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은 거래중심의 사회이고, 동양은 관계중심의 사회
내가 참으로 어렵게 미국에서 공부할 무렵, 경영학과 교수가 “서양은 거래중심의 사회이고, 동양은 관계중심의 사회”라는 말을 종종 들려주었는데, 아직도 그 일깨움은 기억할 정도로 인상적이었다.
미국은 원래 사제지간을 비롯한 모든 관계가 거래중심이기에, 필요할 때만 서로 간에 연락을 주고받게 되어 어떤 강의 과목은 종강하고 나면 사제 간의 관계도 그것으로 끝난다. 그러나 한국사회에서 모든 인간관계, 특히 선생과 제자 간의 관계는 관계중심이기 때문에 보편적으로 상당히 오랜 시간 지속된다.
점차 한국도 세계화의 물결에 휘말려 서양화되면서 사제지간의 관계가 옛날만큼 그렇게 뜨거운 가슴을 나누듯 두텁지 못하고 틈새가 벌어지고 있는 현상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미국사회에서 볼 때는 신기하리만큼 아직도 한국에서는 사제지간의 관계가 친밀하게 지속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글을 쓰면서 한국과 미국에서 나에게 배운 학생들을 대충 머릿속에서 헤아려 보았더니 통계적으로는 수천 명에 이른다. 물론 내가 가르친 대부분의 학생은 미국인이다. 취직이나 공부를 계속하기 위해 나의 추천서를 받아간 사람도 거의 모두 내 과목을 택했던 미국 사람들이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자면 미국에서 교직생활을 40년 남짓 하는 동안에 미국학생들로부터 고맙다는 인사나, 그 흔한 크리스마스카드 한 장을 받아보지 못했다. 이처럼 어디까지나 미국은 거래 중심의 사회이기에 이 같은 현상에 예민하게 반응하거나 놀랄 필요는 없다.
문화적인 차별화에서 오는 현상이지만, 그와는 반대로 어디에서나 내 과목을 택한 한국 사람들은 가끔은 연락을 주고받거나 또 수십 년이 지난 뒤에 정말 우연한 만남에서도 예기치 못할 정도의 과분한 대우를 하는 경우가 있다. 그중에서도 임광토건의 전 대표이사인 임재원 사장과의 인간적인 친근한 관계는 그렇게 흔치 않을 것이다. 우리들의 사제지간의 관계는 40여 년의 세월이 흘렀는데도 서로를 이해하고 감싸는 따뜻한 정은 변함이 없다는 사실이다.
1980년도 우리 학교 경영학 석사과정을 거쳐 간 한국학생이 30여 명쯤 되는데 임재원 사장도 그중의 한 명이다. 나와 그의 관계는 일반적으로 누구나 택해야 하는 전공필수과목으로 내가 담당한 <기업금융론>을 선택했고, 또 우리 학교에서 공부하는 동안에 내 연구실에 찾아와 한두 번 상담한 것이 전부이다.
사실 임재원 사장이 학생으로 강의를 받는 동안에 내가 특별히 잘해준 것도 없고 또 그에게 특별히 기억할 만큼의 보상이나 우대를 받은 적도 없는, 그저 교수와 제자 간의 단순한 관계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의 지속적인 사제지간의 관계는 4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는 사 실이다.
학생들의 맑은 영혼을 움직일 수 있는 스승
역풍을 가로지르며 바람 속을 질주해온 내 삶을 반추하는 시간대에서 지나쳐온 삶을 잠시 뒤돌아보다 가끔 그와의 끈끈한 인간관계가 왜 이렇게나마 계속되는가를 생각해보기도 하지만, 기억에 오래 남을 일이나 특별한 이유를 발견하지 못한다.
그러나 최소한 존경받는 선생이라면, 학생들의 사상을 바꾸거나 그들의 맑은 영혼을 움직일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모름지기 내가 임 사장의 발상을 전환시켰거나 또 그의 사상과 영혼을 움직였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교사들은 자기의 직업을 천직으로 알고 미래의 꿈인 학생들을 열정적으로 가르치고 지도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대학의 지도교수들은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가끔 학생들의 인생을 바꾸는 경우가 있다. 만날 때마다 임재원 사장은 우리 학교에서 보낸 3년 동안이 자기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반면, 또 외로웠던 시기라고 독백처럼 되뇌고 있다.
