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학계에서는 심각한 난센스가 여러 번 있었는데, 모두가 한 과학자의 신빙성 없는 발표와 이를 받아들인 신문기자의 특종기사 때문이었다. 모 대학의 L교수는 B형간염바이러스가 동대문 시장에서 구입한 자라새끼에서 증식한다고 서울의 유력 신문사의 기자를 통해 엉터리 발표를 하고 센세이션을 일으킨 다음 그 해의 신문기자들이 주는 특종 기사상을 받았다.
기자들은 그의 말만 믿고 검증도 하지 않았는데 말하자면 그는 서울에 있는 유명대학의 교수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학계에서는 믿을 수 없는 일이라 크게 문제가 되었으나 그러한 문제에 대해 신문기자들은 L교수를 시기하기 때문이라고 기사를 썼다.
한국의 많은 신문사에는 경험이 부족하고 영웅심에 사로잡힌 초년생 사회부 기자들이 우글거린다. 전문 지식과 검증 과정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모르기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었다. 한 번 실수를 한 사람은 또 실수하는 경향이 있다. 깊은 반성이 없으면 그런 일이 되풀이되기 쉽다.
몇 년 후 L교수는 또 에이즈바이러스와 성인T세포백혈병바이러스가 혈청학적으로 똑같다는 이해할 수 없는 발표를 했는데도 다시 신문이 크게 보도하는 바람에 큰 물의를 일으키고 대한의학협회가 이사회를 열고 보사부의 요청에 따라 진상조사까지 했다.
그의 주장은 에이즈바이러스와 백혈병바이러스는 동전의 앞면, 뒷면과 같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동일하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이다. 그는 이 사건이 있은 후 대한미생물학회나 바이러스학회의 학술대회 석상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학회 회원들의 반발이 너무나 컸기 때문에 학회장에 있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이것도 신문이 특종이라고 생각하여 대서특필했기 때문에 문제가 되었다.
L교수는 몇 년 후 다시 한 번 더 큰 일을 저질렀다. 성인백혈병의 원인이 호주에서 많은 환자를 일으키는 전염병의 원인균인 콕시엘라 버넷티라는 세균이라고 발표하여 세상을 놀라게 했다. 세계 최초의 발견이라는 것이다. Y병원에 입원한 백혈병환자로부터 이 균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이 균은 전 세계에 분포되어 있는 흔한 균이다. 또 검증 없이 세계 최초의 발견이라고 신문들은 대서특필하고 TV방송도 특종으로 보도하였다. 간암 환자에게서 이상한 대장균이 발견되었다고 해서 그 균이 간암의 원인이라고 단정할 수 없듯이 정말 과학자의 상식으로 볼 때 웃기는 일들이 한국에서 여러 번 벌어진 셈이다.
그는 몇 년간 학회에 나타나지 않았으며, 이에 관한 논문도 발표하지 않았고 정부가 주는 연구비만 탔다. 그런데도 Y대학은 영문도 모르고 그를 Y대학을 빛낸 교수라고 표창장까지 주었다고 하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그 대학의 A총장은 이런 교수가 두세 명만 더 있으면 Y대학은 한국 최고의 S대학을 능가할 수 있다고 공식 석상에서 말했다고 한다. 이런 사람이 유명한 학자로, 또 저명한 대학교수로 대우받으며 살아남을 수 있는 나라는 이 지구상에 흔치 않을 것이다.
이런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한국 학자들은 점잖아야 하기 때문에 공개적으로 신문 지상이나 학회지에서 비판하지 않았다. 지금도 그때 그런 보도를 한 신문기자들은 아직도 사실이라고 믿고 있는지 아니면 체면 때문에 가만히 있는지는 모를 일이니 기가 막히고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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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내와 함께 참석해 대한민국학술원 상을 수상하고 있다 (197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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