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 논담(親日 論談)_2 (173회)
  제21장 나의 성장기2

그리고 대통령 이승만(李承晩), 대법원장 김병노(金炳魯)는 누구인가? 반일의 화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분들이 정부 핵심에 포진하고 있지 않았는가. 과연 2009년의 위원회에는 일제를 경험한 사람이 몇이나 있었는가. 소위 「진보적 현대역사 인식」이라는 착시에서 옹졸한 판단밖에 나올 수 없는 과오를 범한 것은 아닌지. 참말로 납득하기 어려운 결정을 했다. 

마치 분열과 갈등을 조장하기 위한 고차원적 공작(工作) 같은 느낌이다. 물론 4년 동안에 걸쳐 377억 원이라는 나랏돈을 쓰면서 조사를 했으니 발표내용은 충실했다고 주장할지 모르지만 일제시대를 살아본 많은 나의 주변인과 선배들과 이야기해 보면, 어느 특정 이념집단의 뜻에 푹 젖어 만들어낸 공작품이라고 흥분하는 분들이 많이 있다.

이북(以北)에서 했으니 우리들도 해야 할 것 아닌가, 라는 논리를 세우는 분도 많이 있는 것으로 안다. 그러나 남한처럼 신생국 지도이념으로 자유민주주의, 즉 대동(大同)의 사상을 채택한 나라와 북한을 맞대어 비교하면 모순이 불거진다. 
 
북한은 공산주의가 생소했던 한반도 북쪽에 인민공화국을 세우기 위해서는 숙청이라는 대대적인 청소작업이 필요했다. 무인지경에서 「프롤레타리아 유토피아」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독재가 필요했고, 그 진로에 조금이라도 장애가 되는 것은 철저하게 제거해 나갔다. 
 
여기에 인민 대중의 환심을 사는 방향으로, 지주를 내몰아 땅을 무상 분배해 소작농민들의 거국적 환호와 충성을 얻어냈고, 친일을 척결함으로써 해방 정국을 친소반제(親蘇反帝)의 물결을 타게 했다. 이렇게 김일성(金日成) 전제주의(專制主義) 기반을 착실하게 구축하여 갔다.

「진상규명위원회」의 심의내용이 종종 외부에 알려진 것 중에 좀 황당했던 일들을 살펴보자. 일군(日軍), 만군(滿軍) 출신들 중 우리 신생 대한민국의 창군(創軍)에 참여했던 분들, 특히 6 .25에 참전해 많은 공을 세운 분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일제 때 중, 소위를 지냈던 모든 장교 출신들을 친일자(親日者)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을 때, 이것은 진정한 친일 청산이 아니라 특정 부류, 또는 인사를 매장하기 위한 작전이라는 것을 나는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 자신 초급장교로 군(軍)에 상당 기간 복무한 사람으로서 중, 소위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극히 제한적이라는 것을 잘 안다. 소대작전이란 정찰임무가 대부분이고, 중대전투 이상이 되어야 작전이라 할 수 있다. 중대전투도 대대장(통상 중령 계급)의 철저한 지휘, 감독하에 이루어지기 때문에 위관장교(尉官將校)들의 역할은 군(軍) 편제(編制)의 말단 부속품이라 해야 옳다.

이런 상황을 잘 아는 우리가 일군, 만군의 위관장교 출신이라고 해서 모두 친일로 분류하자는 것은 한심한 사고의 극치라 하겠다. 일제의 관동군이 만주사변을 일으켰을 때 Brain 역할을 한 자도 중좌(中佐)였고, 일본의 226사건을 꾸민 장교도 중좌였다. 최소한 소좌(少佐) 이상, 즉 사단의 참모 이상의 경력이 아니면 주요 작전을 참여할 수 없는 것을 우리는 잘 안다. 

만군(滿軍), 일군(日軍)의 위관장교(尉官將校)로 있으면서 얼마나 반민족적 행위를 할 수 있었을까 스스로 반문해 본다. 1차 대전 때 남아프리카에서 귀국한 「간디」는 젊은이의 영국 군대 입대를 적극 장려하며 많은 곳에서 연설을 했다. 인도가 독립을 하면 국군의 간성(干城)이 될 인재가 필요하다며 이들을 옹호한 것이다. 이런 탁견을 우리는 너무 소아병적으로 보는 시각에 젖어 있지 않나 본다.
 
▲ 노무현 대통령이 29일 청와대에서 성대경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함께 접견실로 이동하고 있다. [출처 ; 노무현재단]

「친일규명위」 작업은 우리들에게 또 하나의 갈등거리를 만들어 주고 말았다. 좌파인사들에게는 관대하고, 민족진영 우파인사들에겐 엄격한, 편향성이 엿보인다. 좌파의 대표인 여운형, 허헌 그리고 이극로 등의 친일 행각은 우리들이 잘 알고 있다. 북한에 들어가 영화를 누렸던 몇몇 인사들은 이광수(李光洙) 못지않게 친일을 저지른 기록들이 즐비한데 말이다.

