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내가 시작한 북한전문 학술 저널인 「North Korean Review」가 미국, 유럽 및 아시아에서 좋은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이 저널은 세계 최초이자 유일의 영문 북한전문 학술저널로서, 지난 2005년 창간호를 발간했다. 세계 각처에서 발행되는 수많은 영어 학술저널이 있지만 왜 북한전문 저널이 없었을까? 세계 유수의 대학과 연구소 등에서도 북한전문 저널을 쉽게 시작할 수 없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때만 해도 이 저널의 성공을 확신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국가적 개념으로의 북한은 규모도 작으며 모든 행태가 단조롭기 짝이 없으므로, 학문적 연구의 가치가 미흡하다는 것이 북한전문 학자들과의 토의를 통해 얻은 결론이다. 후원자도 없었고 북한연구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분야에 종사하는 한국계 교수가 혼자 시작한다는 것이 불가능해 보이는 것은 당연한 처사였을 것이다.
인생을 살아오면서 특별한 실력이나 재능 및 재산 등이 없었던 나는 언어와 풍속이 다른 미국에서 나와 가족이 살아남기 위해 바쁜 생활로 일관했다. 하지만 한 번도 심장에 한국인의 뜨거운 피가 흐르고 있는 내가 한국인이라는 자긍심을 잊은 적은 없다.
물론 바쁜 미국생활 중에서도 한국으로 돌아가지 못한 아쉬움이 종종 나 자신을 괴롭혔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그래서 항상 한국을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하고 있었지만, 내 가족을 희생시켜가면서까지 그런 일을 할 만한 마음의 여유나 사명감이 없었다. 그리고 세 아이의 공부가 끝날 무렵이 되니 현직에서 은퇴할 나이가 되고 말았다
나는 미국에서 숱한 시련을 겪으면서도 나름대로 재미교포 1세로서의 정체성에 대해 늘 고민해 왔다. “나는 과연 어느 나라 사람인가?”라는 물음은 거의 반세기 동안 분열과 갈등의 국가, 민족, 고향을 둘러싸고 내 의식의 주위를 맴돌았다. 지난 2001년 북한연구를 시작해야겠다고 결심했을 때, 주체할 수 없이 가슴 뛰던 그 순간을 나는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은퇴를 포기하고, 처음으로 안식년을 신청했고, 많은 보수를 받고 편집을 맡고 있던 국제경영학저널도 내려놓았다.
이런 나의 행동에 사람들은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다. 하지만 나는 많은 한ㆍ미, 북한전문가들의 멸시도, 관련 연구소들의 비협조도 개의치 않고 오직 북한연구를 위한 일에 집중했다. 모금활동을 추진했고, 사재를 출연하는 것도 서슴지 않았으며, 결과에 염려하지 않고 북한연구를 추진하였다. 이 북한전문 영어저널은 이러한 역경 속에서 탄생할 수 있었다. 돌이켜보면 이 같은 험난한 과정은 오히려 나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는 원동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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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필자가 창간한 North Korean Review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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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하면 나의 북한연구는 각오와 결의로 배수의 진을 쳤기 때문에 탄생할 수 있었다. 이것은 이민기 교수가 얘기한 가두리 기법과 같다. 이 기법은 “하지 말아야 할 일이 있다면 그쪽으로 도망칠 수 있는 퇴로를 차단하고 해야 할 일이 있다면 어쩔 수 없이 그 일을 할 수밖에 없도록 가두리를 설치하자.”라는 말이다.
소설 [노트르담의 꼽추]를 쓴 19세기 프랑스 대문호 빅토르 위고는 한때 유희에 빠져 오랜 시간 글을 쓰지 않다가 어는 날 결심을 한다. 그는 글을 쓸 때면 하인에게 옷을 모두 벗어주고 해가 진 다음에 가져오라고 했다고 한다. 글을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 자기 자신을 통제한 것이다. 우리가 꼭 해야 할 일이 있으면 결심과 약속의 굴레가 필요하며 주변의 압박과 눈치가 조금은 있어야 한다.
2009년 10월 12일, 세계적인 경제정보제공업체인 톰슨 로이터는 내가 창간한 이 북한저널을 명성이 높은 이 회사의 사회과학 인 용색인(Social Science Citation Index: SSCI)에 등재하겠다고 발표했다. 저널이 창간된 지 3년 만에 이곳에 등록된다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하나의 사건이었다.
미국의 맥팔랜드 출판사에서 출간하는 이 저널의 편집자인 나는 국제금융론을 전공한 교수이기에 학문 분야로만 보자면 북한전문가는 결코 아닌 셈이다. 게다가 나이도 많고 해서 이 저널의 편집을 2013년 1월 1일부로 연세대학교 김용호 교수에게 위임했다.
편집 인계과정에서 톰슨 로이터에서 이 저널을 그들의 사회과학 인 용색인에서 철회했다는 사실을 나중에야 발견하였다. 다시 말해 세계 최초의 영문 북한전문 학술저널이 SSCI 등재로 세계의 주목을 받던 것은 3년 만에 끝났다는 얘기다.
이 저널이 창간된 지 3년 만에 SSCI에 등재되고, 등재된 지 3년 만에 SSCI에서 빠지게 된 것을 알았을 때, 문득 삼일천하(三日天下)라는 말이 새삼 떠올랐다. 이 말은 쿠데타 등의 수단이 성공 후 3일 만에 원상 복귀된 경우를 의미한다. 이제 연세대학과 김용호 교수의 노력으로 3년 후에 SSCI에 다시 등재되기를 소망해 본다.
김용호 교수는 연세대학교를 졸업하고 미 콜롬비아 대학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대 북한외교론」, 「외교안보정책과 언론」, 그리고 「세계화 시대 국제관계」 등의 저서와 많은 논문을 저명한 국내외의 저널에 발표한 유명한 학자이다. 현재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인 김용호 박사는 2013년 1월부터 북한연구원 원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그는 또한 사법시험 외무고시 출제위원과 중앙일보 통일전문기자도 역임하고 있는 인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