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이후 우리는 열정적으로 만나 한인교회 창립을 서두르기 시작했다. 사실 내 개인적인 사정은 직장도 새로 옮긴 터라 불안한 상태에다 시간제 학생신분인 데다, 재정적으로도 도저히 감당할 환경이 못 되었다.
그러나 아내는 한인교회 창립에 매우 적극적인 자세였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면 능치 못할 일이 없다는 철저한 그녀의 신앙심에 근거한 것이다. 내가 뒤로 한발 물러서 있으면 적극적으로 참여하라고 나를 부추기곤 했다.
레드펀(Redfern)에 예배당을 마련
한인교회 창립 시기도 다가오고 예배당 물색이 점점 바빠졌다. 변 목사가 최종적으로 찾은 예배당은 시내권에 속하는 레드펀(Redfern)이라는 호주 장로교회였다.
그 지역은 아주 오래전부터 도시가 형성되었고, 백인들도 많이 살지 않으며 이민근로자들이 많이 모여 사는 빈민촌으로도 유명했다. 각종 범죄와 마약거래가 있는 곳이라고도 했지만, 한인교회 창립을 서두르는 우리에게는 크게 문제 되지 않았다. 일요일에 호주인들이 오전 예배를 마치면 곧바로 우리가 예배당을 사용할 수 있어서 사실상 독차지하는 셈이었다.
게다가 호주 교인들은 몇 명 되질 않아 그들이 교회에 머무는 시간도 짧았다. 한인교회 창립 날짜를 정했다(기억 안 남). 그리고 계획대로 첫 예배준비를 했다. 변 목사의 설교, 예배순서 주보 발간, 예배진행과 관련한 전반적인 준비 등이었다.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되었으나, 예배 반주자 선택에서 약간의 문제가 생겼다. 참여하는 교인의 숫자도 몇 명 되지 않고 경험자를 찾기도 어려워서 교회 반주 경험이 있는 아내가 반주를 맡기로 했다. 교회 반주는 피아니스트나 오르가니스트라 해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먼저 성가를 이해하는 자세가 중요한 것이다.
아내가 열성적으로 교회 일에 참여
아내는 피아니스트는 아니어도 만사 제쳐놓고 교회 일부터 하는 자세라, 그 첫 예배의 반주자로 별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그 부분에서 무언가 매끄럽지 않다고 생각한 사람은 예배부장이었던 Y 교수였다. 반주자 선정 과정에서 예배부 책임자의 허락이 필요했는지는 몰라도, 서로 모르는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음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는 중에도 창립예배일은 다가오고 있었다. 그 준비과정에서 적극적으로 참여한 사람이 있었다. 당시, 콜롬보 플랜이라는 국제교육 계획으로 호주 시드니대학교에서 유학 중이던 미스터 김(후에 목사 안수 받음) 부부였다. 그의 부친이 부산지역의 목사였고, 목회하는 가정에서 성장하여 그분 역시 교회사랑은 누구 못지않게 열정적이었다. 교회찬양대 음악 실력이 수준급이었다.
드디어 교회 창립예배일이었다. 첫 예배에 모인 한인은 약 30여 명으로, 그날은 각자 준비해온 음식으로 식사를 대신했다. 변 목사의 설교 내용은,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가 상하관계라면, 교인과 교인들의 관계는 수평 관계이므로 상하 수평이 하나 되면 예수님 십자가의 본모습이라는 것이었다. 호주교회에서는 알아듣지도 못하던 설교를 우리말로 들으니 살 것만 같았고, 속이 확 트이는 듯 이루 말할 수 없이 기뻤다.
매주 참석하는 교인 숫자가 늘어나
첫 예배 참석자들 신분을 보니, 전체 교인 수의 절반 정도는 한국에서 정식으로 이민 온 사람들이었고, 나머지 절반은 월남에서 관광비자로 들어온 무작정 거주자들과 불법체류자들이었다. 초대 교회에서 싹튼 사랑일까? 만나면 서로 떨어지지 않을 만큼 가까워져서 매주 참석하는 교인 숫자가 급격히 늘어나기 시작했다. 자연히 찬양대까지 조직하게 되었다. 교인 중에는 한국 교회의 찬양대에서 활동 경험이 있는 사람, 수준급 반주자, 기도 힘이 있는 사람 등 그들의 과거 실력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제는 아내도 교회 반주를 다른 사람에게 일임하고 찬양대원으로 활동했다. 찬양대 지휘는 미스터 김이 맡았다. 이제는 교회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된 셈이다.