북한이 친일을 완전히 극복했다지만 월북해서 북조선 문화예술동맹 서기장까지 지내고, 북한의 애국가를 작사한 「박세영」이나, 김일성(金日成) 장군의 노래 「백두산 줄기줄기 피어린 자국」을 쓴 시인 「이찬도」는 왜 친일명단에서 빠졌는지 설명이 없는 것은 두고두고 우리들의 가슴을 공허하게 만들 것이다. 

어느 땐가 장래 사학자(史學者)가 나서서, 객관적이고 균형 감각이 살아있는, 분석 작업이 필요하다. 그래서 우리나라 정론(正論), 정사(正史)로 자리 잡아야 한다.

그리고 우리들은 솔직히 남정욱 교수의 다음과 같은 글에 공감하고, 더 이상 토를 달거나 뒤집기 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침략자 섬나라가 물러가자 나라가 둘로 쪼개졌다. 남쪽은 가난이 사라졌고, 북쪽에서는 부자가 사라졌다...’

나는 일제 강점기를 서술하면서 나 스스로 「페어(Fair)」한가, 공정했는가를 몇 번이고 다짐했다. 우리 김(金)씨 집안에는 다행히 친일한 분은 없었다. 그리고 외가는 외증조부님과 외조부님 모두 망명을 가셔서 타국에서 모두 순국하신 항일 애국자 집안이다. 우리 어머님도 결혼하기 위해 만주에서 불원천리 하고 고향에 내려와 외롭게 혼례를 치르셨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나는 원한을 접고, 객관적으로 사안(事案)을 보려 했다.

「진상규명위원회」가 밝힌 1,005명의 명단 중 일부는 객관성과 공정성에서 멀찌감치 떨어진 결론이라는 나의 생각은 고칠 수가 없다. 

⑤ 미군 진주(進駐)와 복학

1945년 9월 7일, 맥아더는 「조선인민에게 고(告)함」이라는 포고문 제1호를 선포하였다. 9월 9일 「하지」 중장이 이끄는 미군(美軍)이 총독에게서 항복 문서를 받아 공식적인 미군정(美軍政)이 시작되었다.

9월에 들어서자 우리 고을도 많이 안정되어 갔다. 갈등을 일으키면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는 이치도 깨닫고, 모두 조심해 갔다. 어느 날 미군이 진주에서 출발하여 순천으로 향한다는 연락이 왔다. 불온선인(不穩鮮人)이라고 갖은 박해를 다 받고 감옥살이까지 했던 안(安) 목사님의 지도로 태극기와 성조기를 밤새 만들고, 광목에다 “Welcome to the U.S. Forces” 라는 프랑카드도 만들어 아침부터 시내 다리 쪽에 서서 모두 기다렸다.

정오경 차를 앞세우고 「쓰리쿼터」 한 대, GMC 트럭 2대에 분승하고, 노랑머리의 미군 일단(一團)이 통과했다. 우리들은 목청껏 만세를 외쳤고, 그들이 시내를 벗어난 곳에서 차를 세우고 점심을 먹고 있다는 똘마니들의 전갈을 받고 신작로를 따라 쫓아내려갔다. 미군 일행은 차를 세우고 한 길에 퍼져 앉아 깡통을 따서 먹고 있었고, 동네 사람들은 이들을 에워싸고 신기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우리가 놀랜 것은 GMC 트럭의 크기였다. 일본 트럭이라고 해야 나지막한 높이에 바퀴가 많아야 6개 정도인데, 미군 트럭은 타이야가 10개요, 높이와 너비가 일제 것에 2배가 넘는 것 같았다. 집채만한 것과 헛간만한 것의 대결은 그 자리에서 확연히 결판이 나는 것 같았다. 우리가 속아도 단단히 속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미국과 영국은 어떤 나라인지 궁금하고, 동경하기 시작했다.
 
우리 시골에서는 한여름 더위를 피하기 위해 밤이면 돗자리와 덕석 등을 가져와 깔고, 시원한 시냇물 위 다리에서 밤을 새며 시간을 보내는 습관이 있었다. 여기에서 새로운 정보가 교환되고, 많은 약속이 이루어진다. 

어떤 경로로 전달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축지법을 쓰며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는 항일의 위대한 전설 김일성(金日成) 장군이 이북에 들어 왔다느니, 박헌영(朴憲泳) 선생이 공산당을 만드는데 전남 송정리 벽돌공장에서 구사일생으로 일제를 피해 살아남아 건국에 큰일을 한다느니, 많은 생소한 이야기가 돌고 있었다.

물론 김구(金九) 선생과 이승만(李承晩) 박사에 관해서는 좀 알고 있었지만 다른 분들은 생소했다. 이때 벌써 각 지역 면(面) 단위로 공산 좌파 조직이 조금씩 싹트기 시작하던 무렵이었을 것이다. 다른 조직에 관해서는 아무 이야기가 없었던 것으로 보아 좌익조직은 시골에도 일찌감치 그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친일 논담(親日 論談)_1 (172회)
  미군 진주(進駐)와 복학 (17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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