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균전부대 카사하라 박사의 충격...

카사하라 박사는 다부진 작은 체구에 머리가 희끗한 모습이었으며 어딘지 모르게 수심이 가득했다. 일본뇌염바이러스의 세계최초 발견으로 의학사에 빛나는 업적을 남긴 그였지만 세균전의 주역이란 그림자가 전쟁이 끝난 지 35년이 흘렀음에도 남아 있음이 역력했다.

나는 그에게 가볍게 만나서 반갑다는 인사말을 영어로 건넨 후 일본어로 그의 유행성출혈열의 연구 경험담을 들으려 했으나 그는 아무 말도 꺼내지 않고 앉아 있기만 했다.

우리의 만남을 주선해 준 키타사토 연구소 바이러스부장 마키노 박사가 옛날이야기를 꺼내 가며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려고 애썼으나 어색한 침묵이 수분 이상 흘렀다.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질문을 꺼냈다. “우리가 아무리 애를 써봤지만 진드기나 벼룩에선 한탄바이러스를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또 원숭이에게 바이러스나 진드기 부유액을 직접 주사하는 실험에서도 원숭이는 발병하지 않았습니다” 카사하라 박사가 유행성출혈열이 등줄쥐에 기생한 진드기를 통해 원숭이에 감염된다고 주장한 것에 대한 의심과 반박이었다.

그랬더니 그는 각오를 한 듯 침묵을 깨고 내게 뜻밖의 이야길 털어놨다. 요지인즉 자신과 키타노 장군이 발표했던 원숭이 실험은 사실 원숭이가 아니라 사람이었으며 쥐에서 채집한 진드기도 깨끗이 소독하지 않고 그냥 갈아서 주사기로 주입했으므로 결과가 잘못 나왔을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쥐의 소변이 진드기에 묻어 있었으면 당연히 소변 속의 바이러스가 진드기와 함께 주입돼 병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진드기가 사람을 물어 진드기 체내에 있던 바이러스가 사람에게 전염된다는 자신의 주장은 틀렸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이었다.

▲ 1981년 일본 도쿄의 기다사도연구소에서 가사하라 박사를 만났다

731부대에서의 인체실험을 위장하기 위해 원숭이를 사용했다고 거짓말을 쓰고 보니 실험 결과도 왜곡됐다는 고백이었다. 그는 내게 기회가 있으면 자신을 대신해 국제학회에서 자신의 입장과 거짓말을 한 것을 밝혀 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그에게 얼마나 많은 사람을 대상으로 실험을 실시했느냐고 물어 봤으나 그는 답변할 수 없다고 했다. 그는 그 당시를 회상하기 싫으며, 실험 내용도 말할 수 없다고 했다.

잠시 후 그는 괴로운 표정으로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학자로서 최소한의 고백만 한 셈이다. 우리는 연구소 정문 앞에서 사진을 찍고 헤어졌다. 그 후 그가 어떻게 지내는지는 전혀 소식을 듣지 못했다. 한편으론 평생 은둔생활을 해야 하는 그가 측은한 생각도 들었다. 어찌 보면 그도 일본 군국주의의 희생양이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나는 세균전에 대해 각별한 관심을 갖게 되었다. 세계 각국의 세균전 관련 자료를 모았고 한탄바이러스가 세균무기로 악용될 가능성도 생각해 봤다. 1983년 소련군 전투기조종사가 당시로선 최신식인 미그23기를 몰고 일본 홋카이도에 망명한 사건이 있었다. 그때 나는 미국 메릴랜드 주에 있는 미국육군의학연구소를 방문 중이었는데 어느 날 사령관인 바퀴스트 대령이 나를 불렀다. 내용인즉 사람의 혈청 1㏄를 조면서 한탄바이러스에 대한 항체가 있는지 없는지 확인해 달라는 것이었다. 검사해 봤더니 한탄바이러스 항체는 존재하지 않았다.

나중에 듣고 보니 그 혈청은 바로 미그기를 몰고 온 소련군 조종사의 짓이었다. 당시 미군은 소련군에서 세균전에 대비해 한탄바이러스를 비밀리에 분리해 놓고 조종사 등 일선에서 근무하는 군인들에게 예방접종으로 주사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의심한 것이다. 미군은 이 정도로 소련군을 믿지 않았다.

1989년 나는 바퀴스트 대령으로부터 소련이 비밀리에 세균무기를 개발하고 있다는 확실한 증거를 포착했다는 소리를 들었다. 미국의 첩보위성이 모스크바 북쪽에 위치한 소련군 비밀연구소에서 세균무기를 개발하는 현장을 촬영하는 데 성공했다는 것이 아닌가. 놀랍게도 실험실 책상에 놓인 세균배양용 시약과 연구자의 이름까지 판독할 수 있는 사진을 찍었다고까지 했다.

미국이 겉으론 자유분방하고 낙천적이며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나라로 보이지만 속으론 모든 가능성에 일일이 대비하고 있는 무서운 국가란 생각이 들었다. 하긴 내가 생각해 봐도 세균무기는 가공할 파괴력을 지니고 있다. 테러범들이 세균을 무기로 사용하면 큰 재해가 될 수 있다.

통조림 고기가 썩을 때 발생하는 보툴리눔 독소는 단1그램만 있어도 1백만 명의 생명을 앗아갈 수 있다고 하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