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조사해 본 바로는 일본군이 거느린 세균전 부대는 만주에 있는 일본 관동군 제731부대뿐이 아니었다. 1938년 창설된 북경의 1855부대, 1939년에 생긴 남경 1644부대, 그리고 1939년에 편성된 광동의 8604부대 등 서너 개의 부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세균전을 전개했따. 그러나 이들 부대는 단지 행동대장 역할만 했을 뿐 핵심 중추는 토쿄의 일본군의학교에 있었다.
군의학교란 말 그대로 군의관을 교육하고 양성하는 교육기관이다. 그러나 실은 이곳에서 치밀한 각본을 만들었으며, 이에 따라 세균전을 총지휘한 것이다. 악명 높은 731부대 역시 이곳의 지령대로 인체실험을 식민지 주민과 포로를 대상으로 실시한 하수인에 불과했다.
1990년대 중반 일본에서 놀랄 만한 사건이 발생했다. 토쿄 시내 메구로(目黑)에 위치한 일본국립전염병연구소의 시설이 낡았다는 이유로 토쿄 신주쿠(新宿)의 도야마(戸山)로 옮기는 공사가 실시됐다. 도야마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의학교가 있었던 곳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공사중 땅을 파다 보니 신원 미상의 시신이 50여 구 이상 발견되었다.
뼈를 통해 DNA 검사를 한다는 등 일본 경시청의 감식작업이 요란하게 진행됐지만 아직도 그들의 신원은 오리무중에 있다. 증거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이 인체실험의 희생양이 맞다면 일본 본토에서도 인간 마루타가 있었다는 것이므로 보통 일이 아니다.
유행성출혈열 연구를 진행하면서 나에겐 한 가지 의문이 있었다. 그것은 왜 일본의 세균전 부대가 유행성출혈열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는가 하는 점이었다. 사망률이나 전염력을 따지면 페스트나 천연두가 한 수 위인데 말이다. 실제 학문적으로 세균이나 바이러스의 독성을 4가지로 분류하는데 유행성출혈열의 원인 바이러스인 한탄바이러스는 이들보다 한 등급 아래로 놓인다.
P1그룹은 대장균 등 인체에 무해한 종류며, P2그룹은 드물게 병을 일으키지만 쉽게 예방과 치료가 되는 포도상구균 같은 것이다. P3그룹은 치료와 예방이 쉽지 않고 전염력과 사망률이 비교적 높은 종류로 한타바이러스 외에 에이즈, 간염바이러스 등이 포함된다.
P3부터는 안전장치 속에 배지를 갖다 놓고 격리해 실험해야 한다. 가장 위험한 그룹이 P4로 여기엔 에볼라바이러스, 천연두바이러스, 페스트세균 등이 포함된다. P4그룹의 연구를 위해선 연구자가 아예 우주복과 같은 옷을 입어야 하며 이러한 연구 시설은 아직 국내에 없다.
1981년 8월, 일본에서 나에게 국제전화가 걸려 왔다. 일본 야마나시(山梨)의 한 종합병원에서 원장을 맡고 있던 나카자와(中沢) 박사였다. 서울에 가는데 나를 만나고 싶다는 것이다. 나는 그를 의대 학장실에서 만났다. 그는 내게 자신이 태평양전쟁 당시 만주에서 관동군 군의관으로 근무했으며 그때 유행성출혈열에 감염된 말을 여러 마리 보았다고 털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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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86년 일본군의 말이 만주에서 유행성출혈열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려온 나카자와 박사와 고려대 의대에서 찍은 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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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만 해도 나는 모르모트나 돼지 등 일반적인 실험동물엔 유행성출혈열이 감염되지 않는다고 알고 있었는데 이 병에 걸린다는 사실에 놀랐으며 흥미를 느꼈다.
그러나 이내 그 사실이 결코 가벼운 사안이 아님을 알았다. 탱크가 귀한 당시엔 중국에서 말이 군인이나 군수물자를 나르는 가장 중요한 교통 운반 수단이었다.
어느 정도냐 하면 일본 관동군엔 군마를 담당하는 수의부대가 있었으며, 이 부대의 사령관은 별을 두 개나 다는 중장(中將)이었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일본의 계급제도는 별 두 개가 소장(少將)인 우리와 다르다. 수백 마리의 군마와 수천 명의 군인이 이 병에 걸렸다니 이제야 일본군이 유행성출혈열 연구에 눈독을 들였던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1933년 중국 장춘에 설립된 관동군 군마방역창에서 탄저병 세균 등 갖가지 세균무기 수백 킬로그램을 배양하여 말에 접종시킨 다음 몽고인을 이용해 이런 말을 소만 국경지대 소련군 주둔지역에 1천여 마리를 방목하여 보냈다는 것이다. 세균전은 사람뿐만 아니라 가축에도 적용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