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재단 축제인 노벨상 수여식은 스톡홀름 중심가에 있는 콘서트홀 대강당에서 12월 10일 오후 4시 30분부터 시작되었는데, 참가자는 4시 15분까지 입장을 완료했다. 콘서트홀은 4층 건물이었으며, 참석자는 약 2천 명이었고, 이 중 1천 6백 명은 스웨덴 학자와 귀빈이었다. 그리고 약 4백 명이 외국에서 초청된 인사였으며, 우리는 2층에 자리를 잡았다.
단상 오른쪽 앞 열에 왕족이 자리를 잡았는데, 왕의 모친, 왕비, 왕과 다음 왕위 계승자인 장녀 순으로 앉았고, 그 뒤에는 차녀와 장남이, 그 뒷좌석에는 재단 이사진과 심사위원들이 앉았다. 단상 왼쪽 앞 열에는 13명의 수상자가, 그 뒷좌석에는 역대 수상자들이 자리를 잡았다. 역대 수상자의 수가 너무 많기 때문에 모두 초청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시상식 중에는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식전에 사진을 찍어 두었다.
식은 4시 30분 정각에 왕실 축가와 모차르트의 행진곡이 왕립 스톡홀름필하모니오케스트라 연주로 시작되고, 수상자들이 천천히 일렬로 입장하였다. 그리고 노벨재단 이사장인 사무엘슨 교수의 개회사와 음악이 연주된 후 제일 먼저 물리학상 수상자가 국왕으로부터 메달과 상장을 받았고, 두 번째로 화학상, 세 번째로 생리 의학상, 네 번째로 문학상, 그리고 마지막으로 경제학상이 수여되었다.
분야별 수상 때마다 음악이 연주된 후 심사위원의 보고가 있었다. 수상자들은 일일이 호명된 후 한 사람씩 중앙에서 국왕으로부터 메달과 상장을 받고 일일이 악수를 했다.
끝으로 스웨덴 국가와 축제행진곡이 연주되면서 왕족과 귀빈들이 퇴장하는데, 그때가 6시였으니 식은 1시간 반이 걸린 셈이다. 노벨상 수여식은 음악으로 시작하고 음악으로 끝나는 아름다운 멜로디의 연속이었다. 인상적인 것은 스웨덴의 여러 대학에서 선발된 발랄한 미남미녀 학생들이 흰 모자를 쓰고 참석자들을 일일이 안내하는 것이었다. 안내와 동시에 수상연설을 듣는 그들의 진지함은 내가 보기에도 흐뭇한 모습이었다. 스웨덴은 노벨상 시상식을 학생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이어서 노벨 만찬이 시티홀에서 있었는데, 교회와 성당같이 큰 홀을 가진 행사장으로 거대한 파이프 오르간이 있었다. 7시 정각 트럼펫 연주 속에 왕족과 수상자 및 귀빈들이 입장하였다. 색다른 것은 스웨덴 대학생들이 안내와 사회를 맡고 있다는 것이었다. 스웨덴 34개 대학의 교기를 든 대학생들은 흰 교모를 쓰고 2층 복도에 일렬로 나열하여 왕과 노벨상 수상자들이 소개될 때마다 교기를 아래위로 흔들며 인사하는 것이 마치 대학행사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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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왕립스웨덴과학한림원 초청으로 2001년 12월 노벨상 시상식에 참석한 필자 부부와 안내원인 스웨덴 여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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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 만찬에서는 흰 식기의 밑 부분에 금칠을 한 그릇만이 사용되는데 이를 ‘노벨 그릇’이라 하며, 고가품으로 보였다. 왕과 노벨을 기념하는 토스트가 있었고, 여덟 가지 음악이 연주되는 동안 식사를 했다. 식사 후 노벨상 분야별로 수상자를 대표하여 한 사람씩 3분간의 연설이 있었고, 민속춤을 끝으로 10시경에 만찬은 끝나고 왕족을 선두로 무도회가 시작되는 2층으로 참석자들은 이동했다. 많은 사람들이 춤도 추고 대화도 나누니 무도회장은 북새통이었고, 우리는 무도회장 옆에 있는 외교홀이란 곳에서 수상자들의 전시품을 구경하고 왕족이 식장을 떠난 후 11시경에 호텔로 돌아왔다.
스톡홀름에서 암스테르담을 경유, 서울로 오는 길은 갈 때보다 짧고 11시간 밖에 걸리지 않았다. 서울로 오는 비행기 속에서 나는 노벨상이 없는 스웨덴을 상상해 보면서 우리는 과연 무엇을 내세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한 가지 놀라운 것은 노벨상에 대한 일본의 준비였다. 스톡홀름 일본대사관엔 10년 전부터 노벨상과가 따로 설치되어 전담 사무관 2명이 노벨상에 대한 최신 동향을 비롯한 모든 정보를 수집하여 일본으로 보내고 있었다. 우리도 김대통령이 평화상을 수상해 노벨상 수상국가의 반열에 섰지만 의학·물리·화학 등 과학분야에서 수상자가 나오지 못한 것은 국력에 비해 창피하고 유감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노벨상과 관련해 지적해 두고 싶은 게 있다. 그것은 외국 국적의 한국 계열의 학자가 노벨상을 수상하는 것에 대한 신문사들의 과도한 의미 부여다. 지금도 언론에선 미국 등 해외 학계에서 이름을 날리고 있는 한국계 과학자들을 노벨상 후보로 집중 조명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노벨상 수상은 한국과는 다소 거리감이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다.
면역기전을 밝혀 1987년 노벨의학상을 수상한 미국 MIT대 토네가와(利根川) 교수는 비록 일본인이지만 학문적 토대는 모두 유럽과 미국에서 만들어졌다. 토네가와 교수의 수상 내용은 일본이 아닌 외국에서 이룬 것이란 의미다. 그러나 그의 국적은 분명히 일본이었다. 1976년 노벨상 수상자로 필자와 절친한 사이인 미국국립보건원 가이듀섹 박사도 미국인이었으나 폴란드 출신이다. 그러나 누구도 그의 슬로우바이러스 규명 업적을 폴란드의 것으로 돌리지는 않는다.
한국인 노벨상 수상자가 진정 의미를 지니기 위해선 외국이 아닌 한국 과학계가 배출한 한국 국적의 사람이어야 한다. 지금도 「네이처」,「사이언스」등 저명한 해외 학술지에 한국인의 이름이 곧잘 거명된다. 그러나 이들은 대부분 미국인 지도교수 아래 연구 실무를 맡았던 제1저자일 뿐 연구의 기획과 책임을 지는 최종 저자(last author)는 아니다. 한국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려면 최종 저자에 당당히 한국인 과학자의 이름이 등장해야 할 것이며 한국 언론은 우리 학자를 키우는 데 앞장서야 마땅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