그는 문화와 언어가 다른 미국 땅에서 같은 피가 흐르는 조선인의 혼이 간직된 한국교수를 만났기 때문에 나를 영원한 스승으로 대하였는지, 아니면 내가 그의 의식을 전환하는 데 작게나마 영향을 미쳤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여하간 나는 그와 같이 신뢰성이 깊은 좋은 제자를 만날 수 있었다는 것이 행복이고 큰 보람이라고 생각한다. 어디까지나 좋은 사제지간이란 오랜 포도주와 같이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그 맛과 향기를 결코 잃지 않는다는 것이다.
신뢰성 깊은 제자를 만났다는 것은 행복한 일
임광토건은 국내 건설면허 1호 업체로 시공능력 40위의 중견 건설사이다. 임광토건은 1927년 5월 창업주 임헌록 씨가 일제치하에서 한국인으로는 처음 건설업 면허를 취득해 설립한 임공무소를 모태로 한 유서 깊은 회사다. 임씨의 아들 임광수(송곡) 명예회장이 물려받아 1956년 임광토건으로 사명을 바꾸고 도로, 항만, 지하철 등 공 공 토목공사 위주로 사업을 해왔다.
지난 10여 년 동안은 3세 경영자인 임재원 대표가 실질적인 운영권을 행사해왔다. 임광토건은 창업이래 90여 년간을 끊임없이 경영혁신과 기술개발로 기업역량을 키워왔으며, 건실한 성장경험을 바탕으로 한국의 건설역사를 선도해왔다. 이러한 저력을 바탕으로 새로운 경영혁신전략을 수립해 우수한 인재양성, 미래전략산업의 연구개발 및 녹색성장을 미래의 신성장 동력으로 발전시키는 데 주력해왔다.
개인사업으로 분주한 가운데서도 송곡의 모교에 대한 사랑과 헌신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송곡은 모교 서울공대 기계공학과 동창회장(1976~1985)을 시작으로 공대 동창회장(1998~2002)을 거쳐 2002년부터 2014년까지 총동창회회장을 맡아 거의 40년 동안 동창회 일에 봉사했다.
2011년에는 새 동창회관(장학빌딩)을 세워 동창회 보유재산 1천억 시대를 구축, 서울대 동창회 중흥의 원년을 열었다. 특히 세간에 떠들썩했던 서울대 폐지론을 무산시켰고, 역사기념관 건립, 120사 편찬, 장학연구지원사업 등을 위해 동분서주해왔다.
|
|
| ▲ 2011년 임광수 임광토건 회장의 출자로 건립한 장학빌딩 준공식 / 왼쪽부터 정계영 이사, 김인규 부회장, 홍성대 부회장, 이기준 전 총장, 구평회 고문, 김재순 명예회장, 오연천 총장, 임광수 회장, 권이혁 전 총장, 이길여 부회장, 이현재 전 총장, 조완규 전 총장, 김상하 고문, 정석규 전 이사, 손일근 상임부회장 [사진출처 : 서울대총동창회]. |
|
임광수 명예회장이야말로 서울대를 위해 태어났고 서울대가 살아야 나라가 산다는 신념으로 일생을 살아온 사람이다. 동문들의 후원금을 모아 마포에 지은 장학빌딩은 서울대의 장학연구사업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이 건물에서 생기는 연 40억 중 25억 원은 장학금으로 사용되며 나머지 15억 원은 학교발전기금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주택경기 침체로 인한 매출권 회수 지연과 프로젝트파이낸싱(P.F)에 대한 연대보증으로 임광토건은 2011년에 기업 회생절차를 개시했고 2012년에 기업 회생계획인가를 받았다. 임광토건이 희생절차 개시에 들어감에 따라 임재원 사장은 자연히 사장을 사임하고 법원에서 기존 공동대표를 사장으로 임명했다. 그리고 2014년에는 상호도 임광토건 주식회사에서 글로웨이 주식회사로 변경되었다. 몹시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임재원 사장은 임광토건에서 물러났지만 새로 설립한 임광개발 주식회사를 통해서 재기를 다짐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