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천주교 신자가 된 것은 뜻밖의 일이었다. 세상 살아가다 보면 예상치 않았던 일들이 생겨나 현실이 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하고 많은 일 가운데 내가 그림 일을 하게 된 것도 그렇고 배필을 만나 아들딸 낳고 한생을 같이 사는 것도 그러하다. 그런 것을 일러 운명이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1958년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고향 대전에 내려갔다. 청운의 꿈을 버리는 것 같아 섭섭하기는 했어도 고향은 고향대로의 아름다움이 있었다. 부모 형제가 있었고 할머니가 있었고 산천이 모두 내 벗이었다. 학업을 마쳤으니 직장을 생각해야 했는데 그보다 나는 시내 어디에 무슨 절이 없는지 찾는 일에 더 열심했다. 결국 한 군데 발견했으나 적응할 수 없었다.
미술대학 삼학년 여름방학이 끝날 무렵이었다. 비원 앞 대각사(大覺寺)에서 특별한 불교강좌(佛敎講座)를 개설했다. 그런데 그런 절을 찾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크게 실망하고 차선으로 시내 여러 교회를 누비고 다녔다. 성공회도 찾았는데 천주교 성당은 알지 못했다.
어떤 절박한 목마름이 있었다. 사방은 깜깜하고 닫혀 있었다. 뚫린 틈새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나는 예술에 우선하여 종교를 찾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 친구를 만났다. 나의 답답한 속사정을 털어놓았다. 그 친구는 내 얘기를 듣더니 대꾸는 하지 않고 가자 해서 따라갔는데 거기가 대흥동 성당이었고 만난 이가 오기선 신부였다.
대흥동 성당 오기선 신부를 만나기까지 소설책 한 권은 족히 되고도 남을 긴 사연이 있었다. 그 굽이굽이 기구한 여러 만남의 사건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세례명을 프란치스코라 정하고 새들에게 설교하는 성인의 모습을 꿈같이 그리고 있었다. 영세식을 앞에 놓고 신부님과 한담하는 가운데 내가 문득 세례명을 무어라 할까요 했는데 오기선 신부님이 지체 없이 하시는 말씀이 “요셉이지!” 그랬다.
순간에 프란치스코는 날아가고 나는 요셉이 되었다. 서로가 별생각 없이 한 말이었는데 거역할 수 없는 어떤 압력 같은 것을 느꼈다. 그래서 나는 요셉이 되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오기선 신부의 본명이 요셉인데 누구든 나처럼 물으면 요셉이다 해서 요셉이 된 이가 더러 있다 한다. 그럭저럭 나는 요셉으로 익숙하게 살고 있다. 예수 마리아 요셉을 모르는 가톨릭 신자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 아닌가. 흔한 이름이라서 매력이 없는가 싶더니 오래 지나고 보니 참 잘했다 싶다.
몇 해 전 춘천교구 교구청을 지으면서 날 보고 ‘요셉과 아기 예수’를 만들자 청했다. 그 이유인즉 이러했다. 요새 부권(父權)이 말이 아니어서 아버지를 제자리에 세워놔야 하겠다는 뜻이었다. 어쨌거나 교구청 마당 햇볕 좋은 곳에 내가 만든 돌 성모상이 서 있고 건물 안쪽에서 요셉이 예수 아기를 안고 서 있다. 아기는 마당 건너 어머니를 보고 있다. 공교롭게도 그 조각은 사람들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천사가 꿈에 나타나 요셉에게 두려워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으라 했다. 또 천사가 나타나 아기를 데리고 피난 가라 했다. 또 천사가 일러주는 대로 이스라엘 땅으로 다시 들어갔다. 요셉은 죽을 때 마리아와 예수의 돌봄을 받았다고 한다. 요셉은 사람이 되신 하느님의 간호를 받으며 세상을 임종하는 은혜를 입었다.
세상사는 내 뜻대로만 되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수없이 보아왔다. 학교 다닐 때 불경 공부를 하다 고향에 내려가 절을 찾는다는 것이 결과는 천주교 신자가 되었고 세례명을 프란치스코라 정했는데 한 찰나에 그만 요셉으로 바뀌었다.
세상 많은 일 중에 내가 예술을 만나게 된 것도 내 뜻이 아니었고 그중에서도 조각이라는 형상 만드는 일을 평생의 업으로 삼게 된 것도 내가 정해서 된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후회하는 일은 하나도 없다.
그러면 이 모든 것이 누가 시켜서 된 일인가. 하늘은 스스로 찾는 사람의 손을 잡아 끌어준다 했다. 그런데 이 억만 겁의 시간 속에 하느님의 요셉을 정해 놓고 그 사명을 맡기셨으니 그분은 얼마나 복되신가.
지극히 겸손하신 요셉이여,
우리를 위해 선종의 은총을 하느님께 간구해 주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