그런데 그 시기에 호주교회 200년 역사상 가장 큰 종교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장로교회, 회중교회단, 감리교단이 합하여 이른바, 연합교회(Uniting Chuch)로 가자는 교회 연합운동이었다.
이 대열에 가장 앞장서서 진두지휘하는 분이 바로 변조은 목사였다. 호주 연합교회 운동에 대한 기본적인 흐름을 한인들은 알 수가 없었다. 대강 이해하는 바로는, 그 연합운동에 대하여 호주 장로교단에서는 크게 두 그룹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변 목사가 주축이 된 통합파와 그대로 장로교단을 지키자는 보존파였다.
교회 연합운동은 교회뿐만 아니라 기독교가 국교인 호주 전체가 흔들리는 일종의 전쟁으로, 사회분위기가 상당히 시끄러웠다. 그래도 호주교회의 그런 움직임을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은, 전에 호주 장로교회인 맨리(Manly) 교회에 다니며 찬반 투표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참석했던 호주교회에서의 투표결과는 60%가 호주연합교회 운동에 반대, 찬성 40%였던 걸로 봐서 호주 전역에 있는 장로교회의 약 50%가 연합교회에 소속되었던 것이다. 그런 소용돌이 속에서도 우리 한인교회는 나날이 성장했다. 사용 중이던 예배당이 모자랄 정도로 교인들로 꽉꽉 찼다. 주로 불법체류 한인들이었고, 여기에 변 목사의 적극적인 고통 상담이 큰 몫을 했다.
변 목사는 가끔 지방출장과 해외출장이 있을 때 몇 주일씩 강대상을 비우기도 했는데, 그럴 때 일요일 설교를 대신할 목사님을 모셔오는 일은 교회 서기인 내 몫이었다. 그때마다 나와 가끔 연락을 주고받아온 구의두(크래프트, Craft) 목사에게 설교를 부탁했다. 한국에서 선교사 일을 마치고 호주에 귀국한 후부터는 목회활동을 하지 않고 있었지만, 설교를 부탁하면 거절하지 않았다. 구 목사는 한인교회에서 상당히 먼 거리인 체스터힐(Chesterhill)에 살고 있었지만, 언제든 내 부탁을 기꺼이 들어주었다.
변조은 목사보다 한국어 능력이 훨씬 약해서 겨우 구사하는 정도라, 구 목사가 한국어 설교는 사절했다. 구 목사는 설교지를 미리 나한테 주며 통역해달라고 했다. 내 통역보다 모든 면에서 더 실력이 좋은 Y 교수가 있었지만, 굳이 나한테 부탁한 이유는 그 교수를 개인적으로 모르는 데다, 내 영어수준 정도로도 자기의 설교 통역은 가능할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특히 가장 큰 이유는 예배설교 통역은 경제학 통역이 아니라는 점 때문이었다. 사실, Y 교수의 통역을 사양한 이유가 바로 그 점이라는 것을 본인이 직접 밝힌 것은 본받을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나는 어떻게 구 목사의 설교 통역을 무난하게 할 수 있었을까? 기본적으로 아내의 풍부한 성경지식과 내 쥐꼬리만 한 성경지식의 합작품이었다. 몇 번이나 고치고 다듬어서 구 목사의 설교 내용에 가깝게 노력한 결과일 것이다.
구 목사의 설교 통역은 그런대로 잘 진행되었다. 교회 서기는 교회 회의기록, 교회의 작은 광고, 매주 예배 주보 만드는 일, 교인들에게 연락하는 일, 우리가 소속되어 있는 노회에 참석하는 일, 변 목사 출장 시, 구 목사 설교 통역 등의 일을 해야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