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주의가 팽배한 요즘은 “선생과 학생은 있어도 스승과 제자는 없다.”라고 강도 높게 교육의 현실을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이 있다. 선생, 즉 멘토는 여러 가지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그러나 선생이란 주로 학생을 가르치는 사람 또는 성이나 직함 따위에 붙여 남을 높여 이르는 말로 사용된다.
반면 새삼스런 이론의 접근은 아닐지라도 진정한 멘토로서의 스승은 자기를 가르쳐서 인도하는 사람으로서, 때로는 삶의 보호자이며 따뜻한 우정을 나누는 친구라는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 일반적으로 선생한테 배우는 사람을 학생이라 하고 스승의 가르침과 인도를 받는 사람을 제자라고 할 수 있다.
나의 영혼을 흔들어 움직인 은사들
강물처럼 덧없이 흘려보낸 인생의 약 4분의 1세기를 학생으로 보낸 내 삶에는 수많은 선생이 있다. 언제부터라고 꼬집어 언급할 수는 없지만, 나의 영혼을 흔들어 움직인 교사나 교수들을 은사라고 부르는 습관이 생겼다.
그중에서도 내가 대학 4학년 때 “훌륭한 교수가 되려면 연구업적이 좋아야 한다.”는 전응렬 은사의 말씀은 내 일생의 좌우명이 되었다. 내가 공부를 마치고 교수가 된 후에도 전응렬 은사가 돌아가실 때까지 사제 간의 두터운 인간관계를 유지했다는 것은 지금 돌이켜 보면 그저 감사할 일이다.
내 삶의 로드맵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분은 전 연세대학교 경제학 교수셨던 박기혁 은사이시다. 그분과의 인간적인 관계는 1963년 봄에 운명처럼 시작되었다. 그 무렵에 정신적으로 큰 스승이셨던 은사는 경제학과 학과장이셨고, 나는 경제학과 석사과정에 입학한 학생의 신분이었다. 은사는 농업경제학을 전공했고 나는 농촌출신으로 농협에 잠깐 근무한 적이 있었기에 나름대로 가까워지는 계기가 되었다.
내 삶의 로드맵에 큰 영향을 준 박기혁 은사
나는 1964년 일 년 동안 은사의 각별한 배려로 그 밑에서 경제학과 조교 일을 담당했고, 졸업 후에도 상경대 부설 산업경영연구소에서 1년 반 동안 풀타임 연구조교를 하였다. 더욱이 1967년 은사의 소개로 관동대학의 전임강사가 되었을 뿐 아니라, 1968년에는 은사의 사모님 소개로 운명처럼 당신 누님의 딸과 결혼까지 하는 행운마저 얻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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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기혁(1922-1999) / 연세대 상경대학장, 부총장 역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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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부근에 있던 은사의 집에는 항상 많은 대학원생이 드나들었다. 이들로부터 전해들은 바로는 선생은 일본과 미국에서 공부했기 때문에 한국말이 다소 서툴러서, 원고를 정리할 학생이 필요했기 때문에 그랬다는 것이다. 나는 대학원 졸업을 전후해서 3개월 동안 은사 댁에서 숙식하면서 당신의 첫 저서인『농업경제원론』원고를 정리해 드렸다.
책을 출판한 후에 은사는 나에게 경찰관의 월급에 해당한다며 두둑한 돈봉투를 건네주시던 일은 지금도 기억에 남아있다. 내가 미국에 와서 공부를 마치고 교수가 된 후에도 은사가 타계 하실 때까지 끈끈한 사제 간의 관계는 계속되었고, 또 필요할 일이 있을 때는 어려운 부탁도 서슴지 않고 하였으며, 그렇게 삶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셨다.
내가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
그뿐만 아니라, 은사는 내가 앞으로 교수가 되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삶의 잠언과 교수의 주변에서 일어날 일들을 해결할 수 있는 능력과 지혜도 일깨워주었다. 이처럼 인생의 진정한 멘토로, 독실한 기독 교신자였던 은사는 내가 성실하고 선한 마음으로 살아가며 모범적인 지식인으로 성숙할 수 있도록 늘 깨우침을 허락하신 분이셨다.
그 분의 교훈 중에 제일은 “내가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성서의 황금률이었다. 나는 이 황금률을 실천하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그래도 노력하려고 애쓰고 땀 흘린 결과로 나의 잠재능력보다 성공적인 인생을 살게 된 것은 바로 선생의 가르침에서 비롯된 것 이라고 말하고 싶다.
서로가 하나같이 분망한 삶으로 인하여 나와 은사와의 끈끈한 사제 간의 친밀한 관계는 다소 농도가 얕아지기는 했지만, 그분의 딸 박에스터(샌마코스 캘리포니아주립대 강은철 재무관리 교수의 부인)와 그분의 아들인 박폴(크라이슬러 근무)과 박용석(연세대 경영학 교수)과의 소중한 인연이 맺어져 지금도 따뜻한 인간적인 관계가 유지되고 있다.
에스터와 폴(한국이름 성석)은 미국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이름도 미국 이름이고, 고등학교 때부터 미국에 살아온 전형적인 1.5세대이다. 막내 용석은 한국에서 태어났기에 이름도 한국명이고 또 현재 한국에서 거주하고 있다. 엄격하게 가족관계를 따지면 나는 이들의 4촌 매부가 되지만, 그들과 그들의 배우자들은 지금도 나를 석희 아저씨라고 친근하게 부르며 지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