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전하던 교회에 생긴 갈등
한인 장로교회는 나날이 부흥했고, 교인들의 관계도 가족처럼 가까워졌으며 호주장로교단과의 관계도 겉으로는 큰 문제가 없어 보였다. 그러나 세상사 호사다마라 하지 않던가! 순풍에 돛 단 듯하던 배가 이상하게 흔들리는 것을 감지했다. 교회 내에서 교인들 간에 편이 갈리는 느낌이 들었다. 교회 창립할 때부터 오랫동안 함께 해온 교인들과 새로 등록하는 교인들 사이에 거리가 생기기 시작했고, 새 교인에게서 매사 H 목사를 옹호하는 발언들이 비공개적으로 들려오기 시작했다. 말하자면, 구포(교회 창립 교인) 대 신포(새로 등록한 교인과 불법체류자) 간의 의견 대립이 여기저기서 불거졌다.
교회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두 개 그룹의 움직임이 필요할 수도 있지만, 두 그룹 간의 불편한 언행이 노골화되는 게 문제였다. 특히, 교회 직분 선거 시 운영 책임자 뽑는 일이 마치 일반 회사 조직에서 감투 쓰는 것과 흡사한 분위기였다. 그런 직분을 임명하는 H 목사의 태도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교회 창립 때부터 온갖 정성을 다해 교회 일을 해온 교인들의 직분이 차츰차츰 새로 등록하는 교인에게로 넘어가고 있었다. 목회할 때도 본인의 계획대로 하고, 설교 중 가끔씩 교회 내분과 관련된 얘기를 꺼내 교인들의 얼굴을 찌푸리게 했다.
내가 맡고 있던 교회 서기(Clerk)는, 한국 교회의 당회 또는 운영기구에서 중간 역할을 하는 직분이었다. 목회자와 교회 구성원 간의 가교 구실을 해야 하는 중요한 일이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우리 교회와 호주 장로교단과의 사이에서 다리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었다.
한국에서 온 H 목사는 영어 때문에 더더욱 어려움이 있을 터였다. 날이 갈수록 호주 장로교단과 노회에서 내려오는 협조문이나 지침서를 준수할 일들이 많아졌다. 그중에서도 우리 교회가 속해 있는 노회의 정기회의에 H 목사가 꼭 참석해야 했고, 서기인 나도 꼭 동행할 수밖에 없었다.
H 목사는 회의에 참석하여 우리 교회의 여러 현안을 일단 보고하면서 문제점은 없는지, 만약 문제가 있다면 교단에서 도와줄 수 있는지 등을 상세히 설명해야 했다. H 목사가 우리 교회 담임 목사인 이상 영어회화에 어려움이 있더라도 발표는 해야 했다. 영어에 애로가 있고, 호주 목사들과의 대화가 어려워도 호주 장로교단의 시스템을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궁극적으로는 H목사와 서기인 나의 대립 구도
나는 중간에서 통역하는 정도로 H 목사를 도와드렸다. 호주 장로교단에서 특별하고도 철저하게 교회재정 관리를 지도하는 것을 보니, 한국의 교회들이 자체에서 돈을 관리하는 제도와는 달랐다.
호주 장로교단에서 특별히 관리한 것 중의 하나는 교단 산하 목회자들에 대한 연간 사례비 책정이었다. 사례비(Stipend)의 내역은 월급(현금), 사택(현물), 자녀교육비, 교회 활동비인데, 이를 합쳐서 해마다 연 사례비를 책정하여 산하교회에 지침을 내린다. 일반인들의 연간 수입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생활과 목회활동에 불편하지 않은 액수다. 호주 장로교회 교단 소속의 H 목사도 예외는 아니었고, 기타 호주 장로교단 소속 목사들의 수입 범위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한인 장로교회가 부흥하면 재정도 튼튼해지면서 호주 장로교단에서 요청하는 선교비 부담금도 늘어나기 마련이다. 문제는 여기서부터였다. 한인 장로교회의 일부 세력(신포)과 H 목사는 호주 장로교단에서 제시하는 재정 운영(특히, 사례비와 자녀교육비) 지침을 떠나 한인 장로교회 자체에서 독단적으로 재정을 관리해야 한다는 속내를 비치기 시작했다. 한국에서는 교회에서 독자적으로 재정을 관리하고, 사례금에는 세금이 없으며, 목사한테 곡물까지도 바친다고 간접적으로 전하곤 했다.
