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미리 사 둔 내 자가용 코티나를 타고 운전연습을 해야 했다. 한국 공병대에서 덤프트럭으로 가끔씩 운전해본 지 5년이 지났지만, 자동차를 운전하는 데는 별 어려움이 없었다. 회사에도 코티나를 타고 다녔다. 처음에 회사에 차를 운전하고 갔을 때, 여비서가 많이 축하해 주었다. 조심해서 운전하라고 충고하고, 응급 시에는 자동차 응급처치소인 국가도로회원협회(NRMA, National Road Member Association)라는 곳을 이용하는 절차도 알려주었다.
주말에는 운전연습 겸 나들이로 L 씨 집에 가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살던 북쪽에서 L 씨가 사는 남쪽 지역으로 가려면 그 유명한 시드니 하버 브리지를 건너야 했는데, 여간 부담스러운 다리가 아니었다. 8차선에 왕복 기차 선이 별도로 있고 인도까지 있는 특별한 다리였다. 때로는 8차선이 가변차선으로 운영되고 있어서 자칫 잘못 들어서면 엉뚱한 곳으로 가게 되는 시스템이었다.
아내와 아들의 호주 입국
그러나 아내와 현진이를 데리러 공항까지 가려면 반드시 그 다리를 건너야만 했기에 주말이면 별 이유도 없이 다리 건너다니는 연습을 했다. 첫날 건너갔을 때는 정신이 하나도 없어서 L 씨 집에 도착하자마자 쓰러질 뻔했다. 그렇게 연습을 몇 번 하고 나니, 가족이 도착할 날이 다가왔다.
1971년 2월 말일, 호주 항공으로 아침 6시경 호주에 도착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나는 기다리던 가족을 만나기 위해 내 자가용 코티나에 시동을 걸었다. 생전 처음 내 차로 가족을 데리러 공항에 간다고 생각하니 뿌듯하고 마치 내가 성공한 듯 한 기분이었다. 나는 L 씨, C 씨 등 몇 사람에게 가족의 귀국 사실을 알려주었다. 내 주변의 교민 몇 명도 공항에 나가보겠다고 했다. 새 이민가족이 온다니까 교민 몇 명이 공항으로 마중 갈 정도로 그 당시에는 호주에 사는 한국인이 귀했던 것이다.
공항으로 마중 간 교민은 L 씨 가족과 보석가공 기술자 등 열 명 미만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지금도 L 씨 가족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아기를 데리고 장시간 비행기 타고 온 아이 엄마의 고생이 컸을 거라며, 밥과 국을 미리 준비해 놓을 테니 공항에서 자기 집으로 바로 오라고 수차 당부했다.
처음 본 아들, 현진이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공항에 도착하여 기다리고 있었다. 항공기 도착을 알리는 불이 켜졌다. 호주 항공기가 도착한 그 시간에는 다른 항공기들도 한꺼번에 도착했다. 많은 사람이 출구로 나오기 시작했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호주항공 여승무원이 어린애를 품에 안고 여기저기 두리번거리더니 우리 일행 쪽으로 와서 몇 번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설마 그 아이가 현진이일 줄은 몰랐다. 여승무원은 현진이를 나한테 건네주면서 “Are you Mr. Lim?”이라고 묻기에 “Yes!”라고 대답했다. 여승무원이 이어 “Here you are, this is your baby!”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다른 한국인들도 여러 명 있었는데 어쩜 그리도 쉽게 아이를 나한테 건네주었을까?
붕어빵 부자간을 승무원이 잽싸게 알아챈 것일까? 태어난 지 5개월 된 현진이는 내 품에 안긴 채 나를 가만히 쳐다볼 뿐 울지도 않았다. 5개월 정도 되니 얼굴과 몸이 약간 통통했고, 노랑 셔츠에 짧은 반바지를 입고 있었다. 현진이가 처음 보는 내 품에 안겨서도 울거나 엄마를 찾지 않은 것을 보면 아마 부자간의 피가 통했던 것 같다. 현진이도 어떤 느낌이 있는지 계속 나를 쳐다보았다. 정말 신기한 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
얼마나 더 지났을까? 파김치 된 모습으로 보따리를 들고, 묵직한 가방은 어깨에 메고, 이민 가방은 트로리에 올려놓고, 또 그 위아래에 이것저것 싣고 아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 순간의 모습을 뭐라고 설명하기 어렵다. 너무나 시달린 듯 한 허약한 모습으로 남편을 바라보는 얼굴이 창백하고, 어색하고, 반갑고…. 복합적인 감정이 얼굴에 모두 드러났다. 그렇게 우리는 7개월여 만에 다시 만났다.
우리는 우선 L 씨 집으로 갔다. L 씨 집은 비행장 근처에 있었기 때문에 쉽게 이동할 수가 있었다. L 씨 부인은 아내가 비행기에서 고생을 많이 했다며 따뜻한 밥과 국도 차려주고 현진이 기저귀도 갈아주며 잠시 눈 좀 붙이라고 따뜻이 배려해 주셨다. 너무나 고마웠다. L 씨의 모친께서도 현진이의 기저귀를 갈아주시고, 아내에게 모유를 먹이게 하시는 등 지극한 정성으로 보살펴 주셨다.
L 씨의 지극한 정성
아내의 보따리에는 비행기 안에서 갈아준 현진이의 천 기저귀가 한가득 이었고, 그 외에 미역, 멸치, 먹다 남은 약밥, 몇 가지 선물 등이 전부였다. 그 시절에는 일회용 기저귀가 없었기 때문에 한 번 쓴 기저귀는 다시 세탁해서 사용해야 했다. 무엇보다도 기저귀 준비가 급한 상황이었다. 우리는 온종일 L 씨 집에서 쉬며 현진이 뒤치다꺼리와 기저귀 건조시키는 일을 하며 보내다가 해가 지기 전에 우리가 살아야 할 집으로 출발했다.
현진이는 호주에 온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울지도 않았고 엄마 품 안에 잠시 안겨 어느새 우리 집에 도착했다. 우리 아파트는 2층이었는데, 모두 4가구가 세 들어 있고 보통 크기의 집이었다. 길가에 있어서 오가는 차들도 쉽게 내려다볼 수 있었다. 짐을 모두 풀고 감사 예배를 드렸다. 모든 것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드렸다. 초행에 어린아이까지 데리고 무사히 합류했으니 그저 감사했고, 앞으로도 호주에 정착하는 동안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시기를 기도했다.
현진이는 참으로 착했다. 울지도 않고, 밤에 잠도 잘 자고, 배만 부르면 잘 놀았다. 나는 주말에 중고 자가용으로 가까운 해변과 늘 푸른 공원, 경치가 좋다고 소문난 곳에 가끔 나들이를 했다. 허물없이 L 씨 집도 방문하고 그분들과 함께하면서 그럭저럭 세월을 보내기 시작했다.
아내가 호주에 도착한 직후 M 사장에게도 그 사실을 알려주었다. M 사장에게 ‘가족이 입국할 때 돈을 더 가지고 온다.’고 한 말이 마음에 걸리기도 했다. 사실 M 사장과는 그렇게 가까이 지내게 되질 않았다.
몇 개월 호주생활을 해본 아내의 계산도 내 생각과 거의 같았다. 주급 60여 불을 받아, 아파트 대여료 25불에다 식품, 자동차 연료비 지출하고 나면 남는 돈은 아무것도 없었다. 우리 미래의 목표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희비가 엇갈릴 상황이었다. 아침에 회사 출근했다가 퇴근하면 집에 가고…, 다람쥐 쳇바퀴 도는 생활이 계속되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