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장의 건망증으로 연기된 나의 은퇴
미국은 대학교수들의 법정퇴직 연령이 70세였던 것을 1994년에 폐지를 했다. 그 이후에 연구, 강의, 봉사를 게을리 하는 노교수들이 증가함에 따라 많은 대학들이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으며 골치를 썩이고 있다. 그 같은 연유로 우리 대학을 비롯해 일부 대학에서 는 노교수들을 은퇴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단계적 은퇴(phase-out retirement)라는 제도를 도입하게 되었다.
우리 대학의 경우 근무를 오래 한 노교수들이 단계적 은퇴를 신청하면 강의는 3분의 2, 또는 절반만 해도 연봉은 강의에 비해서 훨씬 많은 상황이었다. 그러나 단계적 은퇴를 신청하면 5년 이내에 은퇴해야 한다는 조건이 첨가되었다. 나도 이 제도가 도입된 지 얼마 안 된 2001년에 아내와도 상의 없이 단계적 은퇴신청서를 작성해서 학장에게 제출하였다.
그리고 2002년에 은퇴기념으로 연세대학교 국제하계 대학에 장학금을 서둘러 만들어놓기까지 하였다. 마감 일자가 지난 2002년 초에 갑자기 허망한 생각이 들고 북한연구를 하고 싶은 강한 의욕이 생겨 단계적 은퇴를 신청한 것을 뒤늦게나마 후회하게 되었다. 이 제도의 설명서에 의하면 학사담당 부총장으로부터 내 신청서에 대한 회답 일자는 이미 지난 상태였다.
학장의 건망증으로 만기 일이 지났는데도 내 서류는 학장의 서랍 속에서 그대로 잠자고 있었으니 대학 측에서 행정적인 조치가 이루어질 턱이 없었다. 물론 그 서류를 학장한테 반납을 받아 연유야 어떠하든 찢어버리게 되었다. 불 행 중 다행인지는 몰라도 만약 학장의 행정적인 조치가 그대로 이루어졌다면 나는 70세가 되는 2007년에 교수직을 은퇴했을 것이고, 북한연구는 영원히 빛을 볼 수 없었을 것이다.
대학교수들과 건망증
미국에서 교수들이 어떤 약속을 잊어버릴 때, “You are an absent-minded professor”라는 말을 종종 듣게 된다. 사실 이 말은 일종의 잘 알려진 속담이지만, 건망증이 있는 교수 또는 멍 때리는 교수라는 것으로 일반적으로 교육문제에 너무 집중한 결과 자신의 주변이나 약속을 잊어버리는 교수를 일컫는다.
이 말은 자신의 세계에 너무 몰두한 나머지 다른 일들을 망각하는 사실을 표현할 때도 즐겨 사용된다. 교수들은 연구에 너무나 주의 집중한 나머지 다른 일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것이 일반적 관념이다. 이 관념은 아주 오래된 것으로 고대 그리스의 전기 작가 디오게네스의 “철학자 탈레스는 밤에 하늘만 보고 걷기 때문에 자주 넘어진다.”는 말에서 유래되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아이작 뉴턴, 아담 스미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등과 같은 대학자들도 동시대의 건망증이 심한 학자로 간주되었다.
나는 유년시절부터 건망증이 다소 심한 편이었다. 6남매의 막내로 자랄 때 집안의 모든 잔심부름은 내 몫이었다. 특히 사소한 집안일이 많은 농사철에는 어른들의 주요한 심부름을 무시하거나 가끔 잊어버려 꾸중을 자주 듣기도 했다. 나의 건망증은 성인이 되어서도 계속되었고 나이가 많아짐에 따라 더욱 심해지는 것 같다. 아직도 초등학교나 중학교 때 있었던 일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 반면에, 몇 분 전에 발생했던 사건이나 생각했던 것을 그렇게 까맣게 잊어버리는지 생각해도 모를 일이다.
이러한 건망증은 나이가 들면서 기억력이 떨어지는 자연현상으로 이해하고 크게 신경을 안 쓰려고 하지만 너무 어처구니없는 체험을 통해 치매를 의심할 정도까지 되었다. 나름대로 모든 약속이나 계획한 일들을 잊지 않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고 메모 작성을 습관화한 탓으로 내 건망증이 일상생활에 크게 지장은 주지 않게 되었다.
건망증과 치매
간혹 무엇인가를 자주 잊고 지나칠 때 ‘건망증’이란 말을 떠올린다. 건망증은 의학적 증상은 아니며 뇌에서 여러 가지 일을 할 때 일시적인 과부하가 걸려 무의식적으로 수행한 일이 뇌에 저장되지 않는 상태를 의미한다. 자주 잊어버리기는 하지만 비교적 뇌가 건강한 상태이다. 반면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만큼 심하게 기억력이 떨어지는 경우를 기억장애라고 한다. 특히 다른 사람 대부분이 기억하는 일을 본인만이 기억하지 못할 경우는 건망증보다는 기억장애가 아닌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치매는 기억장애 외에 다른 기능장애(시공간 파악 능력 장애, 판단 능력 장애, 언어장애, 계산 장애 등)를 동반하여 스스로 자신을 돌 볼 수 없을 때를 뜻한다. 건망증을 일으키는 6가지 원인은 다음과 같다. 1) 주의력 부족, 2) 스트레스, 3) 우울증, 4) 적은 사회적 접촉, 5) 질병 및 약물복용, 6) 영양결핍이나 지나친 피로 등이다.
한 번쯤 유념할 건망증에서 탈출하는 10가지 방법은 다음과 같다. 1) 메모를 습관화한다. 2) 여러 번 되풀이하여 기억한다. 3) 오감을 동원한다. 4) 연상해서 기억한다. 5) 소리 내어 말한다. 6) 운동을 한다. 7) 건망증을 심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8) 충분히 잔다. 9) 일을 겹쳐서 하지 않는다. 10) 인테리어는 단순하게 한다.
한편, 현재 치매의 정확한 원인은 알 수 없을뿐더러 또 치매의 치료 방법도 밝혀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들의 위험 요소를 인식하고 있다면 치매를 상당 부분 예방할 수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치매를 일으키는 5가지 요소도 여기에 소개하여 보기로 한다. 1) 나이, 2) 유전, 3) 머리 외상, 4) 심장혈관 질환과 5) 당뇨병 등이다. 아울러 지금까지 논의된 치매를 예방하는 7가지 습관은 다음과 같다. 1) 평소에 자질구레한 일들을 하고 운동을 하라, 2) 두 가지 언어를 말하라, 3) 커큐민(curcumin)을 먹어라, 4) 생선과 견과류를 먹어라, 5) 녹차를 마셔라, 6) 퍼즐 놀이를 하라 7) 많이 걸어라 등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