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왕 상 이야기가 나왔으니 내가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태국 마히돈왕자의학상 수상 스토리를 밝힐까 한다. 많은 독자들이 이게 무슨 상인지 처음 들어 봤다며 고개를 갸우뚱할 것이다. 그러나 태국 마히돈왕자의학상은 의학 분야에서 노벨의학상 다음으로 가치 있는 상으로 평가받고 있는 국제상이다. 태국이 우리보다 일찍이 개화되었다는 사실은 영화 ‘왕과 나’에서 잘 알려져 있다.
태국왕실에서 태어난 마히돈 왕자는 일찍이 미국 하버드의대를 졸업한 의사로 태국의 현대의학 발전에 크게 기여한 인물이다. 태국 마히돈왕자의학상은 그의 업적을 기려 의학 발전에 기여한 인물에게 주는 상으로 1992년 처음 제정됐으며, 수상자에겐 5만 달러의 상금과 상패를 준다.
1994년 11월 초 아산생명과학연구소장으로 재직 중이던 나는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비서로부터 낯선 국제전화가 왔다는 소릴 들었다. 내 비서는 영어에 능통한데 영어권에 사는 사람의 발음이 아닌 서툰 영어발음으로 태국에서 전화가 왔다는 것이다. 전화를 넘겨받은 나는 그가 태국 마히돈대학 총장을 지낸 나트 교수임을 알았다. 그는 태국 왕족 출신의 여의사와 결혼해 방콕에 있는 마히돈의대 병리학교수로 학장과 총장을 지낸 태국 의학계의 거물이었다.
열대지방에서 유행하는 전염병인 뎅기열 연구의 권위자인 그와는 20년 전부터 국제학회에서 자주 만나 알고 지내는 사이였다. 그는 내가 말라리아 원충의 조직배양의 권위자인 미국 록펠러의대 트레이저 교수와 함께 1994년도 태국 마히돈왕자의학상 수상자로 결정되었으니 수락하겠는가, 라고 묻는 것이 아닌가. 나는 기쁜 마음으로 수상을 받아들인다고 하자 그는 나와 아내에게 1등석 항공표와 함께 수상 안내문을 곧 보내겠다 하였다.
1995년 1월 중순 나는 상을 받기 위해 방콕으로 갔다. 우리 부부뿐 아니라 내 연구를 물심양면으로 도와 준 제자들도 함께 갔다. 30년간 내 연구를 도와 준 유선자 연구원, 안창남 박사 등 예방백신 개발에 도움을 준 녹십자 직원, 미국 유학중이던 나의 두 아들 성일과 근, 미국 NIH에서 연구 중이던 백낙주 교수와 주용규 박사, 그리고 의협신문의 김국장 등 모두 13명이 나를 따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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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5년 태국 왕실에서 마히돈왕자의학상을 수상하는 필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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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콕 비행장에 도착했는데 비행장엔 왕실에서 마련한 헬리콥터가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비행기 출구에서 태국 왕실과 외무부 의전요원의 안내를 받으며 헬리콥터로 시내에 들어간 후 세계 최고의 역사와 서비스를 갖추었다고 평가받고 있는 오리엔탈 호텔에 투숙하였다. 헬리콥터에서 내려 호텔로 가는 길은 왕실 전용 노란색 리무진을 탔으며 경찰 오토바이가 전후에서 에스코트했다. 난생 처음 국빈 대우를 받으니 얼떨떨하기도 하고, 기분이 좋기도 하였다.
호텔에서 강의차 마히돈대학까지 갈 땐 강을 따라 왕실 전용보트를 타고 가는데 경호보트의 안내를 받기도 했다. 지금까지 나는 유행성출혈열 연구와 강의를 위해 전 세계를 누비고 다녔으나 이때처럼 흐뭇하고 호화롭고 사치스런 여행은 처음이었다.
마히돈대학 총장과의 만찬, 한국대사관저에서의 만찬, 마히돈대학병원에서의 강의, 태국의학협회 회장의 만찬 방문 등 정신없이 나흘간의 일정을 보냈다. 1995년 1월 21일 시상식은 왕실에서 태구구 왕을 대신해 자크리스리돈 공주가 나와 트레이저 교수에게 태국 마히돈왕자의학상을 수여했다. 수상식과 만찬에는 태국 주재 42개국의 대사가 참석했으나 북조선 대사는 나오지 않았다.
수상식 다음날 우리는 일반인에게 공개되지 않는 태국 왕실의 왕궁 내부를 구경할 기회를 가졌다. 왕궁 속의 불교사원에서 자크리스리돈 공주와 함께 코앞에서 구경한 에메랄드 불상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왕실 내부구경은 보통 사람은 할 수 없어 나를 수행했던 태국 마히돈왕자의학상 재단사무국장도 처음 구경한다고 털어놓았을 정도였다.
후에 알게 된 일이지만 1976년 노벨의학상 수상자로 내가 서울에 초청한 미국국립보건원의 가이듀섹 박사 등 4명의 미국인 학자들이 나를 태국 마히돈완자의학상 수상후보자로 추천했다고 한다.
요란하게 대접받은 나의 스토리가 자칫 독자들에게 거부감을 불러일으키지 않을까 걱정된다. 나 역시 학자라고 해서 특별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러나 최근 우리 사회에서 갈수록 대학교수와 추등학교 교사까지 존경하고 대접하던 옛날의 분위기가 점점 사라져 가고 있는 현실은 안타깝기 짝이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