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광주_2 (128회)
  제16장 정치에의 꿈과 5.18 광주

이와 같은 참혹한 일주일을 목격한 신용호 편집국장은 인간에 대한 깊은 불신에 빠져있었고, 한 세기 내에는 해소될 것 같지 않다고 한탄했다. 
 
특히 아쉬운 것은 과격했던 공수부대가 철수하고 진압군이 재편성되어 들어왔을 때, 마지막 거점이었던 광주 도청으로의 진입에 있어서 보다 유연한 방법이 있었을 수 있었는데 무엇이 그리도 급했는지 시민대표, 원로, 종교계의 간곡한 호소를 묵살하고 새벽 공격을 감행하여 몰살시켰어야만 했는지 알 수 없다는 한탄을 내놓았다.

내가 광주를 방문한 3일째 되던 날, 광주 외곽, 소위 마지막 방어선이었던 화순 쪽 수리재, 학살지로 거명되던 송암동, 주남마을, 나주 쪽으로 나가는 금호강을 건너 목포까지 가면서 격돌의 전 지형을 살펴보았다. 널브러진 대결의 잔해를 치우느라 분주했고, 모두 말을 잃어버린 실어증에 걸려 있었다. 

목포에 도착해 일박하면서 나의 초등학교 동창인 목포전화국 근무 서정렬(徐正烈)을 만나 그 지역의 민심을 대충 이야기 듣고 4일간의 현지상황 파악을 마무리하고 귀경길에 올랐다. 장성 재를 넘고 한참을 달려 전주 나들목에 와서야 그동안 나를 짓눌렀던 어떤 강박관념에서 다소 해방되는 기분을 느꼈다.

귀경 즉시 나의 광화문 사무실에서 밤을 새며 보고서 초안을 작성했다. 다음날 원자력연구소의 필경사 강요한(姜堯漢) 군을 불러 8절지 소형 차트 식으로 정서(淨書)해 줄 것을 요청했다. 강 군은 필재도 뛰어나지만 전북 삼례 출신으로 호남 정서를 이해하고 보안도 책임질 수 있는 입장이어서 부탁했더니 쾌히 협조해 주어서 「컬러」까지 곁들인 소형 차트식 보고서가 작성되었다. 내가 보기에도 흡족한 물건이었다. 타이틀은 「5 .18 광주. 김진휴의 현지출장 복명서」라고 적고 박권흠 씨를 통해 상도동에 전달되었다.

광주의 문이 다시 열리고 꼭 일주일 만에 YS는 「광주사태」의 개략적인 전모를 보고 받았던 것이다. 수고가 많았다는 회답과 함께 그해 추석에는 「YS 멸치」 한 포가 여의도 우리 집에 택배로 도착했다.

광주의 불행은 근본적으로 경험도 역사의식도 부족한 신군부가 국민저항을 수습함에서 「피애스코」 즉 대실패(大失敗)를 저지른 것이다.

DJ가 누구인가. 호남정서의 정위치가 어디에 있는지를 심리전을 배웠던 이들이라면 여러 가지 대안을 모색할 수 있었을 것이다. 1978년 민주당의 경선에서 승리한 DJ는 박정희 대통령과 맞붙어 선전(善戰)한 실적이 있고. 그는 곧 호남의 빛과 희망으로 데뷔하면서 중산층과 저변 대중의 종교가 되었던 사실을 신군부가 까마득하게 잊어버린 소치였다.

‘박정희는 갔으니 이제는 우리 차례다.’ 라는 정서가 팽배해 있던 그때에 올가미를 씌워 군사법정에 끌어냈으니 그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한 것이었다. 그때 「그라이스틴」 미국 대사는 최광수 청와대 비서실장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DJ의 구속 수감은 「볏단에 불을 들고 뛰어드는 것」과 같다며 강력하게 항의했다는 일화도 있다.

적국에 진공(進攻)한 군대가 점령지에서 흔히 쓰는 수법으로 「공포와 살육의 마당」을 바로 여기에서 보인 것이다. 왕창 내려치면 하루 이틀이면 모두 기겁을 해서 평정이 될 것으로 간단하게 본 것이다. 

부마(釜馬)사태 때는 쌍방이 좀 여유가 있었다. 동족 그리고 우리 국민이라는 아른한 의식이 존재했었고, 일종의 「스포츠」같은 기분의 「데모」였다고 한다면, 광주의 집단행동은 우리 지도자가 죽느냐 사느냐, 우리 호남이 싹 쓸려 나가느냐 마느냐, 사생결단의 초긴장 속에 이루어진 것으로 출발의 근본이 다른 것이었다. 

여기에 1차 진압군으로 파견된 공수부대의 부대원들은 대부분 영남 말투를 쓰는 군인들이었다. 경상도 군인만 의도적으로 차출 했다기 보다는 영남 인구가 호남 인구의 배에 가깝고, 따라서 공수부대도 경상도 출신들이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특히 장기근속 군인들 중 조장(組長), 분대장들은 영남 출신들이 많았기 때문에 「온통 경상도가 호남의 씨를 말리러 왔다」는 유언비어가 삽시간에 전 시내에 퍼질 정도로 지휘자들의 경상도 사투리는 각별히 강하게 들렸으리라 짐작된다. 
 
