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리베크 대령은 자신이 미국 워싱턴에 체류할 때 한국에서 국방부의 한 고위간부가 찾아와 서울에서 자문도 하고 강연도 해달라고 요청했다고 털어놨다. 물론 북한의 생물무기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이며 체류비는 물론 상당 액수의 금액도 사례로 제시했다고 했다. 그는 수락할 마음이 있었지만 당시 미국국방부에서 허가하지 않아 한국에 가지 못했다고 했다.
북한이 탄저병 세균무기를 갖고 있다는 사실은 그의 입을 통해 들었지만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탄저병 세균은 흙 속에 살며 산소가 없어도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 혐기성 미생물이다. 주로 가축에 병을 일으키지만 때론 포자 형태를 통해 사람의 호흡기로 들어와 무서운 질병을 일으킨다. 탄저병 사망률은 다른 어떤 세균질환보다 높으며 초기에 치료하지 않으면 생명을 잃는다.
우리도 나름대로 대비를 하지 않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1981년 안기부에서 간부 한 명이 나를 고려대 의대 연구실로 찾아온 적도 있다.
그는 북한이 일본으로부터 빼 간 9가지 균주의 이름을 입수하고 내게 여러 가지 가능성을 물어 왔다. 그 중엔 콜레라, 탄저균 등이 있었는데 이들 중 탄저병이 특히 세균무기로 위험한 것이라고 설명해 준 적이 있다. 현재 대구 모 대학 생물학 교수로 있는 내 연구원 중 한 명은 1983년 안기부에 취직해 생물무기에 대비한 특수연구를 수행한 일도 있다고 들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엔 적어도 생물무기에 대해선 우리 군이 전적으로 미군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정보 수집도 그렇고, 대응 방법도 없다. 예컨대 한국에 주둔하는 미8군 병사들에겐 이미 탄저병 예방접종이 의무적으로 실시되고 있으나 우리는 아직도 시행되지 못하고 있다.
매사를 음모론적 시각에서 바라보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못 된다. 하지만 민족이나 국가 전체가 절멸할 수 있는 위기상황만큼은 실현 가능성이 희박하더라도 철저하게 대비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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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탄저균은 탄저병을 일으키는 대표적인 생화학 무기이며 흔히 공포의 백색가루로 일반인에게 알려져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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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균이나 바이러스는 실험실에서 유전자 조작을 통해 치명적 독성을 지닌 종으로 바꿀 수 있다. 돌연변이를 인공적으로 일으키는 것이다. 바이러스 전문가인 내가 보기에도 이런 일은 가능하다.
지금까지 보지 못한 치명적 독성을 지닌 돌연변이 세균이나 바이러스를 대량 배양한 뒤 이를 테러분자들이 시장바닥을 돌아다니며 균이 잘 자랄 만한 어패류나 음식물에 지팡이 끝에 달린 주사침으로 찌른다.
어느 날 갑자기 수백 명의 사람들이 생선을 먹고 고열과 구토에 시달리는 괴질을 앓게 된다. 학자들이 원인을 찾기 위해 부산을 떠는 동안 괴질은 사람에서 사람으로 급속하게 전염된다. 이는 불과 서너 주 안에 도시 전체의 인구가 멸망할 수 있는 시나리오다.
실제 제1차 세계대전 후 인류는 그때까지 보지 못한 돌연변이 독감에 의해 2천만 명이 생명을 잃었다. 이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의 전사자보다 훨씬 많은 숫자였다. 1950년대에도 홍콩과 상해에서 독감이 대유행해 각각 5만여 명이 생명을 잃었다.
물론 당시 유행한 독감은 사람의 인위적 조작이 아니라 자연 상태에서 발생한 돌연변이 바이러스에 의한 것이었다.
독감이 이 정도니 첨단과학으로 무장한 맹독성 돌연변이 바이러스가 출현한다면 그 피해가 어느 정도나 될지 상상하기조차 두렵다.
1981년 처음 모습을 드러낸 에이즈에 대해서도 설이 분분했다. 지금까지 가장 설득력 있는 학설은 산림 개간과 교통 발달 등 여러 가지 원인으로 원래 아프리카 산림 속 원숭이에게만 있던 에이즈바이러스가 사람으로 옮겨 왔다는 것이다.
소련이 성적 방종에 물든 미국을 서서히 붕괴시키기 위해, 또는 백인종이 흑인종을 말살하기 위해 고안한 생물무기라는 엉터리 주장도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