 교실원, 개인적으로 친한 고려대의대 법의학교실의 문국진 교수, 그리고 신경외과의 주정화 교수 등 여러 사람들과 자주 논의했다.

개중엔 내 이름을 따서 학명을 이호왕바이러스라고 제의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학문적 업적을 개인의 이름으로 돌리는 것은 이기적인 욕심 같았고 후세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싶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바로 한탄바이러스다. 한탄이란 이름을 붙인 이유는 대략 네 가지였다.

첫째, 우리가 처음 병원체를 발견한 곳이 바로 한탄강 유역인 동두천읍 송내리였다. 둘째, 우리나라에서 처음 유행성출혈열 환자가 나타난 지역이 바로 한국전쟁이 한창이었던 1951년 여름철의 삼각지대였는데 이곳이 바로 한탄강 상류이다. 셋째, 산이나 도시이름보다는 강의 이름이 여성적이며 부드러운 이미지를 준다. 넷째, 한탄강이야말로 삼팔선을 따라 흐르며, 남과 북을 갈라놓은 역사적인 강으로 우리 민족의 분단의 한을 그대로 드러내는 상징이란 생각이 들어서였다. 이렇게 해서 1980년 한탄바이러스란 새로운 학명이 정식으로 미국 바이러스 카탈로그에 등장하게 된다.

지금도 우리는 중학교 생물시간에 ‘종속과목강문계’라는 린네의 학명체계를 배우고 있다. 여기에서 처음으로 우리말 표현으로 명기된 한탄(Hantaan)바이러스란 종(種)과 한타바이러스(Hantavirus)란 속(屬)의 이름이 탄생하게 되는, 새로운 장이 열리게 된다.

1980년대 초 집쥐에서 발견한 서울(Seoul)바이러스까지 합치면 3개의 학명이 내 손에서 탄생하게 되었으니 나로선 죽어도 한이 없다.

▲ 한탄 바이러스 모양과 분자생물학적 구조 / 크기는 약 100나노미터이고 RNA 바이러스 임

유흥준 교수는 그의 베스트셀러인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2권에서 “한탄바이러스가 한탄강의 주인이 되었다”고 썼는데 내 심정을 아주 적절하게 표현해 주어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바이러스 발견은 학문적 의미 못지않게 경제적으로도 큰 도움을 주었다. 한국전쟁 중 유엔군에서 3천2백여 명의 유행성출혈열 환자가 발생해 이 중 5백여 명이 사망했다.

당시 미군은 유행성출혈열이 들쥐에 기생하는 진드기가 옮긴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벤질벨조이드란 진드기 구제약을 1952년부터 매년 2백만 달러어치씩 구입해 병사들의 군복에 뿌려 댔다. 그러나 나는 이것이 잘못이란 사실을 입증했다. 진드기, 이, 벼룩 등 4만여 마리의 기생체를 감염된 등줄쥐에서 채집해 조사한 결과 진드기는 바이러스를 갖고 있지 않았다.

나는 유행성출혈열이 진드기에 의해 전염되는 것이 아니라 쥐의 오줌 속에서 나온 바이러스가 지상에서 건조된 후 공기 중의 먼지와 함께 사람의 호흡기로 들어가 감염됨을 밝혀냈다. 이렇게 해서 1977년부터 미군을 비롯한 한국군에서도 진드기 구제약을 뿌리는 일이 사라지게 됐다.

1977년부터 지금까지 진드기 구제약을 그대로 사용했더라면 미군은 무려 7천만 달러, 한국군은 5천만 달러 이상의 비용을 지출해야만 했을 것이다. 이 계산은 1970년대의 약값으로 환산한 것이니 지금의 약값으로 계산하면 수억 달러 이상의 비용이 내 연구로 절감된 것이다.

1979년 3월, 나는 예기치 않게 내가 일생에서 가장 영광스럽게 생각하는 훈장을 받게 된다. 당시 미국육군의학연구개발 사령관이었던 래프먼드 소장으로부터 미국 정부가 수여하는 ‘미국최고시민 공로훈장’을 받은 것이다. 용산에 있는 미8군 사령부에서 미군 군악대의 연주와 함께 래프먼드 소장은 미국육군성에서 수여하는 금빛 훈장을 내 가슴에 달아 줬다. 내 발견이 미군병사를 보호하고 미국육군의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는 것이다.

미국 시민권자도 아닌 사람에게 이 상이 수여되긴 처음이란 말을 들었다. 정말이지 내 가슴이 뭉클한 순간이었다. 그 후 나는 많은 사람으로부터 미국 시민권자라는 오해를 받기도 하였다.

나는 국방부 유행성출혈열 자문관으로 1969년부터 1994년까지 25년간 수도통합병원에서 약 3천 명의 환자를 초기에 진단해주고 적절한 치료를 하도록 돌봐 주었다.

그러나 한국군 수도통합병원 출혈열과의 자문관을 25년간이나 하고, 또한 약 5천만 달러 이상의 군사비를 절약해 준 한국군으로부터는 아직까지 감사장 하나도 받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