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균전은 태평양전쟁뿐만 아니라 한국전쟁에서도 뜨거운 논쟁거리로 부각된다.
냉전시대에도 나는 세계보건기구 자문관 자격으로 중국이나 소련 등 당시 적성국가로 분류돼 보통사람의 입국이 불가능한 나라들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이들 국가의 고위직 의사들은 한결같이 한국전쟁 때 미군이 북한과 중공군에 대해 세균전을 펼쳤다고 주장했다. 내가 만난 한 중국인 학자는 미군이 중공군의 집결지였던 신의주 맞은편 중국 국경지대에 있는 안동 시 근처에 다량의 페스트균을 살포했다고 주장했다. 자신이 직접 페스트 세균에 감염된 들쥐를 채집했는데 만주엔 전혀 살지 않는 새로운 종류의 쥐였다는 것이다.
미군 비행기가 밤사이에 이곳을 지나가고 나면 다음날 아침 마을 근처에 빵이나 닭털 등 이상한 물건들이 떨어져 있고 거기에 균이 묻어 있었다는 말도 들었으며 당시 중국군 포로가 된 미국 조종사의 입을 통해 대구의 모 미군 비행장에 세균폭탄이 있었다는 증언도 나왔다고 했다. 그는 미군 비행기에서 떨어진 세균폭탄의 잔해를 보여 주며 내게 설명하기도 했다.
세균폭탄은 일반폭탄과 달리 화약 대신 인공 배양된 세균덩어리를 담은 것으로 땅에 떨어진 뒤 파편으로 조각나지 않고 쪼개지면서 내용물이 터지는 특수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그것도 세균 입자가 고루 퍼지려면 지상 1백 미터 상공에서 분말형식으로 비산돼야 하는데 이를 위해선 고도의 폭탄 제조 기술이 있어야 한다. 그들은 한국전쟁 당시 미군의 세균전을 기정사실화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모두 그 공산주의자의 주장일 뿐이며 제3자에 의한 확실한 증거는 없었기 때문에 사실 그대로 받아들이긴 어렵다고 본다. 실제 한국전쟁 당시 북한과 중공의 요청으로 UN에서 중립국 학자들로 구성된 조사단을 파견해 북한에서 의심되는 물건들을 수거해 조사했으나 미군이 세균전을 전개했다는 확실한 증거는 찾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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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79년 소련 하바로포스크에서 열린 국제학회에 참석함 / 왼쪽에서 2번째가 필자, 3번째가 추마코프 박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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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중요한 사실은 우리도 세균전에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생물무기는 핵무기나 화학무기처럼 눈에 보이는 폭발적인 파괴력은 없지만 은밀하게 진행된다는 점에서 훨씬 무섭고 잔인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이유 때문에 1970~1980년대 미국과 소련이 극비리에 생물무기 개발을 진행한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생물무기와 관련해 가장 쇼킹한 사실은 옛 소련군 생물무기개발 부사령관이었던 알리베크 대령의 증언이다. 그는 우즈베키스탄 출신의 군의관으로 이십 년간 생물무기를 연구해 온 전문가다.
1990년대 초 소련연방이 붕괴되자 미국중앙정보부의 도움으로 미국으로 망명한 그는 베일에 갇혀 왔던 소련의 생물무기 실상을 폭로했다. 그는 지구상에서 멸종된 것으로 알려진 천연두바이러스가 사실상 소련군에 의해 해마다 20톤이나 저장 배양되어 왔다는 사실을 처음 공개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소련 붕괴 후 돈이 궁했던 시베리아의 세균무기연구소가 북한과 이란, 이라크에 수백만 달러의 돈을 받고 세균무기를 팔았다는 것이었다.
필자는 1999년 호주 시드니에서 열린 국제미생물학회에 참석했다가 학회가 끝난 다음날 ‘Bioterrorism(생물무기테러)’란 심포지엄에 참가하였다. 2000년 올림픽을 개최할 호주가 당시 선수들에 대한 생물무기테러에 대비하기 위해 각계의 전문가들을 초빙해 마련한 자리였다.
알다시피 1972년 뮌헨올림픽 때 이스라엘 선수들이 아랍권 게릴라들의 총격을 받고 사망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 자리에서 알리베크 대령을 직접 만날 수 있었다. 나는 그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북한에 옛 소련의 생물무기를 판 것이 사실이냐고 물어 봤다. 그는 명확하게 사실이라고 답했다.
그리고 그것은 탄저병, 콜레라, 천연두일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그러면서 수년 전 한국 국방부의 간부가 자신을 직접 찾아왔다는 이야기도 털어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