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여름 미국 뉴멕시코 주의 나바호 인디언보호구역에서 괴질이 집단 발생했다. 21세 된 인디언 청년이 첫 희생자였다. 그는 인디언이 자랑하는 마라톤선수로 평소 매우 건강한 사람이었는데 고열과 함께 폐렴이 도져 호흡곤란으로 갑자기 숨졌다. 그리고 그와 같이 살던 그의 약혼녀인 인디언 처녀도 며칠 뒤 같은 증세로 사망했다.
이들을 진찰한 백인 의사가 수상하게 여겨 인디언보호구역 내의 병원들을 조사해 보니 이미 비슷한 병의 희생자가 20여 명이나 되었다. 미국 전역에 비상이 걸렸다.
언론에 사막의 괴질이라고 대서특필되고 미국전염병예방통제센터(CDC) 역학조사반이 급파됐다. 수개월에 걸친 조사 결과 원인균이 내가 발견한 한탄바이러스와 유사한 바이러스로 추정되었다. 그 해 가을 나도 현장으로 달려갔다. 내가 지니고 간 바이러스 표본으로 조사해 보니 인디언 환자들의 혈청에서 양성반응을 보였다. 원인 바이러스가 분명 한탄바이러스와 관계가 있으며 유사하다는 증거였다.
그러나 한탄바이러스는 주로 콩팥에 문제를 일으키는 반면 이번 바이러스는 폐에 문제를 일으키는 점이 달랐다. 우리는 유전자를 증폭시키는 PCR(중합효소연쇄반응)기법으로 문제의 바이러스 유전자를 조사했다. 그랬더니 한탄바이러스와 완전히 일치하진 않았지만 86%나 일치했다. 한탄바이러스의 사촌쯤 되는 새로운 한타바이러스였다.
문제는 여기에서 비롯됐다. 인디언들이 들고일어난 것이다. 역사적으로 피해망상에 걸린 인디언들은 백인들이 자신들을 말살시키려고 괴질을 퍼뜨린 것이란 주장이었다. 현지 인디언들의 감정이 격앙되어 있음을 나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미국인 연구진들과 난생 처음 인디언보호구역을 방문했다. 이곳은 나바호족이란 인디언부족을 보호하기 위한 지역으로 인디언들끼리 대통령을 선출해 자치행정을 실시하는 독립된 형태의 작은 자치 국가였다. 비록 사막지대가 많지만 영토가 강원도 정도는 되는 제법 큰 지역이었다. 이곳에선 그곳 법에 따라 술을 일절 판매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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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3년 가을 나바호 인디언보호구역 내에 있는 나바호국 대통령 사무실에서 / 왼쪽에서 두 번째가 필자, 세 번째가 인디언 대통령 피타슨 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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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미국인 학자들과 함께 현장조사를 마치고 보호구역을 벗어난 접경지대의 술집으로 갔다. 이곳에서 맥주를 마시고 있는데 인디언 2명이 내게 와서 다짜고짜 항의성 발언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수천 년 동안 조상 대대로 이 지역에서 살았는데 한 번도 이런 일이 없었으며 이번 괴질은 분명히 백인들이 자신들을 죽이려고 만든 음모”라는 것이었다.
당황스럽기 짝이 없었다. 하긴 내가 1950년대 미네소타대학에서 공부할 때 만난 한 인디언 여학생도 백인들에 대한 반감이 대단했다. 자신들의 영토를 백인들이 강제로 빼앗았다는 것이다. 실제 200년 전 백인과 인디언들이 전쟁을 벌일 때 인디언들이 세균전 공세에 시달린 적도 있었다.
백인들이 천연두 환자가 사용한 외투나 담요를 인디언 마을 근처에 일부러 던져 인디언들이 떼죽음을 당한 일도 있었다고 했다.
지금까지 한 번도 천연두 바이러스에 노출된 적이 없어 저항력이 전혀 없었던 인디언에게 천연두 바이러스는 치명적으로 작용했고 인디언은 전멸했다.
과거 남미의 잉카제국도 스페인에 정복당한 이유가 군대의 힘보다 천연두 때문이었다는 설이 있을 정도니 인디언들이 세균무기에 치를 떨 만도 했다. 인디언들은 내가 발견한 한타바이러스가 자신들을 죽이기 위한 무기로 악용됐다며 나를 의심했다.
이 때쯤 샌프란시스코의대 병리학교실에서 한 가지 반가운 소식이 날아왔다. 1971년 괴상한 폐렴으로 숨진 백인의 폐 조직을 보관하고 있었는데, 이 조직에 PCR기법을 적용해 바이러스DNA를 증폭시켜 봤더니 인디언에게 발생한 것과 똑같은 바이러스DNA가 발견됐다는 것이다.
이는 이번 괴질을 일으킨 바이러스가 이미 1971년에도 미국 땅에 존재했다는 증거였다. 1971년은 내가 한탄바이러스를 발견한 1976년 이전이 아닌가. 가까스로 오해도 풀리고 이 병이 오래 전부터 미국에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게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