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와 의사전달 방법
인간이 사회생활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의사소통이 필수적인 요건이다. 언어에는 생명력이 있기에 의사소통을 통해 사람들은 관계를 형성하고, 사고, 관념, 감정요구, 경험 등을 수시로 교환하여야 한다.
의사소통을 원활하게 할 수 없는 사람은 사회생활은 물론 일상생활에도 어려움을 겪게 되고 심지어는 사회로부터 고립되어 평범한 인간관계를 유지할 수 없다. 까닭에 우리가 살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것은 의사전달이다. 의사전달은 의심할 여지도 없이 교육이나, 직장생활이나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터득해야 할 가장 중요한 기술이다.
의사전달에는 ‘읽기, 듣기, 말하기 및 쓰기’ 네 가지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대부분의 사람은 의식이 깨어있는 시간의 3분의 2내지 4분의 3 정도를 이 네 가지 의사전달 하는 데 소비하고 있다. 석기시대부터 지혜시대에 이르기까지 사유의 실체인 사람들은 이 4가지 의사전달 방법으로 서로 소통하고 정보를 교환한다.
그러나 정보기술의 발달로 컴퓨터, 아이폰 등의 다양한 의사소통 보조기구가 출현하면서 우리들의 의사소통은 훨씬 간편하고 쉬워졌다. 나 또한 이 같은 보완, 대체의사 소통기구로 큰 혜택을 누리는 사람 중의 한 사람이다. 어쩌면 나는 시청각 보조기구의 혜택으로 80의 고령에도 풀타임교수의 역할을 담당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듣기, 말하기, 읽기 및 쓰기의 순서로 의사전달 방법을 배운다. 사실 외국어를 배울 때도 이 순서로 의사전달 방법을 배우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따라서 많은 비영어권 나라들이 국제어로 되어 있는 영어의 조기교육을 강조하는 것은 일리가 있다. 나는 영어를 배울 때, 의사전달 방법의 순서를 거꾸로 배워 미국유학 올 때나 교수가 되고 난 후에도 많은 애로를 감당하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나의 영어발음을 애써 콩글리시라고 변명하지 않더라도 옛날이나 지금이나 나쁜 편이다. 핑계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영어발음이 나쁜 이유는 중학교 1학년 때 영어를 지리교사로부터 배웠고, 고1의 월반, 다른 대학 편입, 전과, 대학 3학년 때의 투병생활과 경상도 사투리의 억양 등이 그 요인으로 작용한 탓이기도 하다. 뒷날 대학 4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영어공부를 시작했을 때도 주로 읽기의 기초라 할 수 있는 단어 외우기에만 주력했기에 다른 3가지 의사전달 방법이 결코 좋을 수가 없었다.
학위과정이 끝나기 몇 년 전에 대학 강단에 설 기회가 있었는데, 당시의 영어발음이 좋지 않아서 학생들한테 많은 곤욕을 치른 적이 있다. 난생처음으로 내 영어발음이 상당히 나쁘다는 것을 인정하고 언어학과의 도움으로 한국인들이 구별하기가 곤란한 r과 l, b와 v, g(j)와 z, 그리고 비교적 긴 단어의 악센트 등을 약 6개월 동안 중점적으로 공부하고 난 후에야 학생들의 불평이 점차로 줄었다.
그래도 몇 년 전까지 학생들의 평가를 보면 ‘김 교수의 영어 발음을 잘 이해하지 못해 좋지 못한 학점을 받았다.’고 불평하는 학생들이 가끔 있었다. 그러나 2012년부터 파워포인트 슬라이드를 학습도구로 사용하며 강의를 시작한 이후 이 같은 불평은 사라지게 되었다. 다시 말하면 정보기술의 하나인 파워포인트 슬라이드를 사용하기로 한 지혜로 내 나쁜 영어발음을 극복할 수 있었다.
