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중국 옌볜에 사는 조선족을 서울에서 처음 만난 것은 1988년 겨울이었다. 녹십자사 허영섭 사장의 초청을 받고 서울에 온 옌볜의학원 교수 한후철씨와 임동선씨였는데 그들은 옌볜의학원 부속 생물면역연구소에 근무하는 연구원이었다. 이 만남이 인연이 되어 1990년 봄 WHO 자문관으로 북경에 간 나는 연길시에 가게 되고 옌볜의학원에서 명예교수로 추대되었다.
그 후 옌볜의학원 교수들을 서울에 초청하여 나의 연구소와 병원에서 유행성출혈열 공동연구를 같이 하게 된다. 이름이 공동 연구지 실은 고국 방문이었다. 그들이 한국에 올 때면 중국산 우황이나 산에서 재배한 산삼 또는 여러 가지 한약들을 한 보따리씩 가지고 와 팔았는데 꽤 수지가 맞는 것 같았다.
돌아갈 때면 비교적 그들보다 형편이 나은 우리들이 중고 의료기구와 시약 또는 많은 중고 의복 등을 모아 주기도 하였다. 그때 있었던 웃지 못할 일이 있다. 그들은 중국에서 가지고 온 곰의 담즙을 건조시킨 분말과 몸에 좋다는 한약, 그리고 산에서 재배한 인삼 두 뿌리를 나에게 선물로 갖고 왔는데 하는 말이 이것은 중국에서 가져온 귀한 물건이며 선생님께 드리는 뇌물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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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른쪽부터 홍타오 박사, 필자, 야내 김은숙, 그리고 조선족 한후철 옌볜의학원 교수, 1986년 중국 옌볜 용정시 발상지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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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뇌물이라는 말에 깜짝 놀라면서 “아니 뇌물이 아니라 선물이겠지요”하였더니 그들은 “선물이 뭡니까. 이것은 진짜 뇌물입니다”라고 다시 강조하는 것이었다. 하도 기가 막혀서 우리나라에서는 대가성이 없고 감사의 뜻으로 주는 작은 물건은 선물이라고 하며, 뇌물은 뭔가 대가를 바랄 때 쓰는 좋지 않은 말이니 앞으로 다른 사람에게 작은 물건을 줄 때는 선물이라고 하는 것이 좋으니 절대로 뇌물이라는 말은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말하였다.
그들은 나를 이상하다는 듯이 한참 쳐다보더니 중국에는 선물이라는 말이나 한자가 없다는 것이며, 남에게 호의로 주든 부탁이 있어서 주든 다 뇌물이라고 한다는 것이며, 선물이나 뇌물이나 아무런 차이가 없다고 했다.
그 후 하도 이상한 생각이 들어 다른 중국인 학자에게 확인해 본 결과 정말 중국에는 선물이란 말은 없고 뇌물이라는 한자만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중국이 한자의 원조이니 그들의 주장이 틀림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그제야 들었다. 따지고 보면 그들의 주장이 옳을는지 모르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