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나는 관동대학에서 4년간만 근무했지만, 내 일생에 가장 큰 변화가 있었던 때였다. 꿈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 꿈을 이룰 수 있는 기회가 두세 번쯤 있게 마련이다. 그리고 항상 준비된 사람들은 주어진 기회를 잘 이용해서 꿈을 이룰 수도 있지만, 준비가 안 된 사람들은 그 기회를 놓치기 마련이다. 까닭에 오마르 이븐은 우리 인생 에 다시 돌이킬 수 없는 네 가지를 “뱉어버린 말, 놓쳐버린 기회, 흘려버린 시간, 쏘아버린 화살”로 단정을 짓고 있는 것이다.
두 번의 미국유학 기회가 있었으나 준비 소홀로 놓쳐
사실 나에게도 장학금으로 미국유학을 할 기회가 두 번이나 있었지만, 준비가 안 된 탓에 다 놓쳤고, 그나마 관동대학에서 4년 동안 미국유학 준비를 한 관계로 고학이긴 하지만 내 꿈을 이룰 수가 있었다.
1965년 연세대학교 상경대학의 박기혁 교수와 한기춘 교수, 두 분이 미국 AID로부터 한국농지개혁에 대한 연구를 위해 자금을 지원 받았다. 상경대학부속의 산업경영연구소 장소가 협소해서 서울역 앞에 사무소를 따로 얻어야 했을 정도였고, 여러 명의 직원과 조교를 채용해야 했다. 일 년 반 동안 계속된 이 연구에 연구조교로 참가한 나에게 이 연구 작업은 굉장히 매력적이었다. 그 이유는 내가 농촌출신이었고 대학원 전공도 농업경제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미국에 가서 농업경제를 공부해서 한국농촌발전에 이바지하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을 무렵이었다.
나는 1965년 봄부터 1966년 가을까지 1년 반 동안의 이 연구 작업이 계속되는 동안 연구조교로 일할 때, 전 장학금으로 미국에 유학할 기회가 두 번 있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대학성적도 좋지 않았고 영어실력이 약해서 그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첫 번째 기회는 1960년대 중엽 경제개발 도상국가들의 고등교육 육성사업의 하나로 미국 AID에서 후진국의 우수한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어 미국에서 공부시킬 때였다. 경제학박사학위를 받을 때까지 장학금을 주고 그 조 건으로 공부가 끝난 후에는 추천해준 대학에서 교수생활을 해야 한다는 단서조항이 따랐다.
이때 연세대학교에는 4명이 장학금을 받게 되어 있었다. 장학생 선발은 박기혁 교수와 한기춘 교수가 주축이 되었기에 나는 개인적인 면에서는 상당이 유리한 입장이었다. 다행히 나도 이 장학금의 해당자로 원래 추천 군(群)에는 포함되었으나 영어실력이 약하여 탈락하고 말았다.
또 두 번째 기회는 농지개혁연구 작업이 거의 끝날 무렵이었다. AID로부터 나온 연구자금이었기 때문에 박 교수와 한 교수는 AID한국 지부의 미국직원들과 자주 접촉을 했고 연구보고서는 영어와 한국어로 작성되었다. 박 교수는 연구가 끝날 무렵 “장학금으로 미국유학 갈 기회가 생겨서 주선했으니 잘 준비해서 AID한국지부장과 직접 만나보라.”고 했다.
그때까지 나는 미국인과 한 번도 대화를 한 적이 없었고 전체적으로 영어실력이 좋지 않았는데 듣기와 말하기가 특히 부족했다. 며칠 동안 예상 질문과 해답을 만들어서 열심히 암기해서 인터뷰를 시작했는데 이름과 전공 등 몇 가지만 알아듣고 대답했을 뿐 다른 질문은 도저히 알아들을 수도 없었다. 알아들을 수 없었던 질문을 할 때마다 나는 그 지부장의 질문은 무시하고 내가 사전에 준비한 것을 하나씩 답할 수밖에 없었다.
지부장과 내가 인터뷰하는 것을 가까운 곳에서 타자하며 우리의 얘기를 엿들은 한국 아가씨 가 멋쩍게 웃으면서 하는 말이 “지부장의 질문에 대답해야지 엉뚱한 얘기를 하면 어떻게 하느냐?”며 핀잔까지 주었다. 결국, 그 아가씨의 통역으로 몇 분은 더 얘기를 하고 나왔지만, 예상대로 영어실력이 부족해서 장학금으로 미국에 유학할 좋은 기회마저 그렇게 놓치고 말았다.
오로지 유학을 위해 관동대학을 선택
농지개혁에 대한 연구가 거의 끝날 무렵인 1966년 여름, 한기춘 교수는 전북대학교 농업경제학 전임강사로, 박기혁 교수는 관동대학 경제학 전임강사로 나를 추천해주었다. 이때만 해도 교수들은 공개 채용보다 친한 친구들 사이의 추천으로 신임교수들을 채용했기에 나는 어느 대학이든 선택해서 갈 수가 있었다.
전북대학은 관동대학에 비해 모든 조건이 좋아서 주위의 사람들이 전북대학에 가라고 권했으며 또 모두들 그렇게 할 것이라 믿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전북대학이든 관동대학이든 오래 근무할 생각이 없었고 미국에 갈 때까지 만 근무할 임시직장으로 생각했기에 미국유학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관동대학을 선택한 것은 당연지사였다.
1966년 관동대학에 재직하면서 나는 영어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하였다. 그 당시 강릉은 거주 인구도 적었고 그 부근에는 미국 선교사들 외에도 미군들과 미국 평화봉사단원 등으로 비교적 많은 미국사람이 살고 있어서 영어공부 하기에는 아주 적합한 곳이었다. 미국 선교사들이 영어로 강의하고 한국 사람이 통역하는 통역강의에 내가 출석한 시간은 내 강의 시간보다 많았다.
영어공부에 인생을 걸다
저녁에는 미군들과 평화봉사단이 자주 드나들던 다방에 가서 살다시피 하면서 그들과 대화도 나누고 가끔은 유학정보도 수집했다. 주말에는 선교사들과 평화봉사단원들이 무료로 주민을 대상으로 가르쳤던 회화강습에도 참석했다. 그리고 경제원론 강의는 한국말로 했지만, 교과서는 영어책을 채택했으며 다른 교수가 가르치던 상업영어도 자청해서 내가 가르칠 수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관동대학에서 몇 년 동안 근무한 것은 생활수단이나 학생들을 가르치기보다는 미국 갈 유학의 준비기간이었다고 하는 게 솔직한 나의 고백이다.
다방에서 자주 만난 평화봉사단원 얘기로는 한국에서도 곧 사양산업이 될 농업분야의 공부보다는 경영학을 공부해보라는 권고를 받았다. 그리고 돈도 없고 실력도 별로 없다는 나의 얘기를 들은 그들은 고학하기 좋고 여러 종류의 학교가 있는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몇 개 대학들을 소개해주었다.
마침 이때쯤 조교수로 승진되어 조교수 이상의 대학교수들에게 부여한 문교부 유학시험은 면제를 받았고,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페퍼다인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다. 그때는 모든 유학에 필요한 시험이 서울에서만 시행되었다. 따라서 문교부 유학영어시험뿐만 아니라 미국 대학에서 요구한 TOFL(Test of English as Foreign Language), 대학원 적성검사시험 등을 보느라 서울을 너무 자주 왕래하여, 당시 결혼 초기인 아내로부터 월급은 쥐꼬리만큼 벌어오면서 그마저도 대부분을 철도청에 갖다 준다는 핀잔을 종종 듣기도 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