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내게 상을 처음 주려고 한 것은 1980년 5·16민족상이었다. 5·16재단이 수여하는 5·16민족상은 상금만 2천만 원으로 당시로는 액수 면에서 국내 최고였다. 추천인이 여러 차례 나의 학문적 업적과 증거를 요청해 자료를 모아 보내 줬고 구청에서는 나의 신원조회도 하는 등 부산을 떨기에 나는 내심 기대를 했다. 그러나 정작 내게 주어진 것은 본상이 아닌 장려상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자존심이 무척 상했다. 미국은 최고훈장을 주는 판인데 장려상이라니 기가 막혀서 등기로 수상을 거부한다는 내용을 5·16재단에 보냈다. 그랬더니 며칠 후 고대의대 이수정 학장이 나를 불렀다. 내용인즉 “5·16상을 받고 안 받고는 자유지만 수상을 거부했다는 말을 절대로 외부에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하는 것이었다. 당시만 해도 군사정권이므로 군부의 서슬이 시퍼렇고 권력을 마음대로 행사하고 있던 시절이니 나의 수상거부는 5·16재단의 위신을 떨어뜨리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내가 잘 아는 심사위원 중의 한 명이었던 Y대의대 Y교수가 대한미생물학회에서 바이러스학회를 만들어 독립해 나왔기 때문에 평소 내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갖고 있어서 그랬던 건지 이미 전 세계가 인정한 나의 연구 결과를 아직도 불확실하다고 주장하고 본상을 주는 것을 반대했다는 것이다.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가 추천하는 과학상에서도 이른바 ‘물’을 먹었다. 당시 과총회장이었던 민관식 박사가 나를 적극 추천했는데 부회장이었던 서울대의대의 L교수가 반대해 추천하지 못했다는 소리를 들었다. 어처구니없게도 L교수는 나의 업적을 너무나 잘 아는 나의 모교 선배가 아닌가. 나는 세상은 요지경속이라 생각했다. 아니 상의 문패가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당시로선 보기 드문 연구 결과로 세계가 찬사를 보내는 마당에 정작 우리 땅에서는 시기의 대상이 되고 도리어 깎아 내리는 현실이 안타까웠을 뿐이다. 아마도 너무나 자신에 찬 나의 태도가 선배들에게 안하무인으로 비춰져 밉보인 것이 아닌가 반성해 보기도 하였다.
연구만 하는 과학자가 윗사람의 비위도 맞추고 또 굽신거려가며 대인관계까지 원만하면 금상첨화겠지만 그래도 과학자 본연의 임무는 무엇보다도 연구에 충실하면 되는 것이 아닌가. 나는 그때 인간적으로 어필하지 못하는 학자라도 그에 대한 학문적 평가만은 냉철하게 이뤄져야 학문과 국가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과학상에서의 나의 탈락은 사소한 잘못에서 비롯되지 않았나 싶다.
한번은 미국에서 임상병리학의 대가로 인정받고 있는 현봉학 박사가 나에게 공동연구를 제의했다. 한탄바이러스에 대한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으나 유독 환자의 골수에서는 연구가 이뤄지지 않았으므로 골수의 병리학적 연구를 같이 해보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국군수도통합병원에 입원중인 환자 30여명에게서 골수 바이옵씨를 해 바이러스가 있는지 없는지를 살펴보는 연구를 하였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현 박사가 내게 이번 공동연구의 연구자로 L박사의 이름을 논문에 넣자고 했다. 나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L박사는 이번 연구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데 단지 예우 차원에서 이름을 넣는 것은 옳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지금도 한국에서는 연구논문을 만들 때면 일을 하지 않은 많은 연구자의 이름이 공동 연구자로 삽입된다. 그들 중엔 사실 연구에 일절 관여하지 않은 사람들이 예우 차원에서 포함되는데 그것은 좋지 않은 관행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풍토가 우리 학문의 발전에 적지 않은 걸림돌이 된 것은 자명한 사실이 아닌가.
어느 날 갑자기 나에게 뜻하지 않은 상이 찾아왔다. 바로 학술원에서 수여하는 대한민국학술원 저작상이었다. 나세진 선배님이 나를 추천한 것이다. 내 연구 업적은 학술원 부문별 심사위원회를 만장일치로 통과해 최종심사에서 42대 6으로 통과했다.
고맙게도 내게 학술원 저작상을 추천한 사람은 바로 과거 연구생제도를 비판한 항명파동과 실험실 물벼락 때문에 나의 귀를 두 차례나 쥐고 흔들어 댔던 나세진 학장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