H 목사의 뜻을 고스란히 반영시키는 것임을 쉽게 알 수 있었다. 기업식으로 하자면, 회사 수입이 많아지는 만큼 사장월급도 올라야 한다는 논리였다. 시간이 갈수록 그 목소리가 높아졌다. 우리가 독자적으로 할 수 없는 것은 상식적인 일임에도 교회가 또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호주 장로교단 산하 교회인데 무엇을 어떻게 독자적으로 운영하겠다는 건지 나는 그를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시종 ‘우리 교회는 호주 장로교단 산하의 교회’라는 의견을 굽히지 않았다. 내 반응이 H 목사와 그를 따르는 그룹에게는 좋을 리가 없었다. 그들의 눈에 가시 역할을 하는 사람은 바로 교회 서기 일을 하는 나였다.
교회 일에 손을 떼려고 했지만 아내가 만류
사태가 점점 노골적으로 번져 갔다. H 목사 일행의 주장은 간단했다. 우리 교회이고 우리 재정이므로 모든 것을 우리가 운영하면 된다고 교인들에게 계속 알리고 있었다. 호주 장로교단의 지침을 모르는 교인들일수록 전적으로 H 목사의 주장을 지지하는 태도였다.
어찌 보면, 이민 가서 호주 사회와 호주인들에게 시달리며 사는 것에 대한 불만의 표출이기도 했다. 외국에서 사는 한국인들은 모두 애국자가 된다고 하듯, 호주 장로교단의 지배에서 벗어나자는 한인 장로교회 교인들이 여기저기서 나타났다. 그 중심에서 H 목사가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었고, 교회 내에서 감투라는 것을 쓰고 있는 그의 추종세력이 더욱 여론을 몰아가고 있었다.
교회 내에서 두 개 그룹이 형성되어 대립하는 상황에서는 하나님 말씀보다 상호 간의 감정 대립만 커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일요일 설교에서 가끔 이상한 충동발언을 하는 날은, 그 한 주 동안 교인들의 갈등에 불을 지르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그런 분위기에서 더욱 힘들었던 점은, 전혀 근거 없는 상호 간의 모략중상과 그에 따른 해명, 반박, 감정 노출 등이 악순환 되며 시간과 돈이 드는 소모 전쟁으로 이어지는 일이었다.
일요일 예배가 끝나면 같은 편끼리 모여 시간을 보내야 했고, 서로 온갖 악담을 내뱉으며 성토하기 일쑤였다. 언젠가는 그런 분위기 속에서 새벽 4시까지 중노동을 한 적도 있다. 부모님까지 모시고 사는 나로서는 또 하나의 정신적, 육체적 시련이 아닐 수 없었다. 게다가 교회 운영의 중심에 서 있던 내 위치도 힘에 부치기 시작했다.
교회 일에서 완전히 손을 떼려고 할 때마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께서 판단하신다’는 아내의 의견이 철저히 막아섰고, 호주 장로교단과의 깊은 관계도 있었으며, 나 혼자 하기 싫다고 교회 일을 던져버릴 수도 없는 안타까운 시간이 이어졌다. 그러면서 교회의 내분은 더욱 노골적인 분쟁으로 이어졌다. H 목사는 그의 추종자들을 여러모로 감쌌다.
그 사이에 한국의 행남사에서 편지 한 통을 보내왔다. 행남사는 앞으로 호주 시장에 진출할 계획이 있다는 것과 K.C 회사의 쿠퍼 사장이 한국에 오면 좋겠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행남사에서 온 편지를 쿠퍼 사장에게 전달했고, 일단 우리는 한국을 방문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호주 노동법에는 3개월마다 1주일씩 휴가를 받을 수가 있다. 나는 ACI 연구소에서 상당 기간 재직했기 때문에 일주일 휴가를 쉽게 신청했다. 쿠퍼 사장이 나의 한국 체류 경비와 왕복 항공권을 부담하기로 쾌히 승낙했으며, 우리는 한국으로 가는 일정을 잡았다.
아! 한국을 떠난 지 7여 년 만이었다. 무언가 한 번 해보겠다는 덤벼 정신으로 막연히 떠난 7년이 70년만큼이나 그리운 고국이었다. 그야말로 감개무량한 순간이었다. 행남사에서 다시 전화가 왔다. 한국 체류 비용은 행남사에서 모두 부담하겠으니 부담 없이 다녀가라는 것이었다.
나는 빈손으로 한국으로 가게 되었다. 서울도 서울이지만, 고향 목포에 다녀올 수 있다는 사실이 나를 더욱 흥분시켰다. 내가 한국 방문 일정을 4월쯤으로 잡았던 이유는, 현진이 동생이 태어날 예정일이 5월 중순 이후였기 때문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