혹여 어떤 사람들은 교사와 교수뿐만 아니라 크고 작은 회의, 각종 학술대회, 학생들의 발표 등에서 수년 동안 사용되어 온 단순한 학습보조기구인 파워포인트를 겨우 2012년에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을 지혜라고까지 할 수 있는지 의문을 제기할 것이다. 그러나 내 나이에 비해서 너무 많은 첨단 의사소통 수단과 방법이 급속히 등장했기에 파워포인트와 같은 비교적 쉬운 보완수단도 사용하기가 무척 어려운 것으로 판단하여 사용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기실 나로서는 강의할 때 파워포인트를 사용하기로 한 것은 상당히 큰 결단이었을 뿐더러 이 같은 노력과 학습 변형이 나의 영어발음 때문에 고생하던 학생들의 문제를 하루아침에 해결할 것이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교육의 미래: 온라인 강의와 강의실 수업
나이가 70세를 지나면서 소음성난청에 노인성난청까지 추가되면서 TV나 라디오, 그리고 소규모 회의 등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얼굴을 맞대고 하는 대화도 알아듣기 힘들 정도가 되었다. 따라서 강의시간에 학생들과 토론하는 것을 70여 세 무렵에 포기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더구나 강의시간에 간단한 학생들의 질문도 못 알아들어서 학생들의 불평이 생기면서 나는 교수생활에 점차로 회의를 느끼고 은퇴를 여러 번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특히 시험시간에 학생들의 질문을 이해할 수 없게 되는 것은 가장 어려운 고통이었다. 왜냐하면, 그들의 장래를 좌우할 성적 평가가 교수의 난청으로 나쁘게 나온다면 내 자신이 학생들에게 죄의식을 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의 이러한 고통을 안 동료들은 몇 년 전부터 우리 학교에서 사용해온 블랙보드(Blackboard)라는 소프트웨어를 통해서 온라인강의를 추천했지만, 정보기술의 초보지식밖에 없는 나로서는 불가능한 것으로 알고 무시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 학교의 정보기술학과에서는 이 교육 소프트웨어를 2005년에 구입하고 교직원들을 상대로 그 사용법을 그룹 및 개인지도를 수없이 했지만, 나는 한 번도 그 같은 교수법연수교육에 참석한 적이 없었다. 물론 학장이나 학생들한테서 이 소프트웨어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여러 번 불평을 받았지만, 곧 은퇴할 터인데 구태여 그 어려운 소프트웨어를 애써가며 배워야 할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않아서 철저하게 무시하고 말았다.
나는 2013년 봄 학기 때까지 내가 온라인 시험을 보거나 학생들에게 온라인 시험을 실시한 적이 없다. 그러나 2013년 봄 학기에 3과목에서 50명의 학생에게 총 일곱 번의 시험을 온라인으로 치르게 했다.
시험은 클래스시험에서 1시간 반하던 것을 온라인 시험에서 2시간으로 했고 한 강의실에 모여서 똑같은 시간에 치르던 것을 아침 8시부터 밤 9시까지 언제든지 2시간 동안 치르게 하였다. 온라인 시험에서 학생들의 시험성적도 향상되었고 불평하는 학생도 없었고 클래스시험을 요구한 학생도 없었다. 온라인 시험은 물론 학생들이 학교에 출석하여 치를 필요도 없었고 집이든, 기숙사이건, 도서관이건 컴퓨터만 있으면 자기가 원하는 시간에 시험을 칠 수 있었으니 불평을 할 까닭이 없었다.
기실 나에게도 여러 가지 혜택이 있었던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학교에 출강할 필요도 없었고, 온라인시험은 자동으로 채점이 이루어지기에 애써 시험문제 하나하나를 채점할 필요도 없었다. 무엇보다도 시험 때마다 걱정했던 학생들의 질문 또한 받을 필요도 없게 되어 모처럼 마음이 가벼웠다. 계산은 실제로 해보지는 않았지만 총 350개 (50명x7)의 시험을 채점하려면 며칠이 걸릴 것이고, 또 채점한 시험지를 학생들에게 나누어 주면 최소한 몇 명의 학생과는 시비해야 하는 데 그런 고통도 없어졌다.
2013년 가을에 난생처음으로 소위 말하는 하이브리드 형식(온라인강의와 클래스강의 절충안)으로 강의를 했다. 모든 것이 예상외로 잘 되어 클래스강의에서 오는 나의 난청 문제는 대부분 해결되었다.
뿐만 아니라 나에 대한 학생들의 평가도 무척 좋았다. 온라인시험이나 강의도 그렇게 염려했던 것처럼 어려운 것이 아닌데 이 정보기술을 사용할 수 있는 용기와 지혜의 부족으로 쓸데없는 고생을 너무 오랜 시간 겪은 것에는 못내 아쉬움이 남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