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열 대학과 연구소에서 산발적으로 발생한 괴질의 원인이 실험용 흰쥐에서 옮겨 간 서울바이러스 때문임을 밝혀 낸 필자는 일본 집쥐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 분명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일본 집쥐에도 서울바이러스가 있으리라 확신했기 때문이다.
1981년 필자는 오사카시립의대 의용동물학과 주임교수인 타카다(高田) 교수에게 일본 집쥐를 잡아 보내 달라고 요청했다. 우리나라 집쥐는 서울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있기 때문에 실험에 사용할 수 없었다. 만일 일본 집쥐가 깨끗하면 서울바이러스 실험에 사용해 볼 생각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다섯 차례에 걸쳐 타카다 교수가 서울에 보낸 2백11마리의 집쥐를 조사한 결과 24%가 감염돼 있었다. 채집한 지역에 따라 차이는 있었지만 동경 만에서 잡은 쥐가 제일 많이 오염되어 있었다. 엄청난 결과였다. 그러자 타카다 교수는 내게 편지를 보내 이 사실을 당분간 공개하지 말아 줄 것을 요청했다. 이 사실이 신문에 보도되면 앞으로 자신의 연구가 막대한 타격을 받게 됨은 물론 쥐를 잡다 병에 걸린 채집원들로부터 집단소송을 제기당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었다.
당시 일본 집쥐의 채집은 쥐를 잡는 이카리란 용역회사에서 맡았다. 순진한 들쥐와 달리 영악한 집쥐는 전문가가 아니면 산 채로 잡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알고 봤더니 혈청검사도 양성반응을 보인 집쥐는 모두 하네다(羽田)공항 근처 토쿄(東京) 만의 쓰레기 매립지에서 잡은 쥐였다. 당시 그 곳에선 ‘꿈의 섬’이란 칭호 아래 일본 정부가 의욕적으로 신도시 건설공사를 시행하던 중이었다. 내가 사실대로 발표하면 일본 언론이 벌떼처럼 들고일어날 것이 확실했다. 나는 타카다 교수의 요청을 받아주기로 했다.
그러나 비밀은 오래 가지 못했다. 일본국립보건원이 이 사실을 알고 꿈의 섬에서 쥐를 잡아 조사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져 왔다. 1983년 오사카에서 열린 일본전염병학회에서 우리의 연구 결과를 처음으로 공개했다. 2백11마리의 집쥐를 조사한 결과 24%가 서울바이러스에 감염돼 있었으며 이 중 8마리는 폐 속에 바이러스가 있었고, 이들 바이러스가 45일간이나 집쥐의 폐에서 살아있다는 내용이었다. 일본 학계가 놀라고 들끓었음은 물론이다. 언론에서도 지대한 관심을 보여 내가 가는 곳마다 신문기자들이 따라다녔다.
|
|
| ▲ 일본 최대 실험동물생산회사 SLC 다카키 사장의 수훈수상기념 축하회 / 앞줄 왼쭉부터 필자의 처, 다카키 사장, 필자, 가와마다 교수 |
|
실은 학회가 열리기 전날인 4월 5일 밤, 나는 갑자기 심한 복통으로 밤을 새웠다. 처음엔 과식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꼼짝 않고 휴식을 취했는데도 통증은 점점 심해졌다. 예사롭지 않음을 느낀 필자는 오사카시립의대병원을 찾았다.
일본 의사들은 환자의 통증에 매우 엄격했다. 정확한 진단을 위해선 아파도 참아야 하며 진통제는 주지 않았다. 진통제를 맞게 될 경우 정확한 진단을 제대로 하지 못해 낭패를 볼 수 있다는 취지였기에 필자도 억지로 참았다.
그러나 학회에서 내가 해야 할 발표는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결국 진통제 주사도 없이 아픈 배를 움켜쥐고 택시를 타고 학회장에 가서 발표를 했다. 가까스로 강연을 마치고 병원에 돌아와 이틀을 입원했지만 그때까지도 증상을 제대로 밝히지 못했다. 배에 가스가 차고 하복부의 통증이 심해 먹을 수도 없어 링거만 맞았다. 처음엔 맹장염을 의심했지만 열이 없었고 혈액 검사상 백혈구 수치도 정상에 가까웠다. 게다가 오른쪽 하복부를 누를 때 아파야 할 맹장염의 전형적인 징표도 없었다.
일본실험동물협회 주선으로 학회가 끝난 뒤 우리 부부가 5일간 이도반도 관광을 하도록 준비되어 있었는데 이 무슨 낭패란 말인가. 그러나 입원은 해야 할 판이고 일본 의사도 미덥지 않았고, 또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아 다음날 휠체어에 앉아 첫 비행기로 바로 서울로 돌아왔다. 나는 전혀 움직일 수 없었다. 토쿄를 떠나기 전 서울에 연락을 하여 구급차를 준비시켰다. 당시 나는 고려대의대 학장이었으므로 고려대 부속병원 앰뷸런스를 타고 빠져나와 병원에 입원했다.
필자의 선, 후배였던 당대의 명의들이 모두 모였다. 당시 고려대 구로병원장이던 당대 최고의 외과의사 민병철 박사와 대통령 주치의와 서울대병원장을 지냈던 고 한용철 박사 등이 나를 찾았다. 필자는 코에 튜브를 꽂은 채 드러누워 있을 정도로 괴로웠는데 엑스선촬영이나 내시경에선 모두 정상으로 나왔다.
의사들도 서로 의견이 달랐다. 결국 배는 째지 않았고 1주일간 먹지 않고 잠만 잤더니 회복되었다. 진단은 원인불명이었다. 의학박사인 환자가 모르는 일을 다른 의사들이 알아내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