▲ 27일 새벽 계엄군이 탱크로 무장한 2만5천명 군사로 도청을 사수하며 저항하던 시민을 무력으로 진압하며 수많은 사상자를 냈고, 광주항쟁은 막을 내렸다

또한 부마사태는 YS와는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었으나 광주사태는 DJ의 운명과 바로 직결되어 있는 문제였지 않은가. 따라서 대응 판단이 신중하지 못한 면이 있었다고 본다. 그러나 어찌할 것인가? 엎질러진 물인데. 천년 「백제의 한」인가? ‘꽁’하는 그 불가사의한 전남(全南) 「멘탈리티」, 「타협은 불가(不可)」라는 그 무서운 DNA를 앞으로 어떻게 해소할 것인지?

경상도 친구들은 어떠한가? 전라도 이야기만 나오면 무조건 「그 애들이니까」라는 ‘솥뚜껑으로 자라 잡는 식’으로 일격에 끝을 낸다. 이성적이고 객관적인 사고(思考)가 거기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이 깊은 골은 서로 혼사를 막고, 취직에 장애가 되고, 직장에서의 「섹터」 또는 「고립」을 가져온다. 정치인들은 이 추악한 「가름」을 부추기면 부추겼지, 조금도 해소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리 시대의 가장 큰 고민거리이며, 태산을 등에 지고 가는 형국이다.

다만 위안이 되는 일도 있다. 얼마 전 광주 5.18 국립묘역에 한나절 다녀왔다. 배산임수와 좌청룡, 우백호가 뚜렷한 천하의 명당자리임을 확인했다. 앞으로는 무언가 잘 풀리겠지 하는 안도감을 나에게 주기에 충분한 자리였음을 첨언하고 싶다.

신군부가 역사에 진 또 하나의 빚은 폭력, 강압 정치이다. 제 3공화국에 대해서는 압축 성장을 위한 「개발독재」라는 변종의 명분도 일부 학자들은 인정하고 있지 않은가. 잘 살게 만들어 준 공로는 인정해야 한다는 것으로 많은 국민이 동의하고 있다. 그러나 신군부는 민주화라는 당시의 세계 추세를 완전히 역주행한 일탈의 잘못된 항로를 잡았던 것이다.

이러한 탄압, 감시의 정책은 지식인, 특히 학생들로 하여금 완전히 지하 동굴을 찾게 하였다. 공산주의, 사회주의, 반(反) 대한민국 역사 강의 그리고 북한 세습의 정당론(正當論) 등을 멋대로 접하면서 왜곡된 세계관으로 깊숙이 빠져들어 가게 된다. 그 캄캄한 지하방에서 마구 생겨버린 그 비타협(非妥協)의 사상은 피가 되고 살이 되어 새로운 사조(思潮)를 형성하면서 자기영웅주의(自己英雄主義)로 발전해 간다.

외국유학 등을 거친 양식(良識) 있는 선생님들도 정권이 탐탁지 않으니까, 알면서도 물들어가는 학생들을 방관할 수밖에 없었다. 미국 시민권을 가진 일부 석학들을 압박하여 시민권을 포기하게 하였고, 자녀들의 병력 문제를 들어 교묘하게 올가미를 씌우는 일들을 겁도 없이 자행했다. 이제 그 후유증들이 사회 곳곳에 나타나 가리늦게 우리나라를 이념전장으로 바꾸어 놓고 있다.

북한은 이를 교묘히 이용, 전 사회를 갈등과 실의의 도가니로 몰아가고 있다. 문제가 너무 많은 북한은 교묘하게 이 반목을 자기 정당화와 3대 세습에 넌지시 잘도 활용하고 있다. 독서회, 동아리 등 일부 이념 서클을 졸업한 이들은 법조계를 비롯하여 교육, 학원, 언론, IT계에 세력을 구축하고 불철주야 사명감을 가지고 뛰고 있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이러한 모든 것이 신군부의 잘못된 출발로 인한 가증한 업보이다.

1980년 이제 나는 정치에 별 관심도 없고, 환멸까지 느끼는 처지가 되었다. 소일거리도 마땅치 않고 시간도 남아돌아 육사(陸士) 태릉골프장의 회원권을 시간 보내기에 적당히 이용했다. 친구 3, 4명이 만나 「라운딩」할 때 주로 화제가 신군부 지도자들을 비하, 조롱하는 「와이당」식 이야기가 많았다. 옆에서 「캐디」들까지 한 마디씩 거드는 것을 볼 때 탄식이 절로 나왔다. 

골프장에서 뿐만 아니라 시간 보내기 위해 모이는 화투, 「포카」 판에도 그들에 관한 신조어가 등장하기 마련이었다. 그들이 한 모든 것들이 웃음거리, 조롱거리가 되어버린 시대에 우리들은 살게 된 것이다.

정치와는 무관하게 되었지만 딱 50줄에 접어들면서 인생의 황금기를 그냥 방향 없이 놀아버리기에는 너무 억울하기도 했다. 그러나 은혜(恩惠)라는 마법은 나에게 계속해서 일을 가져다 주었고, 세상은 넓고 할 일도 많이 있었다. 참여와 봉사의 길은 언제나 활짝 열려 있었다.

 
  5.18 광주_1 (12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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