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초의 업적으로 월계관을 쓴 승자에게 모든 영광이 주어지는 냉혹한 학문의 세계에서 연구 결과의 잘못된 판단과 조작은 비일비재하다. 세계 최고의 암 치료 병원으로 평가받고 있는 미국 뉴욕의 슬론케터링 암 센터에서 1980년대 흰쥐에게 검은 쥐의 피부를 이식시켜 성공했다는 논문이 미국의 저명한 의학잡지 「뉴 잉글랜드」지에 게재돼 세계가 떠들썩했던 적이 있다.
이는 종(種)이 다른 개체 간에는 피부이식이 불가능하다는 종래의 학설을 뒤집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뉴욕 타임스를 비롯한 미국 언론은 흰쥐의 몸에 이식된 검은 쥐의 검정색 피부 반점 사진을 일제히 소개했다. 그러나 1년 뒤 이는 사실 무근으로 밝혀졌다. 알고 봤더니 출세욕에 불타 있던 인도 출신 연구원이 어처구니없게도 까만 볼펜으로 흰쥐에 색깔을 덧씌웠다는 것이 아닌가. 이 사건으로 슬론케터링 암센터의 소장이었던 로버트굿 박사가 연구 결과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같이 발표했다는 이유로 쫓겨났다.
에이즈바이러스의 발견도 마찬가지다. 1981년 미국 LA의 동성연애자들 사이에 정체불명의 괴질이 처음 나타났을 때 전 세계 석학들이 원인 병원체를 찾기 위해 매달렸다. 1983년 프랑스의 파스퇴르연구소 몽타구니에 박사팀이 먼저, 그리고 미국국립보건원의 갤로 박사팀이 수개월 후 에이즈바이러스를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그 후 분자생물학적 연구에 의해 미국국립보건원의 갤로 박사팀은 몽타구니에 박사가 보내 온 바이러스 샘플에서 일부를 떼어내 배양한 후 자신들이 발견한 바이러스로 둔갑시켜 발표했다는 것이 아닌가. 하기야 전자현미경으로 겨우 보이는 바이러스를 모양으로 구분한다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했으므로 그때는 갤로 박사의 에이즈바이러스가 몽타구니에 박사의 에이즈바이러스에서 빼내온 것임을 확인할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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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87년 동아일보 기사 / 프랑스 파스퇴르 연구소 몽타구니에 박사팀과 미국 국립보건원의 로버트 갤로 박사팀이 에이즈를 발견했다는 것과 함께 그 위험성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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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학자들은 처음엔 미국 측이 자신의 바이러스를 도용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생물의 유전정보를 실험실에서 대랑 증폭할 수 있는 새로운 PCR(중합효소연쇄반응)기법이 도입되어 바이러스의 성분이 정확하게 밝혀지면서 들통이 나고 말았다.
1990년대 초 PCR기법으로 에이즈바이러스의 유전정보를 낱낱이 분석해 보니 프랑스 팀과 미국 팀의 바이러스의 성분과 유전자가 99% 이상 일치한 것이다. 에이즈바이러스는 돌연변이를 잘 일으키므로 다른 사람이나 다른 지역에서 분리한 에이즈바이러스는 유전자가 최소한 3~7% 이상 달라야 한다. 1991년 갤로 박사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지만 고의가 아닌 실험실 내의 우발적 사고였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연구하는 샘플이 냉장고에서 뒤바뀐다는 것은 한평생 미생물을 연구해 온 우리가 보기에도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철저한 라벨링은 실험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누구도 갤로 박사의 변명을 인정하지 않았다. 결국 갤로 박사는 미국국립보건원에서 쫓겨나고 미국 NIH는 프랑스에 에이즈 진단기법에 대한 로열티를 지급해야 했다.
엉뚱한 레오바이러스를 유행성출혈열 바이러스로 잘못 알고 덜컥 논문을 게재한 우리로서도 난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일단 잘못은 인정해야겠지만 최소한 고의는 아니었음을 밝혀야 했다. 실수야 용서받을 수 있는 일이지만 고의는 학계에서 영구적으로 추방당해야 하는 중대한 범죄다. 다행스러운 것은 당시 실수가 실험재료를 공급한 미육군의학연구소의 잘못으로 밝혀진 것이다.
우리가 실험재료로 사용한 것은 원숭이의 콩팥세포였는데 미국육군의학연구소의 실수로 무균 처리가 제대로 되지 않고 레오 바이러스로 오염된 세포가 나에게 공급된 것이다. 이는 우리만 아니라 미국 NIH나 일본 연구진에도 공급되어 우리와 똑같은 결과를 낳았던 것이다. 실험재료를 공급한 미국육군의학연구소의 조직배양 직원은 해고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